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부 시절 숨은 실세 임경묵
건설사에 판 사촌동생 명의 토지
정윤회 문건 제보자 박동열 동원
세무조사 협박해 추가금 2억 뜯어
檢, 박 前 청장 오늘 참고인 소환
임경묵(71ㆍ구속)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이사장이 국세청 고위 간부를 앞세워 한 기업인에게 세무조사 압력을 가하고 강제로 수억원을 뜯어낸 것으로 밝혀졌다. 이명박(MB)정부 시절 ‘밤의 국가정보원장’으로 불릴 만큼 숨은 실세였던 그를 위해 해결사로 나선 이는 이른바 ‘정윤회 문건’의 최초 제보자로 알려진 박동열(63) 전 대전국세청장이었다.
18일 검찰에 따르면 임 전 이사장은 2006년 4월 자신이 실소유한 경기 고양시 행신동의 토지(면적 272㎡)를 D건설사 측에 4억 7,560만원에 팔았다. 계약은 해당 토지의 명의상 소유자인 사촌동생 임모(66)씨를 내세워 맺었는데, 우선 매매가의 10%인 4,760만원만 계약금으로 받고 잔금 4억2,800만원은 일대 토지의 재개발 사업승인이 나면 받기로 했다.
하지만 재개발 사업 승인이 2년 넘게 미뤄지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게다가 이들 사촌형제는 ‘시세에 비해 너무 싸게 팔았다’고 후회했다. 결국 이들은 2008년 9월 “국세청을 통해 D사 대표 지모씨를 압박해서 사업승인 전에 매매 잔금은 물론, 추가금도 받아내자”고 공모했다. 임 전 이사장은 곧바로 평소 친분이 있던 박 전 청장에게 연락해 “사촌동생이 D사 측에 땅을 팔고 받을 돈이 남았는데 아직도 못 받고 있다”면서 도움을 요청했다.
박 전 청장은 곧바로 움직였다. 당시 대구국세청 조사2국장이었던 그는 D사를 관할하는 삼성세무서장 A씨에게 연락했고, A씨는 지씨에게 “임씨를 만나 보라”고 했다. 지씨는 그러나 “잔금과 추가금을 달라”는 임씨의 요구를 “다른 토지주들과의 형평상 들어주기 어렵다”고 거절했다.
지씨에 대한 압박은 계속됐다. 이듬해 3월 박 전 청장이 새로 부임한 삼성세무서장 S씨에게 똑 같은 취지를 전달, 지씨는 계속해서 임씨를 만날 수밖에 없었다. 임씨는 이 과정에서 “우리 형이 임경묵인데 과거 안기부 고위직 출신이고, 이명박 대통령 당선의 1등 공신이다” “차기 국정원장으로 거론된다. 내 요구를 안 들어주면 형한테 이야기해 D사를 세무조사 받게 하겠다”며 겁을 주기도 했다. 임 전 이사장은 김영삼정부 시절 국가안전기획부(현 국정원) 102실장으로 있으면서 ‘북풍 사건’에 연루돼 사법처리됐다가 MB정부 출범과 함께 국정원의 ‘싱크탱크’인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이사장을 맡으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는 이 전 대통령의 친형으로 지난 정부에서 ‘상왕’으로 불린 이상득(81) 전 의원과도 친분이 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지씨는 임씨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고, 결국 임 전 이사장은 최후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2009년 7월 서울국세청 조사3국장에 오른 박 전 청장이 직접 움직이도록 한 것. 서울국세청 조사3국은 2010년 3월 D사에 대한 주식변동 세무조사에 착수한 데 이어, 두 달 후에는 조사1국이 D사의 법인 소득에 대해 별도의 세무조사도 벌였다. 박 전 청장이 직접 지씨에게 “임씨 요구를 들어주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지씨로선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 된 셈이다.
임씨는 겁을 먹은 지씨를 찾아 “형에게 부탁해 세무조사가 잘 마무리되도록 도와주겠다. 매매잔금 4억2,800만원에 추가금 2억원을 달라”고 했다. “2억원은 형이 더 받으라고 했다. 형은 대통령과도 친한데, 박동열 국장은 형의 심복이다”라고도 말했다. 이렇게 임 전 이사장 측은 지씨로부터 6억 2,800만원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 최성환)는 임씨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와 공갈 혐의로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공범인 임 전 이사장도 구속 만기인 19일 같은 혐의로 기소할 계획이다. 검찰은 박 전 청장도 19일 일단 참고인으로 소환조사할 예정이지만, 직권남용 등의 혐의가 인정될 경우 그 역시 피의자로 신분이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
김정우기자 wookim@hankookilbo.com
안아람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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