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이란 덜어내고 덜어내고, 비워내고 비워내 ‘아무것도 없다’고 느끼는 그 놈 조차 사라지는 겁니다.”(혜국 스님) “깨달음의 이치를 자꾸 말로 논하는 것 자체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깊은 법은 말을 계속 할수록 혼란만 가중시킵니다.”(아잔 간하 스님)
세계의 명상 스승 세 사람이 깨달음을 화두로 마주 앉았다. 26일 강원 정선군 하이원리조트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6 세계명상대전’ 행사 일환으로 마련된 ‘무차(無遮)토론’에서다. 세계명상대전은 태국, 한국 불교 등이 함께 명상을 통한 바람직한 수행법을 고민한다는 마련된 불교계 행사다.
이날 토론에는 ▦태국 불교의 큰 스승이자 숲속 은둔 수행자로 명상가 아잔 차의 직계 제자이자 조카인 아잔간하 스님 ▦케임브리지대에서 물리학을 공부한 호주 출신으로 태국 아잔 차의 수제자인 아잔브람 스님 ▦ 한국 불교계의 대표 선승 혜국 스님 등이 참여했다. 무차 토론은 차별이나 격의 없이 떠오르는 화두와 의문에 대해서 질문하고 답하는 즉문즉답식 토론이다.
이날 깨달음에 대해 첫 대화의 물꼬를 튼 혜국 스님은 “모든 업이란 처음에는 내가 업을 만들지만, 점점 그 업이 나를 만들어 가는 것”이라며 “이 업을 없애는 유일한 방법은 무언가를 얻고자 이루고자 애쓰기보다는 버리는 것, 놓아두는 것” 이라고 말했다. 아잔 브람 스님 역시 “자아가 뚜렷한 채로 명상을 하려고 할 때 항상 문제가 발생한다”며 버리기, 놓아두기의 중요성에 공감했다.
그는 “명상은 어떻게 하면 고요해 질 수 있는가를 배우는 것”이라며 “유리잔 안에 담긴 물을 잔잔하고 고요하게 만들겠다며 물을 손에 들고 컵만 노려보며 집중, 마음챙김, 알아차림을 계속 한다고 해서 결코 물이 잔잔해 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말했다. 아잔 브람 스님은 손에 들고 있던 물컵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바로 이렇게 놓으십쇼. 그리고 기다리세요.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아잔 간하 스님은 명상법 등에 대한 여러 질문에 “대답할 필요가 없다”며 묵묵부답으로 일관해 주최 측을 당황시키기도 했다. 45년 간 모든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은둔 수행해 온 그는 “여러 번 요청 받아 한국을 찾게 됐다”며 “한국은 선진국이고 한국에 와서 불법의 수행을 장려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재차 요청되는 질문들에 대해 “어떤 깊은 법은 말을 계속 할수록 혼란만 가중시킬 뿐 그 세부사항에 대해 계속 말을 하는 것은 소용이 없는 일”이라며 “그래서 말을 하기 보다는 직접 수행을 해서 보고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날 가장 질문이 많이 나온 ‘고통’의 본질과 해소법에 대해 세 스님은 “사람을 자살에 이러게 만드는 결정적 고통은 신체적 고통이 아니라 정신적 고통이나, 이는 놓아버림에 대한 훈련으로 극복가능 하다”(아잔 브람), “고통이 일어나면 어떻게든 우리가 이를 완화할 방법을 찾게 되는 만큼 때로 고통이 행복의 원인이 된다”(아잔 간하), “내 생각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극대화하는 고통의 원인은 내가 굳힌 생각, 습관에 있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혜국 스님) 등의 조언을 내놨다.
토론 말미에는 명상의 근본적 한계에 대한 문답도 오갔다. “모두가 명상만 하면 사회적 부조리와 고통까지 해결될 수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대한 아잔 브람 스님의 답변에 객석은 갈채를 보냈다. “여러분이 정치를 하거나 회사를 다닐 때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을 때는 그 일을 위해 모든 것을 던지세요. 최선을 다하세요. 하지만 우리에게는 늘 그럴 수 없는 순간이 닥칩니다. 그런 순간에는 내려놓아야 합니다. 싸워 이길 수 없는 적들에 둘러 쌓인 병사는 불살라 투항하는 대신 차를 우려 마시는 심정으로, 명상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삶에는 모든 것을 던지는, 혹은 내려놓는 두 가지 기술이 모두 필요하다는 겁니다.”
정선=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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