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평준화 정책 사실상 붕괴
전ㆍ후기 고입 제도가 큰 원인
체제 단순화시키고 역량 높여야
자사고 지정 취소 등 개혁 시도한
조희연 교육감 정책에 영향 줄 듯
고교 서열화 해소와 일반고 붕괴를 막기 위해 서울 시내 외국어고와 국제고, 자율형 사립고의 통합을 주장한 연구 보고서가 공개됐다.
24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김경근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를 책임자로 한 연구팀은 ‘초ㆍ중등교육 정상화를 위한 고교체제 개편방안 연구’ 보고서를 지난 16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에게 제출했다. 현행 고입 제도와 고교 체제 개선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시교육청이 의뢰한 연구다.
보고서는 먼저 “특목고-자사고-일반고로 이어지는 수직적 서열체계가 강고하게 구축된 탓에 고교 평준화 정책은 사실상 붕괴됐다”고 진단했다. 서울의 일반고 학생 1만7,373명과 교사 7,594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지난해 성열관 경희대 교수팀의 연구에서 “일반고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고 응답한 학생(56%)과 교사(86.9%)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던 사실이 근거로 제시됐다. 보고서는 “특목고와 자사고에서는 학생과 학부모가 학교에 대해 높은 만족도를 드러냈지만 일반고 학생들은 상당수가 무력감과 열패감을 토로하는 등 학교유형별로 인식이 상이했다”고 덧붙였다.
이런 고교 서열화 문제를 심화시키는 원인 중 하나가 전ㆍ후기로 나뉘어 진행되는 현행 고입 제도로 꼽혔다. 현행 고입 제도에 따르면 특목고와 자사고, 특성화고가 11월 말 일반고보다 앞서 신입생을 뽑기 때문에 성적 우수 학생들을 선점할 기회를 갖는다. 보고서는 “입학생의 학력이나 교육 여건 등을 고려하면 특목고ㆍ자사고와 동등하게 경쟁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팀은 일반고 문제 개선을 위해 우선 전ㆍ후기 선발을 폐지할 것을 권고했다. 구체적으로 3단계 배정 방안을 제시했다. 1단계에서 직업교육 중심의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가 학생을 뽑고, 2단계에서는 특목고, 자사고, 일반고가 동시에 학생을 선발한 뒤 3단계에서는 앞 단계에서 미달된 인원을 한꺼번에 충원하는 방안이다. 궁극적으로는 외국어고와 자사고, 국제고 등을 폐지하고 일반고에 통합시켜 고교 체제를 단순화시켜야 한다는 처방을 내놨다. 김 교수는 “고교 체계를 단순화 시킨 뒤 전체적인 고교의 역량을 강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교육청이 특목고와 자사고 등을 폐지하는 파격적인 고교 체제 개편을 실제로 추진하기는 쉽지 않다. 초ㆍ중등교육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에 고입 제도와 고교 체제가 세세하게 규정돼 있어 교육감의 재량이 넓지 않고, 교육부는 기본적으로 특목고와 자사고 폐지에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수월성 교육을 원하는 학부모들과 특목고 등 학교의 반발은 더 넘기 어려운 장벽이다.
하지만 조 교육감이 취임 이후 반발을 감수하면서도 자사고들을 평가해 기준 점수에 미달한 자사고 일부를 지정 취소하는 등 고교 체제 개혁을 밀어붙인 만큼 시교육청의 정책에는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선발 방식을 바꿔 우수 학생들이 특목고나 자사고에 몰리지 않도록 할 경우 고교 체제 개편 효과를 다소 얻을 수도 있다. 서울의 자사고들이 교육감의 협의와 권고를 통해 성적이 아닌 추첨으로 학생들을 선발하고 있는 것이 그런 사례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고교 체제 개편 문제는 다양한 이해 관계가 걸려 있기 때문에 당장 시행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라면서도 “큰 틀에서 장기적으로 검토해나가겠다”고 밝혔다.
김민정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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