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걸 보도하는 게 언론인입니까?”
“그럼 이런 걸 보도하지 않는 게 언론인입니까?”
자신 있게 저널리즘을 내세우며 보도의 의무를 강조하는 언론인이 몇이나 될까. 언론인으로서의 자부심 뒤에는 신뢰할 만한 취재를 바탕으로 한 날카로운 필력이 있을 것이다.
2002년 가톨릭 사제들의 성추행 사건을 파헤치며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겨준 언론인들이 있다. 미국의 3대 일간지 중 하나로 꼽히는 보스턴 글로브의 심층취재팀 ‘스포트라이트’다. 영화 제목과도 같은 ‘스포트라이트’는 1970년대부터 보스턴 글로브를 지켜온 탐사보도팀이다.
평균 2~3개월, 길게는 1년 정도의 심층취재를 거쳐 기사를 완성하는 스포트라이트 팀은 새로 부임한 국장 마틴 배런(리브 슈라이버)의 제안으로 보스턴 교구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취재한다.
예상하듯 취재 과정이 만만치 않다. 한 명의 사제가 일으킨 것으로 보였던 아동 성추행 사건은 스포트라이트 팀이 취재를 거듭하면서 추행 사제들의 수가 3명에서 13명으로 늘고, 급기야는 수십 배의 수치로 급증한다. 충격적인 사실에 스포트라이트 팀원들도 경악을 금치 못한다.
영화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가톨릭계에 맞서 심층 취재를 마다하지 않는 팀장 월터 로빈슨(마이클 키튼)과 팀원인 마이크 레젠데스(마크 러팔로), 샤샤 파이퍼(레이첼 매캐덤스) 등의 실화를 바탕으로 ‘직장인’ 기자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렸다. 영화 내내 폭발할 듯한 클라이맥스가 있다거나 배우들이 격렬하게 감정을 터트리며 연기력을 발산하는 장면은 거의 없다. ‘취재란 바로 이런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기자들의 취재 현장을 사실적으로 펼친다. 정확한 사실을 확인하고 방대한 자료를 조사하며 피해자들을 일일이 만나 인터뷰를 한 뒤 기사화하는 과정을 조밀하게 그렸다.
신분을 위장해 사건 현장에 몰래 잠입취재를 한다거나 특종을 쫓아 막무가내 식으로 보도하는 행태를 다룬, 국내 영화나 드라마에서와 같은 과장된 기자들의 취재 과정을 완전히 배제했다. 극적 장치가 없다고 해도 128분이라는 긴 영화 상영 동안 지루함을 느낄 겨를이 없다. 파헤칠수록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는 가톨릭 교구의 진실과 실제 기자 같은 배우들의 호연이 있어서다.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로 헐크의 이미지가 강한 러팔로의 연기 변신이 볼거리다. 그는 짧게 자른 헤어스타일로 또렷한 인상을 주면서도 취재할 때는 구부정하게 앉아 메모하고 허스키한 목소리를 내며 감정 없이 취재원을 대하는, 인상적인 모습을 만들어낸다. 어린 시절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들을 만나며 그들의 아픔을 보듬는 매캐덤스의 연기도 잔잔한 감동을 전한다.
특히 묵묵히 팀원들을 독려하며 진실을 밝히기 위해 애쓰는 월터 역의 마이클 키튼은 ‘스포트라이트’를 빛내는 기둥이다. 배우들의 과하지 않은 사실적인 연기가 오히려 극적인 재미를 준다.
영화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기 전까지도 관객들의 눈을 스크린에 고정시켜 놓는다. 스포트라이트 팀이 밝혀낸 전 세계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 수치가 눈 앞에 펼쳐진다. 영화 자체가 기자정신을 발휘해 관객들을 끝까지 깜짝 놀라게 한다.
탄탄한 시나리오와 연출, 연기력 등 삼박자가 잘 맞은 ‘스포트라이트’는 제88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남우조연상 여우조연상 편집상 등 주요 6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수상 결과가 어찌됐든 제대로 된 언론사와 기자들의 활약상을 담았다는 것만으로 박수 받아 마땅하다. 상영 중, 15세 관람가.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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