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정부가 29일(현지시간) 유럽 난민촌의 상징인 ‘칼레 난민촌’을 전격 철거하면서 거주 난민들과 충돌을 빚었다. 정부는 열악한 시설 및 불결한 환경 때문에 ‘정글’로도 불리는 난민촌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거주 난민들과 인권운동가들은 “이주 대책도 없이 무리하게 철거를 강행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어 논란이 확산될 전망이다.
AP 등 외신과 현지언론들에 따르면 프랑스 정부는 이날 오전 7시 프랑스 북부 칼레에 위치한 난민촌에 철거 경고 방송을 한 뒤 8시부터 경찰과 철거요원, 불도저 등 중장비를 동원해 남쪽 지역의 텐트를 철거했다. 다만 예배당이나 학교 등 공공시설은 철거하지 않았다. 정부 관계자는 “최근 철거 대상 주민들에게 수 차례 철거 계획을 설명했고, 이미 4분의 3 이상이 주거지를 떠난 상태였다”며“난민촌 거주민을 2,000명 이하로 줄이는 것이 장기 목표”라고 말했다.
프랑스 정부는 행정법원의 허가에 따른 적법한 철거라는 입장이다. 행정법원은 앞서 2월25일 “칼레 난민 일부를 이주시키려는 지방 정부의 계획이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난민들과 인권운동가 200여 명은 아무런 대책도 없는 무자비한 철거라고 강력 반발했다. 이들은 각종 집기로 바리케이드를 쌓고 돌을 던지며 거세게 저항했고 이에 맞선 경찰이 인근 도로를 차단하고 최루탄을 발사하는 등 시가전을 방불케 했다. 이 과정에서 난민 텐트 수백 동이 불탔고 인권단체 관계자들이 체포됐다.
양측은 철거 규모를 놓고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정부는 칼레 난민촌 전체에 3,700명 가량의 난민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난민촌의 남쪽 지역 철거를 통해 800~1,000명이 거처를 옮기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인권 단체들은 그 보다 훨씬 많은 5,500명이 거주 중이며 3,455명이 거주지를 잃게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이들 중에는 651명의 어린이(보호자 없는 고아 423명 포함)들도 포함돼 있다고 반발했다.
철거민 대책에서도 논쟁이 불거지고 있다. 정부는 난민촌 북쪽지역에 난방시설을 갖춘 컨테이너(1,500명 수용 가능)를 대거 설치한 만큼 철거민들이 컨테이너로 옮겨 겨울을 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또 프랑스 내 다른 난민 수용소로 옮겨가거나 프랑스에서 난민 자격을 신청할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새 컨테이너 시설은 지문 인식을 통해서만 출입할 수 있어 영국으로 넘어가길 원하는 난민들은 컨테이너 이주를 꺼리고 있는 실정이다. 영국의 한 난민 인권단체 조사에 따르면 칼레 난민들의 80%는 “난민촌이 철거되더라도 칼레나 인근 지역에 남아 있겠다”고 답했다.
영국과 프랑스 간 해저터널인 유로터널의 프랑스 쪽 입구에 위치한 칼레에는 영국으로 밀입국을 시도하는 난민들이 모여들면서 자연스레 난민촌이 형성됐다. 이들 가운데 영국행을 위해 목숨을 건 일부 난민들이 유로터널 선로로 뛰어들면서 지난 6월 이후에만 10여명이 숨졌다.
프랑스 정부의 전격 작전은 이곳이 ‘지하디스트의 은신처’라는 의혹과도 관련이 있어보인다. 영국 대테러경찰국장 출신의 케빈 헐리는 지난 1월 현장을 방문한 뒤 “난민촌은 전혀 통제 불능 상태”라며 “IS 등의 잠재적 은신처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한 난민은 영국 BBC 방송에 “난민 중에는 IS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강주형기자 cubi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