15년간 여의도면적 530배 사라진 그린벨트…해제이유는?
“당선 위해서라면 그린벨트를 개발해야 한다”
국책사업 위해서라면 ‘도시허파’ 필요없다?
지난 16일 경기 과천시 주암동 231번지 과천화훼단지. 92만㎡ 부지에 190여동의 비닐하우스가 빼곡히 들어선 단지 곳곳에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기업형임대주택 공급촉진지구로 지정돼 허가 없는 건축이 불가능하다’는 내용이다. 화훼단지는 과천지역에 남은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중 대규모 사업을 펼칠 수 있는 마지막 부지로 꼽혀왔던 곳. 지난 달 14일 정부는 이 일대를 기업형임대주택(뉴스테이) 공급촉진지구로 지정하면서 이 비닐하우스는 모두 철거되고 2020년까지 5,200가구가 들어설 예정이다. 당초 시는 이곳을 화훼종합센터 등 화훼농가를 위한 시설로 조성할 계획이었지만 정부의 일방적인 발표에 수포로 돌아갔다. 정길수 과천화훼집하장 운영위원회장은 “지난 26년간 화훼농가들이 일궈놓은 삶의 터전을 정부가 파헤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총선을 앞두고 정부가 또다시 그린벨트를 마구 풀어헤치고 있다. 임대주택을 지을 때도, 새로운 단지를 조성할 때도, 전략산업을 육성할 때도 어김없이 그린벨트 해제가 포함된다. 역대 정부에서도 그린벨트는 늘 지역 주민들에게 던져줄 선거용 선물로 활용돼왔다. 그린벨트가 침범 불가능한 성역일 수는 없지만, 선거 때만 되면 법까지 바꿔가며 마구 풀어주며 사회 전체가 향유해야 할 공공재를 사유화하는 행태가 되풀이된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연일 쏟아지는 그린벨트 해제 정책
18일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등 관련 부처에 따르면 최근 정부가 쏟아내는 각종 경기 활성화 대책에 그린벨트 해제가 빠지지 않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올 1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내놓은 뉴스테이 사업 계획. 그린벨트 내 추진하는 사업만 6건(경기 과천 주암ㆍ의왕 초평, 부산 기장, 인천 계양ㆍ남동ㆍ연수)으로, 해제 면적이 181만2,000㎡에 달한다. 14개 시ㆍ도에서 드론, 바이오헬스, 스마트기기 등의 전략산업을 육성키 위한 ‘규제 프리존’ 역시 그린벨트 부지를 활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17일 내놓은 투자활성화 대책에도 어김없이 그린벨트 해제가 담겼다. 경기 고양시에 지지부진하던 자동차서비스복합단지 조성에 속도를 내기 위해 그린벨트 해제를 통해 추진 가능한 사업에 자동차서비스복합단지를 포함하도록 법을 바꿔주기로 한 것이다. 또 스포츠시설을 확충한다는 명목으로 그린벨트 건축 연면적 기준을 대폭 완화해주기로도 했다.
이 뿐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부터 집중적으로 그린벨트 해제를 기반으로 한 굵직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60만㎡의 그린벨트를 풀어 주택지구 등으로 개발하는 수서역세권 사업(2015년 7월 발표)이나 도로ㆍ철도로 쪼개진 1만㎡ 이상 그린벨트 해제(2015년 12월) 등이 이어졌다. 작년 5월엔 소규모(30만㎡ 이하) 그린벨트 해제권한을 지방자치단체에 이양하기도 했다. 4월 총선용 카드라는 해석에 무게가 실리는 것은 당연하다.
역대정권에서도 그린벨트는 선거용 선물
그린벨트를 선거철에 손쉽게 이용했던 건 역대정권도 마찬가지였다. 그린벨트 해제나 그린벨트를 이용한 사업 발표는 늘 각종 선거를 앞두고 집중됐다. ‘그린벨트=군사정권 시대의 상징’이라고 슬로건을 내건 김대중 정부에서 그린벨트 제도 개선 방안을 내놓은 것도 16대 국회의원 선거를 9개월 앞둔 1999년7월이었고, ‘국민임대 20만가구 건설’ ‘국민임대 연내 1만가구 건설’ ‘택지공급 확대’ 등 본격적으로 그린벨트를 통해 개발하겠다고 공개한 시점도 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이었다. 대선이 있던 2002년 1월에는 ‘수도권 광역도시계획안’과 ‘주택시장동향 점검 및 대응방안’, ‘청주권 그린벨트 해제안’ 등 그린벨트 해제를 기반으로 한 정책을 한 달 동안 잇따라 쏟아냈다.
노무현 정부도 2003년 9월 ‘서민 중산층 주거안정지원 대책’을 통해 2012년까지 국민임대 100만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17대 총선을 정확히 반년 앞둔 시점이었다. 이렇게 김대중ㆍ노무현 정부에서 국민임대주택 건설에 활용된 그린벨트가 62.4㎢에 달한다.
이명박 정부는 한발 더 나갔다. 그린벨트를 중심으로 주요 대선공약이 수립됐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보금자리 주택이다. 도심지 그린벨트를 해제해 값 싼 아파트를 공급하자는 취지였다. 실제 서울 강남ㆍ서초 등이 주변시세의 절반도 안 되는 42~49% 수준에 분양돼 ‘로또복권’으로 통했을 만큼 표심 끌기에 충분했다. 대선 이듬해인 2008년 치러진 18대 총선에는 유력 후보들이 너도나도 그린벨트를 풀어 물류도시, 산업단지, 운하 등으로 개발하겠다고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90% 이상이 개발 목적으로 해제
이렇게 전체 그린벨트 면적(5,397㎢) 중 지난해까지 해제된 면적은 28.4%인 1,536㎢. 1999년부터 풀리기 시작했으니 17년간 여의도 면적(2.9㎢)의 530배가 그린벨트에서 해제된 것이다.
물론 개발 수요는 늘어나는데 땅덩어리는 좁은 현실에서 그린벨트의 점진적 해제는 불가피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렇게 선거용으로 활용되다 보니 보전가치는 뒷전에 한참 밀린 채 난개발을 부추기는 측면이 다분하다. 해제 사유 별로 분석을 해보면 이중 90% 이상(90.7%)이 국책사업이나 지역 중소도시 개발, 지역 현안사업 등 개발 목적인 것으로 확인된다. 반면 주민들의 불편 해소 등을 위한 해제는 8.2%에 그쳤다.
앞선 정부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그린벨트 해제에 인색한 것처럼 보였던 박근혜 정부가 최근 들어 그린벨트 해제 정책을 한꺼번에 쏟아내면서 비판의 목소리도 커져간다. “보존해야 할 그린벨트라도 개발계획이 잡히면 무조건 해제한다”는 삽질공화국의 모습이 재연되고 있다는 것이다. 조명래 단국대 도시지역계획학과 교수는 “훼손되거나 존재 이유를 상실한 그린벨트 해제는 필요하지만, 선심성 사업 때문에 야금야금 그린벨트가 희생 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그린벨트는 후대에게 남겨줄 소중한 유산인 만큼 이런 난개발식 개발정책 대신 대대적인 종합관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관규기자 ace@hankookilbo.com
오주환 인턴기자(서강대 신문방송학과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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