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문을 두드리며
리사 랜들 지음ㆍ이강영 옮김
사이언스북스 발행ㆍ608쪽ㆍ3만3,000원
리사 랜들의 신간 ‘천국을 두드리며’는 교양과학책의 모범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려는 듯 책의 기획과 구성, 서술 그 어느 면에서나 흠잡을 데 없는 흥미 있고 얻을 게 많은 알찬 책이다. 쉽게 읽히며, 페이지는 경쾌하게 넘어가고, 지루하지 않다.
저자의 이야기는 규모 또는 척도라는 뜻을 가진 ‘스케일’(scale)에서 출발한다. 과학이 탐구하는 대상의 세계에는 소립자 세계에서부터 광대무변의 우주 전체의 크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케일이 있으며 각 스케일에 맞는 이론이 정립되어 있는데 이를 ‘유효 이론’(effective theory)이라 한다. 논어 양화편에 “닭 잡는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겠는가”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 뜻이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저자에 의하면 “사람들은 누구나 세부사항을 정밀하게 따지지 않아도 된다면 어떤 현상을 가능한 한 간단하게 기술할 수 있기를 바라는 법”인데, “물리학자들은 이러한 본능을 어떤 현상과 관계되는 거리와 에너지의 크기에 따라 그 현상을 범주화하는 형태로 발휘”하며 이게 바로 유효 이론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과학자들이 내놓는 지식은 일정 범위의 거리나 에너지 영역에서 들어맞는 예측이나 이론일 뿐으로 이것이 반드시 불변의 법칙이나 가장 근본적인 물리 법칙일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것은 “어떤 실험으로 검증할 수 있는 규칙일 것이고 당대의 기술로 얻을 수 있는 범위의 변수에 적용되는 규칙”일 뿐이다. 그래서 과거의 법칙 중에는 더욱 설명력이 큰, 새 이론의 출현을 보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 단적인 예로 뉴턴의 법칙과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있다. 뉴턴의 법칙은 태양계의 움직임을 설명하는데 정확히 잘 맞고 유효하지만,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물체가 등장하면 적용되기 어렵다. 뉴턴의 법칙이 틀린 것이 아니라 달라지는 스케일에서 유효하지 않은 것이다.
총론을 마친 뒤 저자는 곧 물질 세계의 물리적 구조에 대한 설명으로 넘어가는데 이를 위해서는 먼저 극미소의 스케일로 하강해야 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현대 물리학은 표준모형이라는 가설에 기초해서,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인 페르미온(쿼크와 렙톤으로 구성)과 힘을 매개하는 입자인 보손으로 크게 나누어 소립자 이론을 수립해 놓았다. 표준모형에 등장하는 입자들에 질량을 매개하는 또 다른 입자로 알려진 힉스보손은 이 책을 쓸 당시만 해도 검출되지 않고 가설 단계에 머물렀기에 저자는 강입자가속기(LHC)가 힉스보손 검출에 어떻게 활용되는지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우리를 스위스와 프랑스 접경에 있는 CERN의 거대한 LHC 한가운데로 데려간다. LHC가 새로운 입자를 찾아내기 위해 고에너지의 양성자 빔을 충돌시키는데 필요한 각 부분의 구성과 작동 원리, 실제 가동에 관한 얘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나아가 저자는 표준 모형의 불완전한 부분과 그것을 보완하기 위한 몇 가지 연구 방향과 가설,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들려준다. 중간중간 여분 차원이니 계층성 문제니 하는 어려운 개념이 나오지만 저자는 최대한 쉽게 설명하고 있다. 실험과 이론, 불확실성과 창조성, 과학의 진보 등 과학연구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문제에 대한 저자의 견해는 현대물리학 발전의 주역으로서 그 최전선에 서 있는 학자로서의 무게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이형열 ‘과학책 읽는 보통사람들’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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