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이번에는 내가 이길 것 같다.”
내달 9일 펼쳐지는 IT공룡 구글의 인공지능(AI) 컴퓨터 ‘알파고’와 바둑대결을 두고 한 이세돌 9단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많은 국내외 바둑 전문가, 과학자들도 ‘이번 승부’에서 이세돌 9단의 승리를 점친다. 하지만 “시간은 쉬지도 자지도 않는 알파고의 편”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알파고가 패배를 통해 학습하고 성능을 향상시켜 조만간 이세돌 9단을 뛰어 넘으리란 전망이다.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결로 전세계에 AI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AI의 위험성이 간과돼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는 “AI가 극도로 발달하면 인류에 위협이 된다. 인공지능을 걱정하지 않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애플의 공동 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은 “인간이 신이 될지, AI의 애완동물이 될지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들은 AI가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하고 대규모 살상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의 메시지를 던졌다.
1996년 이래 한번도 AI 이긴 적 없어
AI 경계론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엄청나게 빠른 AI의 학습ㆍ성장 속도다. 무려 15년 동안 정상의 자리를 지킨 체스 챔피언 개리 카스파로프는 1996년 2월 IBM의 인공지능 컴퓨터 ‘딥 블루’와의 대결에서 3승 2무 1패로 완승했다. 하지만 불과 1년 후 재대결에서 딥블루를 개선한 ‘디퍼 블루’에 1승 3무 2패로 완패했다.
이후 인류는 ‘지능’과 관련된 분야에서 AI에 거듭 무릎을 꿇었다. 2011년에는 미국 방송의 인기 퀴즈쇼 ‘제퍼디’에서 24회 연승을 차지한 켄 제닝스가 IBM의 슈퍼컴퓨터 ‘왓슨’에게 졌다. 일본에서는 2013년 일본식 장기(將棋ㆍ쇼기) 프로 기사 5명이 ‘장기전왕전(?棋電王?)’ 결승전에서 AI와 대결해 1승1무3패로 굴복했다. 2014년에는 1승 4패의 초라한 성적을 거뒀고, AI 능력을 제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까지 제기됐다.
지난달 22일 중국 위성방송의 아침 뉴스 ‘칸둥팡(看東方)’에 새로운 기상 리포터가 등장했다. MS가 개발한 ‘샤오빙(小氷)’이라는 AI였다. 17세 소녀의 얼굴을 한 샤오빙은 “스모그가 심하니 외부 약속을 잡지 말라”고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인간의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기능이 있어 진행자와 간단한 대화도 주고받았다. 앵커 보쉬쉬는 “오늘 심경이 복잡합니다. 설마 AI가 우리 밥그릇까지 빼앗는 것은 아니겠지요”라는 자조 섞인 농담을 던졌다.
조금씩 AI에 일자리 내주고 있는 인간
실제로 AI는 여러 영역에서 대량 실업을 가져왔다. 미국 최대 상거래 업체 아마존은 고객의 취향을 분석해 상품을 추천해주는 AI를 개발한 뒤 원래 이 일을 맡고 있던 직원과 경쟁을 시켰다. 결과는 AI의 압승이었고, 추천 업무를 맡았던 직원들은 대거 정리해고됐다. 중국 경제 전문 매체 차이신(財新)은 지난 3월 현지 에어컨 제조업체 미데아(美的)가 AI 로봇을 들여오며 직원 3만 명 중 1만 명을 줄일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전문직도 예외는 아니다. AP통신은 지난해 7월부터 기자 대신 AI 프로그램이 ‘분기별 기업 실적 기사’를 작성토록 했다. 주디카타라는 미국 신생 벤처기업은 법리와 판례 문서를 정보로 바꿔 관련 사례를 찾는다. 변호사가 막대한 시간을 들여 하던 일을 마치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듯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미국 컴퓨터공학 과학자들은 이달 14일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과학진흥협회(AAAS) 회의에서 “AI의 발전으로 위기에 빠지지 않은 일자리는 없다. 성매매조차 그렇다”고 강조했다. 옥스퍼드대 연구팀은 “20년 후 미국의 일자리 47%가 소멸된다”고 했다.
국가 정보기관도 AI에 우려를 표했다. 미 의회전문지 더 힐(The Hill)에 따르면 제임스 클래퍼 미 국가정보국장은 지난 8일 상원 정보위원회에 출석해 “미국은 외국 정보기관들의 AI 사이버 공격이라는 새로운 위협에 맞닥뜨려 있다”며 “예컨대 AI가 주식 시장을 출렁이게 해도 실체를 파악하기 힘들어 대응이 어렵다”고 말했다.
그런 미 국방부도 무인 전투기 드론에 장착해 스스로 적을 인식하고 공격하는 AI ‘자동무기시스템(LAWS)’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 AI 전문가인 스튜어트 러셀 버클리대 교수는 최근 뉴욕타임스(NYT)에 기고한 글에서 “LAWS는 화약, 핵무기에 이어 3차 전쟁 혁명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가까운 미래엔 영화 ‘터미네이터’처럼 사람과 로봇이 뒤섞여 전쟁을 벌이게 된다는 것이다.
아직 걸음마 단계… 2045년엔 인간 뛰어넘어
물론 전문가들은 체스, 빅데이터 분석 등 특정 분야가 아닌 ‘전반적인 지능’에 있어 인공지능은 아직 어린아이 수준이라고 말한다. 문제는 기술이 발전을 거듭해 그 속도가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가속하는 ‘특이점(singularity)’에 언제 도달하느냐에 있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2045년 인공지능이 인간지능을 뛰어넘는 특이점에 도달하고, 그 이후론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 전개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과학철학자 닉 보스트롬 옥스퍼드대 교수는 “사람보다 똑똑한 기계는 인류를 멸망시킬, 인류의 마지막 발명품이 될 것”이라며 “기업들이 이윤을 올리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AI에 투자하는 데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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