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대 행사서 성행위 연상 게임
대학가 입학 시즌마다 ‘OT 몸살’
예방교육 참여 학생 30%대 그쳐
연 1회 1시간 미만 ‘수박 겉핥기’
입학 시즌마다 불거지는 성추문 논란으로 대학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각 대학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OT)에 앞서 각종 성폭력 교육을 실시하는 등 예방에 나서긴 했지만 짧은 교육시간과 1회성 교육이 대부분인 탓에 ‘구색 맞추기용’이라는 비판 목소리가 많다. 교육부가 29일 해당 대학 진상 조사에 나섰지만 뒷북 대응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대학 OT에서 발생하는 성추문은 그간 꾸준히 문제가 돼왔다. 2011년 세종대 OT에서도 끌어안고 버티기 등 선정적인 게임을 강요하다 구설에 올랐고, 지난해 서강대 경영대 OT에서는 각자의 방 이름을 정하며 ‘아이러브유방’‘작아도 만져방’과 같은 성적인 표현을 사용해 잡음이 일었다.
비판이 거세지자 급기야 정부까지 나섰다. 교육부는 매년 신입생 OT 관련 매뉴얼을 각 대학에 보내고 있다. 지난해 6월 김희정 당시 여성가족부 장관도 하계 대학총장 세미나에서 “신입생 OT에 성폭력ㆍ성희롱에 관한 교육 프로그램을 넣어달라”며 대학 차원의 예방을 요청했다. 이에 대학들은 올해 OT에 앞서 자체 내부교육을 실시하거나 외부와 연계하는 성폭력 교육을 실시해왔다. 여가부도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과 연계해 올해 71회(60개 대학)를 목표로 OT 전 성폭력 예방 강연을 진행 중이다. 지금까지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한양대 정책과학대 등 44개 대학이 관련 교육을 이수한 상태다.
그러나 효과는 크지 않았다. 최근 건국대 생명환경과학대 OT에서 유사성행위를 연상시키는 게임 등 또다시 성추문 사건이 발생하면서 예방교육은 설 자리를 잃었다. 실제 건국대 신입생 OT 기획단도 이미 지난달 25일과 27일 성폭력 예방교육을 받은 상태였기 때문에 예방교육 무용론까지 제기될 정도였다.
현행 ‘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및 시행령에 따르면 대학 관계자와 학생들은 매년 1회 이상, 1시간 이상의 성폭력 예방교육을 무조건 듣게 돼 있다. 이 때문에 2013년과 2014년 교육 실시 대학은 전체 대상의 90%가 넘고 점차 증가 추세다. 하지만 정작 교육 대상인 학생 참여율은 3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 사립대 교직원은 29일 “신입생이야 프로그램을 통해 강의를 듣게 할 수 있어도 학업과 취업 준비로 바쁜 고학년들에게 교육을 강제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교육을 해도 강의 시간이 1시간이 채 안 되는 등 ‘겉핥기식’ 프로그램이 태반이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관계자는 “빽빽한 신입생 OT 프로그램 중 간신히 40~50분 시간을 냈지만 시간도 짧고 수강 규모도 커 교육에는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건국대생 송모(21)씨는 “실제 사례가 아닌 ‘성희롱은 무조건 안 좋다, 하면 안 된다’는 주입식 얘기뿐이라 머리에 남지 않았다”며 “세 살짜리도 다 아는 얘기를 듣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싶진 않다”고 말했다. 인천의 한 사립대에 재학중인 이모(20)씨도 "수백명이 한 데 모여 교육을 들으니 몰입도가 떨어지고 효율성도 없어 보였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관계당국의 관리ㆍ감독도 한계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여가부 관계자는 “매년 2월마다 성폭력 예방교육 추진 실적을 제출하도록 했으나 대학뿐 아니라 성폭력 예방교육 이수 기관만 6만개에 달해 일일이 현장 점검을 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어릴 때부터 지속적으로 양성평등 교육이 이뤄져야 성폭력 예방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지적한다. 노정민 고려대 양성평등센터 전문상담사는 “어린 시절 교육이 전무한 데다 다 큰 대학생을 상대로 한 시간 가르친다 한들 교육이 와 닿겠느냐”며 “성인 눈높이에 맞게 교육 콘텐츠를 현실화하고 어린 시절부터 끊임 없이 반복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허경주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양진하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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