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라도 별거 중에 자녀를 함부로 데려가면 처벌받을 수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부모 일방이 자식을 정상적으로 보호하고 있는데 다른 보호자가 위력으로 양육을 방해하는 것은 ‘미성년자 약취죄’에 해당한다는 취지다. 미성년자 약취죄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지는 중한 죄다.
2008년 결혼해 아들을 낳고 살던 A(41)씨는 2014년 바람을 핀 사실이 들통나면서 아내 B씨와 별거를 시작했다. 처가에 들어간 아내는 네 살배기 아들을 혼자 길렀고, 양육에서 배제된 A씨는 아들을 1년간 두 번밖에 만나지 못했다. 같은 해 낸 이혼소송이 길어지면서 아들에 대한 양육권자는 정해지지 않은 채 별거 기간은 길어져만 갔다.
아들을 볼 수 없게 된 A씨는 B씨 몰래 아들을 데려오기로 마음먹었다. 지난해 2월 A씨는 아들이 어린이집 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장모 손을 잡고 걸어가는 아들을 낚아채 대기 중이던 자신의 부모에게 건넸다. 손자를 안아 든 A씨 부모는 근처에 세워둔 차에 아이를 싣고 유유히 사라졌다. B씨는 즉각 A씨를 경찰에 고소했고 사건을 송치 받은 검찰에 의해 결국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동부지법 형사5단독 김우현 판사는 미성년자인 아들을 불법 유인한 혐의(미성년자약취)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6월의 선고를 유예했다고 29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자녀를 빼앗아 양육자와 아동에게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줬을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아버지로서 자녀에 대한 걱정으로 아이를 데려간 점 등을 고려해 형의 선고를 유예했다”고 밝혔다. 해당 사건의 선고를 두 달 앞둔 지난해 8월 먼저 진행 중이던 이혼소송에서 양육권 조정이 이뤄지면서 주중에는 A씨가, 주말에는 B씨가 아들을 보호하기로 합의한 점도 참작됐다. 검찰은 현재 항소한 상태다.
A씨를 대리한 박종민 대한법률구조공단 법무관은 “부모라 하더라도 폭행이나 협박으로 보호관계를 침해해 아이를 데려오면 처벌받을 수 있는 만큼 이혼소송 중 양육에 대해 합의하거나 양육을 위한 사전처분을 신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박지연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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