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최우수 합창연주 부문 수상
서울공대 졸업 후 버클리 음대 나와
공간 장점 살리는 녹음으로 명성
국내 1000여개 음반 작업에 참여
“그래미상 후보에만 한 번 올라가도 영광인데 두 번이나 수상했으니 정말 기뻤죠. 이번 앨범은 10년 전부터 계속 함께해온 지휘자, 합창단, 연주자들과 함께 ‘음악에 미쳐’ 작업한 앨범이라 더욱 각별했습니다.”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그래미상을 두 차례 수상한 엔지니어 황병준(49) 사운드미러코리아 대표가 축음기 모양의 트로피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황 대표는 26일 서울 양재동 사운드미러코리아 스튜디오에서 “한 곡 한 곡 녹음이 끝날 때마다 모두들 감탄의 한숨을 내쉴 정도로 행복하게 작업했던 앨범이어서 그것만으로 충분했다”고 했다.
황 대표는 찰스 브러피가 지휘하고 캔자스시티합창단과 피닉스합창단이 연주한 라흐마니노프의 ‘베스퍼스’로 최우수 합창 연주(Best Choral Performance) 부문을 수상했다. 이 부문은 1차적으로 지휘자가 상을 받지만 프로듀서와 엔지니어도 공식 수상자로 기록된다. 그는 2012년 엔지니어로 참여한 오페라 ‘엘머 갠트리’ 실황 앨범으로 그래미 시상식에서 엔지니어에게 주는 최고상인 최우수 녹음기술상을 받았다. 이번 시상식에서도 같은 부분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하지 못했다. 공식 수상자는 아니지만 2008년 그래미 최우수 녹음기술상을 수상한 러시아 작곡가 그레챠니노프의 아카펠라 합창곡 ‘수난주간’에도 참여했다. 엔지니어로 참여한 앨범 세 작품이 그래미를 수상한 건 미국이나 유럽의 유명 엔지니어에게도 흔한 일이 아니다.
황 대표는 공연장이나 성당 같은 공간의 장점을 잘 살려내는 엔지니어로 유명하다. ‘엘머 갠트리’와 ‘올 나이트 비질’은 모두 라이브 연주를 담아낸 앨범들이다. 그는 “스튜디오는 실제로 음악을 연주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인위적인 조작을 해야 좋은 소리가 나지만 교회나 성당, 공연장은 여러모로 불편하고 준비 과정이 고생스럽지만 ‘작전’을 잘만 짜면 자연스럽고 임팩트가 훨씬 큰 소리를 뽑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세계 최고 실력의 엔지니어가 된 배경에는 그의 독특한 이력이 있다. 오디오 마니아이자 음악광에 밴드에서 연주자로 활동했던 그는 원래 공학도였다.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박사과정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좋아하는 일을 하자”는 생각에 진로를 바꿔 버클리 음대에 입학했다. 필수 과정인 화성학과 대위법 등 음악 이론을 공부한 뒤 음악 제작과 엔지니어링을 공부했다. 그는 “좋은 엔지니어는 기술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음악 이론도 잘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버클리음대 졸업 후 보스턴의 유명 레코딩 스튜디오인 사운드미러에 취직했다. “제 사부가 사운드미러의 창업자 존 뉴턴이란 분인데 동료들도 무서워서 벌벌 떨곤 했죠. 처음 만나자마자 무조건 이분에게 달라 붙어서 배워야겠다고 생각해 스튜디오에서 허드렛일부터 시작했습니다. 한 달 정도 스튜디오 밖에서 빙빙 겉도는 일만 시키다가 어느 날 녹음 현장에 데려가더군요. 그 때 제 눈빛을 보셨나 봐요. 이 놈은 끝까지 가겠구나, 하고요. 그 후 쭉 저를 데리고 다니셨고 지금도 종종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황 대표는 2000년 귀국해 사운드미러의 유일한 지사인 사운드미러코리아를 설립하고 16년째 이끌고 있다. 조수미 손열음 정명화 자우림 전인권 윤도현 정태춘 등 클래식, 재즈, 국악을 넘나들며 1,000개가 넘는 음반에 참여했고 최근 개봉한 ‘검은 사제들’ ‘우리오빠’ 등 수십 편의 영화음악 녹음도 책임졌다.
2011년 송광사 스님들의 새벽 예불을 담은 앨범으로 많은 관심을 모았던 황 대표는 올해부터 국악에 더욱 많은 시간을 투자할 계획이다. 그의 목표는 “국악을 제대로 된 그릇에 담아 해외에 알리는 것”이다. “국악이 아무리 좋아도 녹음과 포장이 좋지 않으면 진가를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개인이 하기엔 한계가 있어요. 정부나 관련 단체가 무형문화재에는 그 점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언젠간 국악 앨범으로 그래미상을 받고 싶습니다.”
글ㆍ사진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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