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개봉한 영화 ‘동주’는 겉만 보면 저예산독립영화입니다. 순수 제작비는 5억원입니다. 40억~50억원 정도하는 중급영화 제작비의 10분의 1 수준입니다. 영화는 요절 시인 윤동주가 기차를 타고 가는 모습이 나올 때 창 밖 모습을 최대한 보여주지 않으려 합니다. 1940년대 풍광을 제대로 보여주려면 컴퓨터그래픽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죠.
영화를 알리기 위해 들인 마케팅비도 1억원 남짓입니다. “그 흔한 버스 광고 하나 제대로 못한다, 아니 안 하기로 했다”고 이준익 감독이 말할 정도로 적은 마케팅비입니다. 흑백화면은 대형 상업영화가 아니라는 확실한 표식으로 다가옵니다. 강하늘이 윤동주를 연기했다고 하나 스타 마케팅이라 지적하긴 애매합니다. 강하늘의 캐스팅 시점은 그가 ‘미생’으로 대중적 인지도를 높이기 전입니다. ‘동주’의 각본가이기도 한 신연식 감독의 저예산영화를 주로 제작해온 영화사 루스이소도니스도 상업성과는 거리가 멉니다. ‘왕의 남자’로 1,000만 관객을 동원했고 ‘님은 먼곳에’와 ‘사도’ 등 여러 대작을 만든 이준익 감독, 최근 젊은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강하늘이라는 이름이 그나마 상업적입니다.
여러모로 봤을 때 ‘동주’는 다양성영화로 지정될 만합니다. 다양성영화로 지정되면 대형 멀티플렉스 체인의 예술영화상영관인 CGV아트하우스나 롯데시네마아르떼에서 상영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대규모로 개봉하는데 한계는 있지만 안정적인 상영 공간을 장기간 확보하는데 더 유리합니다. 저예산영화나 예술영화가 영화진흥위원회에 다양성영화로 인정 받으려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동주’는 다양성영화 지정을 아예 신청하지 않았고 여느 상업영화와 다를 바 없는 조건 속에서 무한경쟁에 나섰습니다. 예산이 적은 영화치고는 좀 무모한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나 다양성영화들과 경쟁하고 싶지 않다는 이 감독의 의지가 관철된 결과입니다. 이 감독은 윤동주를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그리게 될 것을 경계해 저예산 제작 방식을 택했습니다. 상업성을 배제하며 만들어진 영화가 여러 혜택을 마다하며 비정한 영화시장에 자진해서 나선 셈이다.
‘동주’의 의미 있는 선택은 언뜻 극장에서 외면 받는 듯합니다. 영화진흥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21일 상영만 봤을 때 ‘동주’의 스크린 수는 499개로 전국 스크린 중 9.9%를 차지했습니다. 나쁘지 않은 개수라 생각할 수 있으나 상영횟수를 따지면 박대 받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21일 상영횟수는 1,282회로 전체 상영횟수 중 7.5%를 차지했습니다. 스크린 수에 비해 상영횟수가 적은 것이지요. 극장들이 이른바 ‘퐁당퐁당’ 방식으로 ‘동주’를 상영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관객들이 영화 보기 좋은 시간대는 다른 상업영화에게 뺏기고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에 상영시간이 배치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예산영화들이 극장에서 종종 받는 ‘대우’입니다.
하지만 ‘동주’의 진정성과 완성도가 조금씩 인정 받는 분위기입니다. 개봉일 374개에 불과했던 상영 스크린 수는 점차 늘고 있고, 관객도 증가 추세입니다. 지난 20일(토) ‘동주’를 찾은 관객은 6만8,675명이고, 21일에는 7만3,870명이었습니다. 토요일보다 일요일에 관객이 줄어드는 일반적인 관람 패턴을 벗어난, 작은 이변입니다. 21일 좌석점유율은 43.9%로 상영 중인 모든 영화 중 1위를 차지했습니다. 21일까지 ‘동주’를 찾은 관객은 22만9,595명이었습니다. 상업영화로서는 눈에 띄는 관객몰이는 아니지만 저예산영화로서는 제법 놀라운 흥행 수치입니다. 다양성영화 시장에서 최근 흥행 돌풍을 일으키며 일일 흥행순위 1위를 지키고 있는 ‘캐롤’(4일 개봉)의 누적 관객이 21일까지 27만8,900명이었습니다. 21일에만 5,975명이 관람했습니다. ‘캐롤’의 흥행세가 많이 꺾였다고 하나 ‘동주’에 비하면 많이 떨어지는 흥행 성과입니다. ‘동주’가 다양성영화를 자임했다면 다양성영화들의 극장 잡기와 흥행이 더 힘들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험난한 길을 택했으나 ‘동주’의 시도는 일단 성공적으로 보입니다. 24일쯤이면 손익분기점(30만명 추정)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됩니다. 시장의 약자를 배려하고 자신만의 길을 간 ‘동주’의 용기가 어느 정도 관객들의 인정을 받는 것 같아 보기 좋습니다.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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