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떠나신 신영복 선생님이 자꾸 생각나는 요즘. 동물학대, 여성혐오, 아동학대 등 읽기조차 힘든 뉴스가 쏟아지지만 이를 우리 모두의 문제로 인식하는 기사는 없고, 관심은 누가 그런 일을 벌였는지 가해자에게만 맞춰진다.
맥락은 없고 동물을 학대한 자, 자식을 학대한 부모가 어떤 사람인가에만 흥미를 보인다. 포르노다. 그런 인간을 길러낸 사회에 대한 고민도 없고, 나도, 누구라도 끔찍한 사건의 피해자뿐만 아니라 같은 환경에서 나고 자랐다면 가해자가 될 수도 있음을 성찰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일면식이 없어도 신영복 선생님을 스승으로 여기고 선생님의 책을 소중히 간직한다. 나는 그중에서도 ‘청구회 추억’을 아낀다. 사람들이 동물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약자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이 책에는 약자를 대하는 모범답안이 나오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통혁당 사건으로 감옥에 가기 전인 1966년 어느 봄날, 서울대학교 문학회원들과 서오릉으로 소풍을 갔고 그 길에서 우연히 여섯 소년들을 만난다. 옷차림에 가난이 배어 있는 소년들. 보자기 속 냄비를 보고 그들도 소풍을 온 것이라 생각해 봄 소풍을 함께 즐기자고 마음먹는다. 이후 선생님이 소년들에게 다가가고 인연을 맺는 과정에는 스물다섯 살의 청년이 꼬마들을 대하는 것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의 존중과 배려가 가득하다.
소년들이 혹시 놀림의 대상이 되었다는 불쾌감을 가질까 질문 하나도 세심하게 정하고, 아이들이 대화를 통해서 긍지를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최대한 성의 있게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나이와 배움의 차이 같은 세상의 기준은 찾을 수 없다.
‘이 짧은 한나절의 사귐을 나는 나대로의 자그마한 성실을 가지고 이룩한 것이었다.’
‘머리 숙여 인사를 하는 그 작은 어깨와 머리 앞에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선생님’이 아닐 수 없었다.’
그날의 만남을 이렇게 규정짓는 글에서 나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짧은 인연과 관계 맺음에 얼마나 성실했는지 반성한다. 그런데 봄 소풍 이후 사진을 보내달라는 약속을 잊었던 선생님에게 소년들의 편지가 도착한다. 그 편지 앞에서 자신보다 성실하게 그날의 일들을 기억한 소년들에게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느낀다.
아, 고작 한나절 함께 했던 꼬마들과의 약속을 잊은 것에 대해 이토록 뉘우치는 어른이라니.
동물권리에 관한 글을 많이 쓴 철학자 마크 롤랜즈는 ‘약자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고, 절대적으로 힘이 약한 무력한 이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을 거의 다 파악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작가 밀란 쿤데라는 ‘가장 극단적이고 너무나 심오하여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진정한 인간성의 도덕적 시험은 힘없는 동물들과의 관계에서 나타난다.’고 썼다. 자주 회자되는 간디의 ‘한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성은 그 나라의 동물들이 어떻게 대우받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동물이든, 아동이든 보호해야 할 대상인 절대적 약자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 선생님과 여섯 꼬마들과의 추억을 통해 배운다.
김보경 책공장 더불어 대표
참고한 책: 청구회 추억, 신영복,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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