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이 곳에서 공부 시키고 싶습니다, 집을 파실 분은 연락 바랍니다.’ 최근 중국 베이징(北京)시 시청(西城)구 신원화제(新文化街)의 한 골목 낡은 단층집 벽에 이러한 문구가 붙여져 있었다. 빨간색 종이 위에 검은 글씨로 쓴 이 광고는 ‘급구’라는 제목 아래 구구한 사연을 적은 뒤 휴대폰 번호를 남겼다. 그 옆의 다른 쪽지는 아예 ‘집값을 현금으로 한꺼번에 지불하겠다’고 파격적인 제안까지 하며 집을 사고 싶다고 광고했다. ‘방을 구합니다’라는 또 다른 쪽지는 ‘집을 가진 분이나 팔려는 분에 관한 작은 정보만 제공해도 1만위안(약 190만원)의 사례금을 드리겠다’는 공약으로 눈길을 잡았다. ‘아무리 작은 집이라도 상관이 없으니 꼭 연락을 달라’고 신신당부하는 글귀도 보였다.
놀랍게도 이 지역은 지은 지 40년도 더 된 낡은 단층집이 대부부인 동네다. 대문 안을 들어선 뒤 미로 같은 길을 따라 꼬불꼬불 들어가다 보면 10㎡ 안팎인 방들이 20~50개씩 옹기종기 엉켜있다. 중국의 전통적인 주택 양식인 사합원(四合院)이긴 하지만 실은 판자촌이나 쪽방과 크게 다를 것 없는 이 곳의 다 쓰러져가는 집을 중국인들은 왜 이렇게 못 사서 안달일까. 정답은 이 곳에서 불과 100여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베이징제2실험초등학교 때문이다.
‘얼샤오’(二小)로도 불리는 이 학교는 베이징에서 가장 유명한 초등학교로 정평이 나 있다. 양탄일성(兩彈一星ㆍ원자탄과 수소탄, 인공위성)의 아버지로 불리는 첸쉐썬(錢學森) 등 유명 과학자가 나온 학교이고 지금도 지도자 자녀가 많이 다닌다. 현재 100여명의 교사 중 석ㆍ박사만 40%에 가깝다. 1909년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푸이(薄儀) 때 세워진 이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정문과 가까운 이 곳에 집을 사려는 21세기 맹모(孟母)들이 줄을 서며 이 동네 집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원창후퉁, 10㎡ 원룸 7억5,000만원
얼샤오 후문과 이어지는 원창(文昌)후퉁(胡同ㆍ골목)도 중국 매체들의 집중 조명을 받는 곳이다. 지난해 이 골목 집값은 1㎡당 34만위안(약 6,400만원)을 기록했다. 10㎡ 크기의 방 하나가 340만위안에 거래된 것이다. 3평짜리 방 하나가 6억원도 넘자 일각에선 거품 논란도 일었다. 그러나 최근엔 이 지역 10㎡ 안팎의 집 가격이 400만위안(7억5,000만원)까지 넘어 섰다. 평(3.3㎡)당 2억5,000만원이다. 인터넷엔 12㎡ 짜리 방 한 칸짜리 집이 450만위안(약 8억5,000만원)에 나와 있다. 3년 전만 하더라도 이런 집은 250만위안이었다.
원창후퉁의 인기는 ‘원창’(文昌)이란 이름과도 무관하지 않다. 원창은 중국에서 ‘공부의 신’으로 통한다. ‘북쪽에 공자가 있다면 남쪽엔 원창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과거 시험을 보러 가는 선비들은 모두 원창에게 장원 급제를 기원했다. 도교에서도 그를 ‘문창제군’(文昌帝君)으로 부르면서 학업운을 관장하는 신으로 모셨다. 이름까지 ‘공부의 신’인 이 골목에 집을 마련하면 아이를 베이징에서 가장 좋은 초등학교에 보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앞으로 고위직까지 오르게 할 수 있을 것이란 중국 부모들의 희망이 원창후퉁의 집값을 떠받치고 있다.
단층집뿐 아니라 이 지역 낡은 아파트 가격도 믿기지 않을 정도다. 1년 만에 ㎡당 매매가가 9만위안에서 14만위안까지 치솟았다. 평당 8,800만원에 가까운 시세니, 서울 최고가 아파트를 능가한다. 물론 재개발에 대한 기대감도 없진 않다. 톈안먼(天安門)에서 서쪽으로 불과 3㎞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베이징의 한 복판에 위치한 이 지역 주변은 모두 중국 국유 은행들의 초대형 건물이 들어선 상태다. 인민은행도 바로 길 건너편이다.
학군 좋은 쉐취팡 가격 치솟아
베이징에서는 이런 부동산을 학군이 좋은 집이라는 뜻에서 쉐취팡(學區房)이라고 부른다. 베이징의 쉐취팡은 시내 중심이나 대학들이 많은 시청구, 둥청(東城)구, 하이뎬(海淀)구 등에 몰려 있다. 서울로 치면 강남 8학군이다. 이런 쉐취팡은 인기가 높아 다른 지역보다 매매가가 훨씬 높다. 벼락 부자들도 속출했다. 중국 부동산 중개 업체인 롄자에 따르면 중관춘(中關村)제3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하이뎬구 한 아파트의 ㎡당 매매가는 18만위안(약 3,400만원)에 달한다. 당초 이 아파트는 모 국영기업 소유였는데 90년대 중국 정부가 부동산을 사유화하면서 회사는 ㎡당 3,000위안에 아파트를 직원들에게 불하했다. 이후 평당 가격은 20여년 만에 60배로 뛰었다.
중국 경제가 체질 전환을 위한 숨 고르기에 들어가며 증시는 폭락하고 마땅히 투자할 곳이 없다는 점도 쉐취팡 열풍을 부추기고 있다. 환구시보는 “자산 배분 차원에서 주식이나 위안화 현금보단 쉐취팡을 사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고 전했다.
학군 좋은 주택에 대한 높은 수요는 중국인의 교육열과 함께 심각한 교육권의 불균형 및 불평등이 투영된 현실로 보인다. 실제 수도 베이징(北京)으로 밀려드는 인구는 나날이 늘고 있는 반면 교육은 이에 따른 수요에 맞추지 못하고 있다. 중국의 후커우(戶口ㆍ호적) 제도의 맹점도 한 요인이다. 원칙적으로는 베이징 후커우와 함께 부동산 권리증이 있어야 자녀를 집 근처 학교에 입학시킬 수 있지만 일부 학교들은 후커우에 상관없이 부근에 집을 산 경우 입학을 허용하고 있다. ‘근거리 입학’정책도 변질됐다. 추자오후이(儲朝暉) 중앙교육과학연구소 연구원은 “근거리 입학은 원래 주민들이 사는 곳과 가까운 곳에 학교를 세워야 한다는 원칙을 밝힌 것이지만 어느새 학교 근처에 집을 살 수 있는 집안의 아이들만 입학을 할 수 있다는 현실을 반영하는 말이 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부동산 업자의 말만 믿고 덜컥 쉐취팡을 샀다 낭패를 당하는가 하면 ‘짝퉁 쉐취팡’도 속출하고 있다. 학교 근처 집만 사면 입학할 수 있는 학교도 있지만 반드시 후커우가 있어야만 입학할 수 있는 학교들도 적지 않다. 새로 주택을 구입한 소유자의 아이는 전 주인 아이가 졸업할 때까지 입학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이에 중국 공상총국도 이미 2월부터 ‘쉐취팡’이라며 소비자를 현혹하는 부동산 광고를 금지했다.
미국까지 사 들이는 중국의 맹모들
중국의 맹모삼천지교는 중국 대륙에만 국한되지 않고 있다. 미국 조기 유학이 늘면서 미국에서 학군이 좋은 집들까지 사 들이고 있다. 중국일보 사이트는 최근 중국인이 미국에서 집을 살 때 가장 중시하는 것이 바로 ‘위치’와 ‘학군’이라며 “맹모삼천지교가 미국에서도 재연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저학년 유학생 14만명 가운데 중국인은 4만명이나 된다. 이는 전년보다 5,000명이 증가한 것이다.
미국 부동산 경영인 협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4월~2015년3월 외국인이 미국에서 매입한 부동산은 전년 동기 대비 12.2% 늘어난 1,040억달러를 기록했다. 이중 중국인은 모두 286억달러어치의 미국 부동산을 사 들여, 정상을 차지했다. 중국인이 미국에 산 부동산의 35%는 캘리포니아에 있었고 워싱턴주와 뉴욕주도 각각 7%를 기록했다. 모두 좋은 교육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중국인이 구입한 미국 부동산의 평균 가격도 83만1,800달러(약 10억원)로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홍콩도 맹모들이 눈독을 들이는 곳이다. 영화배우 Z씨가 아이 교육을 위해 홍콩에 1억2,000만위안(약 226억원)짜리 집을 샀다는 등 유명 연예인의 홍콩 쉐취팡 투자도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중국 경제의 성장 속도가 둔화하며 부동산이 조정기를 맞을 경우 오를 만큼 오른 쉐취팡 가격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전망이 적잖다. 실제로 부동산 중개업체 센털라인프라퍼티(中原地産)는 지난달 홍콩의 부동산 거래 건수가 약 3,000건으로 전월보다 40% 이상 급락했다고 분석했다. 이는 91년 이후 25년 만에 최저 수준이다. 홍콩의 주택 가격은 12년간 상승세를 보인 뒤 작년 9월 이후 하락세로 돌아서 이미 10% 가량 떨어졌다. 중국의 맹모들이 떠 받치고 있는 쉐취팡 가격이 중국 성장 둔화에도 유지될지 주목된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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