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방지법 처리를 둘러싼 여야의 강(强) 대 강(强) 대치가 이어지면서 선거법 처리 지연으로 인한 대혼란이 눈 앞으로 다가왔다. 당장 국외부재자들이 투표를 못 하고, 정당의 경선 절차도 ‘올 스톱’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여기에 무소속으로 총선을 준비 중인 후보는 후보 등록 자체도 무산될 위기에 놓이는 등 여야의 정쟁으로 인한 피해가 점점 현실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29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여야가 내달 5일까지 선거구 획정안이 담긴 선거법을 처리하지 않을 경우 국내에 주소지를 둔 유학생 등 약 15만명의 국외부재자들이 투표를 할 수 없게 된다. 현행 선거법은 내달 5일부터 9일까지 국외부재자들에게 지역구 정보 등이 담긴 선거구 단위의 선거인 명부를 열람한 뒤 투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5일까지 선거법이 통과되지 않는다면 선관위가 명부를 작성할 수 없어 국외부재자들의 투표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정당의 경선 절차도 진행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현재 여야의 당내 경선은 선관위에서 제공할 ‘안심번호’를 기본 정보로 진행될 계획이다. 그러나 선관위가 선거구 획정안 통과를 전제로 안심번호 제공을 위한 사전 작업을 진행하더라도, 선거법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다면 이 정보를 각 당에 제공할 수 없다. 각 당이 자체 면접을 진행하고 공천룰을 정하는 건 자유지만, 경선 시행은 사실상 어렵다는 얘기다.
가장 큰 문제는 무소속 후보자들이 받을 불이익이다. 획정안이 19일까지 통과되지 않을 경우, 무소속 후보자는 후보 등록 자체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행 선거법은 19일부터 정당 후보자는 정당의 추천서를, 무소속 후보자는 지역 주민들에게 추천서를 받아 24일까지 선관위에 제출해야 공식적인 후보자로 인정한다. 그러나 현재 야당은 “3월 10일까지 필리버스터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데다, 10일 이후에도 여야의 극한 대립의 여파로 선거법 처리를 위한 임시국회가 곧바로 개최될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정된 인원으로 선거 실무를 준비해야 하는 선관위는 여야를 강제할 수단이 없어 선거법 처리 지연 상황을 안타깝게 지켜만 보고 있다. 선관위 관계자는 “여야가 책임을 떠넘기고 대혼란을 피하기 위해 선거법을 통과시키면서 부칙으로 이번 총선에 한해 한시적으로 24일까지 규정한 후보등록 기한을 연장할 수는 있다”면서도 “여야의 꼼수가 나와도 절대적 시간이 부족해 몇몇 절차는 심각한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재호기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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