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폐기됐다 2012년 부활
새누리, 의석 부족해 중단시키기 어려울 듯
더불어민주당이 정의화 국회의장의 테러방지법 직권상정에 맞서 꺼내든 ‘필리버스터(filibuster)’란 국회에서 다수당 횡포를 막기 위해 소수당이 선택할 수 있는 합법적 의사진행방해를 말한다. 통상 장시간 연설·신상발언·동의안과 수정안의 연속적인 제의, 출석거부, 총퇴장 등의 방식이 동원된다. 국내에선 연설과 발언의 경우 해당 법안 관련 내용으로 제한된다.
필리버스터는 1973년 의원 발언시간을 최대 45분으로 제한한 국회법이 신설되면서 폐기된 이후 2012년 부활했다. 개정 국회법 제106조는 ‘의원이 본회의에 부의된 안건에 대해 시간 제한을 받지 않는 토론을 하려는 경우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이 서명한 요구서를 의장에게 제출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이 경우 의장은 해당 안건에 대하여 무제한 토론을 실시해야 한다. 더민주는 이날 의원총회를 통해 108명 소속 의원 전체 의견으로 필리버스터를 발의해 신청 요건을 충족했다.
개정 국회법 시행 이후 실제로 우리 국회에서 필리버스터가 진행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마지막 필리버스터였던 1964년 김대중 전 대통령 발언을 기준으로 할 경우, 이날 필리버스터는 52년 만에 국회에 재등장했다는 의미도 있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한일협정 의혹을 제기한 김준연 자유민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저지를 위해 5시간 19분가량 발언을 이어갔다.
필리버스터를 중단시키려면 재적의원 5분의 3의 찬성이 필요한데, 현재 과반을 겨우 넘긴 157석인 새누리당으로선 역부족이다. 필리버스터가 발동되면 ‘재적의원 5분의 1 미만 참석 시 본회의 중지 또는 산회를 선포한다’는 국회법 제73조도 적용되지 않는다. 발언자를 제외한 국회의원이 본회의장에 한 명도 없더라도 발언을 이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국내에선 1969년 8월 신민당 박한상 의원이 3선 개헌을 막기 위해 10시간 15분 동안 발언한 것이 최장 필리버스터 기록이다. 다만 박 의원의 발언은 국회 본회의가 아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서 진행된 것이라 엄밀한 의미의 필리버스터는 아닌 것으로 평가된다. 가장 가까이로는 2013년 황찬현 감사원장 임명동의안 처리를 반대하던 민주당이 소속 의원 127명 전원 명의로 필리버스터 요구서를 제출한 사례가 있다. 하지만 당시 강창희 국회의장이 “인사에 대한 토론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거부하면서 현실화되지는 못됐다. 미국에서는 현재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2010년 부유층에 대한 세금감면 연장안을 막기 위해 8시간 동안 발언을 해 전국적 인지도를 얻었다.
정재호기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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