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족들의 귀국 재촉에도 결심
“우리 집은 자원봉사 베이스캠프죠”
적어도 재일동포 김연옥(58)씨 집에선 개와 고양이는 천적이 아니다. 후쿠시마 나라하에 있는 그의 집에선 개 두 마리와 고양이 서른 마리가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다. 원전사고 이후 대피한 주민들이 그대로 두고 간 반려동물들로, 김씨는 사고 직후부터 주기적으로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다가 입양을 결심하게 됐다.
그는 후쿠시마 제2원전 경비원이었던 남편과 함께 텅 빈 마을에 원전 제염노동자들을 위한 편의점을 처음으로 열어 일본 언론에도 여러 차례 소개된 인물이다. 하지만 그가 이 곳에 남게 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처음 피난할 때는 이튿날 바로 돌아올 줄 알았어요. 다른 피난민들도 그래서 반려동물들을 그대로 두고 온 경우가 많았죠. 고양이 여덟 마리를 키우고 있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걱정이 되어서 못 견디겠더군요.”
한국의 가족들과 대사관에선 귀국을 재촉하는 전화가 쉼 없이 걸려왔지만 온 정신은 굶고 있을 고양이들에 쏠려 있었다. 결국 3일째 되던 날 대피소에서 배급 받은 음식들을 들고 집으로 향했다. 그는 “마을 전체 동물들이 겁에 질려 있었다. 누구 할 것 없이 먹을 것을 달라고 애원했고, 외로움에 사무친 큰 개들은 계속 뒤따라왔다. 너무 굶은 경우에는 빵을 씹지도 못하고 고꾸라졌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그는 사람들이 먹고 남은 구호식품을 들고 시도 때도 없이 마을을 들락날락했다. 경찰은 마을진입을 막았지만 때론 싸우고 때론 사정하고, 때론 산길로 돌아 들어와서까지 밥을 주고 갔다. 서른 곳에 먹이를 놓아두고 누구든 먹을 수 있도록 했다.
2년 뒤, 낮 시간 방문이 허용되자 그는 아예 이 집에 들어와 살기로 결심했다. 고양이 서른 마리, 개 두 마리와의 기막힌 동거도 이 때부터 시작됐다. “3.11이후 집 안에서 키우던 동물 중에서도 강아지의 피해가 가장 컸어요. 고양이는 야생적응이 빠르지만 개들은 갇힌 채 겁에 질려 나오지 못하거나, 굶어 죽었지요.” 사고 뒤 길에서 만나 입양하게 됐다는 말티즈종 ‘신짱’은 인터뷰 내내 김씨의 품을 떠나지 안았는데 그 또한 한시도 사람과 떨어지지 않으려 하고 혼자 있으면 극도의 불안 증세를 보이는 ‘3.11 후유증’이라고 했다.
지금 그의 집은 후쿠시마 반려동물 지원을 위한 베이스캠프로 통한다. 주말이면 수의사와 자원봉사자들로 항상 북적인다. 인터뷰 당시 그의 집에서 잰 방사선 수치는 0.15μSv/h를 가리켰다. 서울 평균(0.11μSv/h)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다. 방사능이 두렵지 않은지 물음에 그의 대답은 단호했다. “방사능 보다 더 무서운 건 가족 같은 반려동물들을 버리고 간 사람들의 이기심 아닐까요.”
후쿠시마=김혜경 프리랜서기자 salutkye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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