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들어오세요. 3인분 같은 2인분 드립니다.” 서울 남대문시장 앞의 한 찌개식당에 붙어 있는 전단지 문구. ‘인분’이라는 개념을 무력화하는 저 문장들은 주인의 넉넉한 인심을 드러내고 있지만, 이내 인분당 양을 줄이고 가격을 낮추는 게 더 합리적인 것 아닐까 하는 도구적 이성의 회의를 작동시킨다. 다 먹지 못할 정도로 푸짐한 양을 곧장 주인의 인간성, 더 나아가 인류애로 환원해 풀이하는 독해법은 보릿고개가 한국인들의 유전자에 새긴 일종의 강박인지도 모른다.
1인분의 크기는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옷도 체격별 사이즈가 나뉘어져 있고, 가구도 공간별 크기가 분류돼 있는데, 음식은 왜 1인분의 크기가 하나로 정해져 있는 걸까. 건장한 23세 군인의 1인분과 걸그룹 멤버를 해도 좋을 아담한 23세 여인의 1인분이 동일하다는 것은 분배의 불평등이자 지구 환경을 위협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1인분, 그 크기는 누가 어떻게 정하는 걸까.
적정 1인분은 나라마다 다르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1인분의 크기가 있기는 하다. 성별과 연령에 따른 하루 권장 열량을 끼니별로 나누면 된다. 성인 여성의 경우 일일 권장 열량으로 알려진 2,000㎉를 세 끼로 나눠 먹는 식이다. 하지만 이렇게 먹었다간 먹은 것도 없는데 자꾸 살이 찌는 신묘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나이와 활동량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대용량의 1인분을 소비하고 있는 미국은 그래서 일률적인 칼로리 기준 대신 나이, 성별, 활동 수준에 기초한 개별 음식 섭취 가이드를 5년마다 업데이트해 정부 공식 웹사이트에 고시한다. 2015년부터 1인분 크기 기준으로 일괄 추천하던 방식을 폐기하고 실제 체중과 체질량지수(BMI), 특정 음식의 양에 기초해 각자의 적정 끼니 분량을 계산할 수 있는 서비스로 변경한 것. 미 보건복지부 사이트에서 ‘나의 접시를 선택하다(Choose My Plate)’라는 웹페이지에 들어가면 직접 산출할 수 있다.
한국은 아직 개인별 맞춤 서비스까지 가지는 못했다. 다만 연령을 더 세분화해 연령대별 필요 열량을 산출, 고시한다. 보건복지부가 2015년 발표한 한국인 영양소 섭취기준에 따르면, 남성은 19~29세 2,600㎉, 30~49세 2,400㎉, 50~64세 2,200㎉, 65세 이상 2,000㎉로 나이가 들수록 섭취 열량의 기준이 200㎉씩 낮아진다. 200㎉는 햇반(320㎉)의 3분의 2에 해당하니 거의 밥 한 공기를 덜 먹어야 한다는 얘기. 여성도 19~29세 2,100㎉, 30~49세 1,900㎉, 50~64세 1,800㎉, 65세 이상 1,600㎉로 연령 구간이 바뀔 때마다 100~200㎉가 줄어든다. 65세 이상 여성의 영양소 섭취 기준 1,600㎉는 슬프게도 6~8세 유아가 먹는 양과 비슷한 수준이다. 남아 1,700㎉, 여아 1,500㎉이니 할머니는 여섯 살 손자보다도 덜 먹어야 하는 셈이다.
하지만 외식과 폭식으로 점철된 한국 현대인의 삶에서 이런 정밀한 계산이란 정녕 불가능한 것이다. 미국은 2008년부터 정부 강제로 음식별 칼로리를 고지하고 있지만, 한국의 식당에서 칼로리가 표시된 메뉴판은 찾아보기 어렵다. 다 먹고 나서 배부른 느낌이 나지 않으면 화를 내는 손님들과 손님들의 이 같은 반응을 가장 두려워하는 요리사들이 닭과 달걀의 관계를 맺으며 푸짐한 1인분과 아쉬운 1인분 사이를 진자운동하고 있을 뿐이다.
1인분 어떻게 정하나… 셰프에게 물었다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의 셰프들에게 물었다. 1인분을 정하는 기준은 뭘까. “전문가의 직관”이라고 셰프들은 답했다. 사실 단백질과 탄수화물과 무기질을 어떻게 배합하느냐에 따라 1인분의 구성이 달라지기 때문에 다양한 식재료로 이뤄지는 특정 음식에 대해 보편적 적정 용량을 언급하기는 어렵다. 국가마다, 사회마다 다르기도 하다. 하지만 이름처럼 맛을 보기 위해 존재하는 테이스팅 메뉴 위주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들이 회전율을 중시하는 대중적 맛집들에 비해 1인분 양이 적은 것은 전 세계 공통이다.
천차만별의 1인분을 대표적 외식 메뉴인 쇠고기 스테이크로 비교해보자. A레스토랑은 150~165g, B레스토랑은 130~150g, C레스토랑은 150~180g이다. 각각의 셰프가 이 정도면 푸짐하다고 생각하는 양이건만, 최대 50g의 차이가 난다. 코스로 들어가면 더 복잡해진다. 다섯 코스를 내놓는 A레스토랑은 90g, 여섯 코스를 선보이는 B레스토랑은 80g, C레스토랑은 다섯 코스에 110g, 일곱 코스에 60g으로 스테이크를 서빙한다. 똑같은 양이더라도 코스가 길어질수록 포만감이 크기 때문이다.
먹고 나서 허기지는 음식을 가장 싫어하는 한국 식문화의 특성으로 인해 맛의 탐험을 콘셉트로 하는 파인다이닝 레스토랑들은 고민이 많다. “적정량에 대해 아주 많은 고민을 해요. 계산할 때 양이 너무 적었다며 화를 내시는 고객들이 있으면 정말 슬퍼지거든요. 빠른 시간 안에 배불리 먹기 위해 가는 식당과 음식에 내용을 담으려는 식당은 각기 다른 존재의 이유가 있다는 걸 인정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프렌치 레스토랑 그린테이블의 김은희 셰프는 “양이 적다는 컴플레인이 들어올 때마다 양을 조금씩 늘리는 편이긴 하지만 여전히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하지만 코스는 두세 번 떠먹으면 코스 하나가 끝날 정도로 양을 적게 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포만감 때문에 코스 중도에 식사를 끝내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실제 코스 중간에 양이 적다고 했다가도 끝까지 다 먹지 못하는 손님들도 있다.
본인 스스로 양이 큰 편이라는 태번38의 고병욱 셰프는 “1인분이라는 게 사실 주관적이라 셰프마다 각자의 기준으로 잡을 수밖에 없다”며 “코스는 총 분량을 코스의 수에 따라 나눠서 정한다”고 설명했다. 어윤권 셰프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리스토란테 에오는 그래서 양까지 원하는 대로 맞춰주는 맞춤형 부티크 식당으로 운영하고 있다. 어 셰프는 “1인분이 성별뿐 아니라 직업군,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다 다르기 때문에 손님 개별의 특성에 맞춰 음식량을 정하고 있고, 호응도 큰 편”이라고 말했다.
식품업계 “최적의 1인분 찾아라”
최적의 1인분을 찾기 위한 노력과 성과는 가공식품업계에 더 확연하다. 용량에 따라 가격이 매겨지는 업계의 특성에 ‘혼밥’과 ‘혼술’ 트렌드가 겹쳐져 온갖 1인용 식품들이 출시되고 있다. 기존의 1인분이 과도하거나 부족하다고 판단될 경우 과감하게 사이즈를 다변화한 제품들도 많다.
한 병을 따면 통상 두세 명이 함께 마시는 와인은 기존 1인용 와인으로 알려진 375㎖로도 모자라 100㎖ 용량의 종이팩으로까지 나와 있고, 아예 이름을 ‘비노 솔로’로 달고 출시된 와인도 있다. 와인, 샴페인뿐이 아니다. 한 캔을 따면 꼭 3분의 1쯤 남기는 매일의 애주가들을 위해 330㎖가 대거 출시된 것도 구문으로 만들며, 한 모금 탈탈 털어 넣으면 끝나는 250㎖의 캔맥주가 하이트에서 하이트미니라는 이름을 달고 나왔다.
먹은 것 같지도 않던 한 모금 용량(60~65㎖)의 요구르트는 남심을 사로잡기 위해 270㎖로 커져 편의점 히트상품에 등극하더니 지난해엔 아예 450㎖의 페트병으로까지 출시됐다. 우유를 싫어하지만 먹어야 한다는 의무감은 떨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어린이들을 겨냥한 매일유업의 상하목장 125㎖짜리 한 모금 우유에 환호할 것. 백화점의 프리미엄 푸드코트에는 한 손에 쥘 수 있는 컵밥이 즐비하고, 콜라도 생수도 당면도 소면도 장국도 1인분의 깜찍한 비주얼로 매대를 장식하고 있다.
죠스떡볶이가 최근 출시한 1인세트는 새로이 개막된 ‘1인분의 시대’를 빛내는 화룡점정이라 할 만하다. 떡볶이와 순대와 튀김을 모두 먹고 싶지만, 혼자서는 도저히 먹을 수 없었던 비극이 이제서야 종결됐다. 포장마차에서나 간혹 맛볼 수 있었던 김떡순과 떡순튀의 시대가 동네마다 자리한 떡볶이 프랜차이즈의 세계에도 도래한 것이다. 5,000원에 떡볶이 약간과 튀김 약간과 순대 약간을 모두 맛볼 수 있는 쾌락. 내 욕망의 사이즈를 간파한 듯 맞춤한 1인분은 나의 거문고 소리를 알아들은 유일한 벗 지음을 마주한 것과 같은 감동을 준다. 이제 라면이 남았다. 한 개는 모자라고, 두 개는 넘치는 그 불쾌한 용량을 해결해야 할 때다.
박선영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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