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들의 잔치’라는 논란 속에 28일(현지시간) 열린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이런 비난을 무마하려는 움직임으로 시종 진땀을 뺐다. 시상식의 진행을 맡은 사회자와 시상자에 흑인들을 내보냈고 시상식 중간에 배치된 이벤트 무대나 영상에도 흑인들이 대거 포진돼 인종차별 시비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이러한 노력 때문인지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은 오히려 흑인들의 축제처럼 보였을 정도였다.
시상식의 막을 올린 사회자인 흑인 코미디언 크리스 록은 10분 이상 이어진 오프닝 인사부터 단호했다. 상의와 하의를 화이트와 블랙으로 맞춰 입고 등장한 그는 “올해는 내가 본 오스카 시상식 중 가장 논란이 많은 시상식”이라며 “올해 오스카 후보자 중에는 흑인이 단 한 명도 없다. 내가 사회자가 아닌 후보였다면 이 자리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라고 대놓고 비판을 쏟아냈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감독상, 남녀주ㆍ조연상 등 주요 부문 후보에 흑인 영화인들이 한 명도 오르지 못했다.
그러면서 록은 “(흑인)동료들은 나 보고 이번 시상식을 보이콧해야 한다고 했지만 실업자인 내가 이 자리를 마다하면 결국은 닐 패트릭 해리스(지난해 사회를 맡은 백인 배우)에게 기회가 돌아갈 것 아닌가”라고 뼈 있는 농담을 했다. 이어진 발언도 남달랐다. 그는 “흑인도 백인과 동등한 기회를 원한다.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는 좋은 배우지만 흑인들은 그런 좋은 배역을 맡기 힘들다”고 꼬집었다.
이날 시상식에선 주요 부문 시상자로 흑인들이 대거 무대에 올랐다. 하이라이트인 작품상 시상을 위해 나선 이는 바로 할리우드의 대표 흑인배우 모건 프리먼이었다. 그는 작품상 수상작 ‘스포트라이트’를 호명하며 시상대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음악상과 주제가상의 시상자로는 각각 퀸시 존스와 퍼렐 윌리엄스, 커먼과 존 레전드가 무대에 올랐다.
시상식 중간에 준비된 이벤트 영상도 흑인들이 주인공이었다. 영화 ‘조이’의 여주인공 조이(제니퍼 로렌스)를 우피 골드버그가 패러디했고, 크리스 록은 영화 ‘마션’의 주인공 마크(맷 데이먼)가 됐다.
시상식 도중 로스앤젤레스 걸스카우트 단원들이 쿠키를 팔러 오기도 했는데 이들 역시 흑인과 아시아계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병헌의 시상식 무대는 특별했다. 이병헌은 시상식 전 ABC와의 인터뷰에서 “아시아 배우가 아카데미 시상자로 처음 나선다는 사실이 놀랍고 기쁘다”고 짧은 소감을 전했다. 외국어영화상을 발표하기 위해 소피아 베르가라와 함께 시상대에 오른 그는 헝가리 영화 ‘사울의 아들’의 라즐로 네메스 감독에게 트로피를 전달했다. 시상자 구성을 다양화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깜짝 이벤트였다. 셰릴 분 아이작스 위원장도 이날 직접 시상대에 올라 ‘화이트 오스카’라는 비난에 대해 해명하듯 “아카데미 회원 여러분이 포용성을 존중하고 그러한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시상식에서도 감동과 아쉬움이 교차했다. 영화음악계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는 88세의 나이로 6수 끝에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헤이트풀8’로 음악상을 수상했다. 시상대에서 잠시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감격해 한 그는 영화 ‘미션’(1986)의 ‘넬라 판타지아’, ‘러브 어페어’의 ‘피아노 솔로’ 등으로 한국에서도 사랑 받는 작곡가다.
유력한 남우조연상 수상자로 점쳐졌던 노장배우 실베스타 스탤론의 수상 불발은 아쉬움을 남겼다. 은퇴한 복서로 나온 영화 ‘크리드’로 아카데미의 전초전으로 불리는 골든글로브상의 남우조연상을 받았던 터라 영화 팬들의 기대가 컸다. 또한 소프라노 조수미의 무대를 볼 수 없어 아쉬워하는 한국 팬들이 많았다. 조수미는 자신이 부른 영화 ‘유스’의 주제가 ‘심플 송’이 주제가상 후보에 올라 시상식을 찾았으나 수상 불발과 함께 6분짜리 클래식 음악을 3분으로 줄일 수 없어 퍼포먼스 무대에 서지 못했다.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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