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립자ㆍ인척 중심 지배구조
김문기 1974년 청암학원 인수 후 본인은 설립자ㆍ부인 이사로 둔갑
상지대를 사실상 사유화
공금을 쌈짓돈처럼 유용
일가ㆍ측근들이 장학한 이사회 횡령ㆍ뇌물ㆍ전횡 등 견제 못해
부산정보대학ㆍ충암고 추한 민낯
내부 비판자엔 가혹
교수 등 비리 재단 퇴진 운동 땐
법인, 파면 등 보복성 칼날 휘둘러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비리 사학을 들여다 보면 예외 없이 세 가지 두드러진 패턴을 보인다. 설립자와 친인척 중심의 지배 구조 체제를 구축한 뒤 학교와 법인의 공금을 쌈짓돈처럼 유용하고, 비리사학 퇴진을 요구하는 내부 구성원에게는 징계를 남발하며 재갈을 물리는 식이다. 지난 2013년 나온 대학교육연구소의 ‘사립대학 부정ㆍ비리 개선 방안’ 보고서와 지난해 12월 사학개혁국민운동본부(사학국본)가 펴낸 ‘사학비리 분규ㆍ교권침해 현황 자료집’에는 이처럼 정형화된 비리 사학들의 행태가 고스란히 드러나있다.
설립자 아들은 총장, 부인은 이사장
비리사학은 설립자와 그 친인척 중심의 지배구조를 공고히 구축한다. 상지대는 이런 ‘족벌 사학’의 전형이다. 1974년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이었던 김문기 전 이사장은 권력의 비호 아래 청암학원을 인수하면서 정관을 뜯어고쳐 본인을 설립자로 둔갑시켰다. 이후 부인은 법인 이사, 사위는 총장 비서실장, 매제는 전문대학장, 사촌은 한방병원 총무과장과 교무과장, 회계과장, 육촌은 서무과장으로 임명해 학교를 사실상 사유화했다.
설립자 일가가 학교를 운영하는 데는 법적 제약이 없다. 사립학교법에 따르면 최초 임원진에 대한 임명은 설립자가 스스로 작성해 교육부에 제출한 정관에 따르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법인 사무국과 교직원의 친인척 근무제한 조항도 없고 이사회 의결만 있으면 학교의 장으로 설립자의 배우자와 친족을 임명할 수 있는 길 역시 열려 있다. 친인척이 학교를 운영하는 것 자체를 제한할 수는 없지만 문제는 비리를 저질러 학교에 손해를 끼쳐도 퇴출시킬 길이 막혀있다는 점이다.
광주여대의 경우 재단 설립자가 이사장으로 재직하면서 큰 아들은 이사를 겸한 총장, 나머지 두 아들과 며느리들은 각각 교수와 학교 직원으로 임용했다. 나중에는 사위들까지도 법인 사무국장에 임용하면서 일가 지배를 확립했다. 2011년 교비를 자신의 가사도우미 급여로 사용한 혐의(횡령)로 당시 총장이 구속됐지만, 총장 부인이 그 이듬해 이사로 취임했고 이후 2년 뒤 이사장, 이후 총장이 됐다. 교육과는 무관했던 전업주부가 재단설립자의 인척이라는 이유로 대학 총장이 될 때까지 당국은 전혀 제동을 걸지 못했다.
횡행하는 비리…거수기로 전락한 이사회
설립자의 친족과 그 측근이 채운 이사회가 회계와 법인 운영 등 주요 사항을 모두 결정하는 폐쇄적인 체제는 공금횡령, 뇌물수수 등 비리로 이어진다. 거수기로 전락한 이사회가 설립자들의 전횡을 견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2011년 교육과학기술부 종합감사에서 각종 비리가 적발된 부산정보대학은 대학 설립자가 총장을 역임하며 아내는 이사장에, 세 아들은 대학 및 법인의 주요 보직에 앉혔다. 교육부 감사에 따르면 당시 설립자의 아들 등은 교비 2억여원을 230여 차례에 걸쳐 유흥주점에서 사용하고, 8,100만원 상당의 상품권 900여 매를 용도를 밝히지 않고 집행했다. 그러나 설립자 일가 및 측근이 독식한 이사회는 이 같은 비리를 감시하거나 제동 걸지 못했다. 심지어 수익용 기본재산 8억여원을 노인요양병원 사업을 위해 처분할 때는 형식적인 이사회 의결조차 없었다.
‘급식비리’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충암고의 법인 충암학원 설립자 일가는 학교 회계를 가족의 돈줄처럼 사용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2011년 서울시교육청 감사에서 이는 사실로 확인됐다. 교육청에 따르면 2007년 말부터 충암학원 행정실장으로 재직한 이사장의 둘째 아들은 해외여행을 다니며 명목상으로만 직을 유지했고 실제 행정실장 업무는 계약직 직원이 대행했지만 그는 2억원의 연봉을 고스란히 받았다. 앞서 1999년에는 설립자의 아들인 당시 이사장이 학교법인 소유 고급 승용차를 학교 예산 800만원을 들여 수리한 뒤 이사회 결의 없이 행정실장인 아들에게 공짜로 준 사실도 드러났다. 김용섭 사립학교개혁국민본부 사무국장은 “형식적으로는 외부에서 추천 받는 개방형 이사가 이사진의 4분의 1 들어가도록 하고 있지만 이사회 의결 정족수가 과반수 찬성이라 사실상 브레이크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내부 비판자 가혹한 탄압
학내 구성원들이 비리 사학재단 퇴진 운동을 벌이는 등 비판 움직임이 표면화되면 법인은 징계의 칼날을 휘두르며 이들을 탄압하는 것도 특징이다.
배재흠 수원대 교수 등 수원대교수협의회 소속 교수들은 2013년 설립자의 차남인 이인수 수원대 총장이 학생의 등록금을 유용한다는 의혹을 제기했다가 2년 넘게 강단을 떠나야 했다. 배 교수 등이 제기한 의혹에 대해 교육부는 감사에 착수해 33건의 비리를 밝혀냈고, 이 중 일부 이 총장의 횡령 혐의에 대한 재판이 15일 시작됐다. 그러는 가운데 학교법인은 의혹을 제기한 교수 6명을 충분한 심의와 의결 없이 파면시키거나 재임용에서 탈락시켰다.
전산장비업체 대표에게 1억 6,000만원을 받은 혐의(배임수재)로 총장이 교육부 해임 권고를 받은 수원여대도 2013년 총장의 서류 결재를 거부한 교직원 10여명을 해고했다. 중앙노동위원회가 이들에 대한 해고가 부당하다고 판정했지만 학교는 이들을 복직시키는 대신 지난해 11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총장은 기획조정실장이었을 때 이런 비리를 저질렀으나 학교법인은 설립자의 장남인 실장을 해임하기는커녕 총장으로 임명해 이 같은 일을 자초했다.
고영남 인제대 법학과 교수는 “현행법상 교직원의 신분이 계약 임용제이기 때문에 소청위나 행정소송에서 이기더라도 재임용 기간이 이미 끝나 법인이 손해배상만 하겠다고 나설 수 있다”며 “학생들의 학습권을 지키고 학내 민주주의를 보장하기 위한 교수의 역할이 제대로 구현되기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김민정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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