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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에 서다, 동백숲에 빠지다… 여수 금오도 비렁길

입력
2016.03.0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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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대략 400km, 해뜨기 전에 출발했지만 여수 돌산읍 끝자락 신기항에서 12시 배를 타기에도 시간은 빠듯했다. 최종목적지는 ‘비렁길’로 뜨고 있는 금오도다.

여수 금오도 비렁길 3코스는 1km 가량 동백 숲이 이어진다. ‘비렁’은 벼랑의 사투리로 비렁길은 해안 절벽 위를 연결한 걷기길이다. 여수=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여수 금오도 비렁길 3코스는 1km 가량 동백 숲이 이어진다. ‘비렁’은 벼랑의 사투리로 비렁길은 해안 절벽 위를 연결한 걷기길이다. 여수=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5시간을 달려온 수고에 비해 배를 타는 시간은 좀 싱거웠다. 차량과 승객을 싣고 신기항을 출항한 여객선은 뱃머리를 돌리는가 싶더니 20여분 만에 금오도 여천항에 닿았다. 여성의 가슴을 닮은 2개의 봉우리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비유한 지명이라는데, 섬의 첫인상은 부드럽다기 보다 웅장해 보였다. 상상했던 다도해의 자그마한 섬과는 거리가 멀었다.

금오도는 여수에서는 더 이상 섬이라 할 수 없는 돌산도 다음으로 크고, 전국에서도 21번째 가는 큰 섬이다. 돌산의 금오산과 마찬가지로 섬의 형상이 황금빛 자라(金鰲)를 닮았다고 붙은 이름이다. 한때는 외부에서 보면 거뭇할 정도로 숲이 우거져 거무섬으로도 불렸던 곳이다. 1881년까지 나라에서 관리하는 섬으로 묶여있어 사람이 살지 않았던 것도 한몫 한 것으로 보인다.

돌산읍 신기항에서 배로 20분, 금오도는 여수에서 가장 큰 섬이다.
돌산읍 신기항에서 배로 20분, 금오도는 여수에서 가장 큰 섬이다.

섬 서편 가파른 벼랑으로 연결한 ‘비렁길’5개 코스는 총 18.5km로 8시간 30분을 잡는다. 섬에서 하룻밤 묵으면 전체 코스를 걸을 수 있겠지만, 당일 나와야 한다면 1개나 2개 코스가 적당하다. 관광안내소의 추천으로 1코스와 3코스 일부를 걸었다.

1코스 출발은 섬의 서쪽 끝자락 함구미 마을이다. 들쭉날쭉한 9개의 해안절벽이 아름답다 는 의미인데, 바다에서 보려면 여수항을 오가는 여객선을 타야 한다. 비렁길은 바로 그 해안절벽 위를 걷는다. ‘비렁’은 벼랑의 이곳 사투리다. 함구미 마을 오른편 언덕에서 시작하는 길은 시멘트 바닥이 모두 닳아 헤진 산길이다. 리어카 하나 겨우 지날 좁은 길은 지금은 사라진 용머리골 마을까지 연결된다. 용머리골은 가파른 언덕배기에 형성된 제법 큰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돌담만 폐허처럼 남아 있다.

1코스 수달피비렁 전망대.
1코스 수달피비렁 전망대.
1코스 미역널방 전망대. 비렁길 소개 책자에 주로 등장하는 장면이다.
1코스 미역널방 전망대. 비렁길 소개 책자에 주로 등장하는 장면이다.
‘금오도의 바람 햇살 바다’라는 작품 뒤로 다도해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금오도의 바람 햇살 바다’라는 작품 뒤로 다도해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실제 농로로 이용된 길은 여기까지이고 그 이후부터는 나무나 낚시를 하러 다니던 길을 새로 정비했다. 해안으로 바짝 붙은 벼랑길에 안전시설을 더하고 조망 좋은 곳에는 전망대를 만들었다. 가장 먼저 만나는 전망대는 미역널방, 바위절벽 꼭대기가 미역을 널어 말리기 좋을 만큼 제법 터가 넓다. ‘금오도의 바람, 햇살, 바다’라는 스테인레스 작품도 설치했다. 운이 좋으면 수직 절벽 아래 푸른 물살에서 쇠돌고래과의 상괭이 떼가 헤엄치는 모습을 볼 수도 있는 곳이다.

이곳부터 ‘수달피 비렁 전망대’까지는 오른편으로 계속 바다를 끼고 걷는다. 길은 절벽에 더욱 다가섰지만 계단과 안전시설을 갖추어서 아찔함에 비해 위험하지는 않다. 절벽 구간이 끝나는 지점에서 송광사 터를 지나면 출발점인 함구미 마을 뒤편이다. 가파른 언덕을 지그재그로 연결한 골목을 따라 밭과 지붕이 번갈아 내려다 보이고 그 끝으로 바다가 펼쳐진다. 출발할 때 보지 못했던 마을 풍경이 더없이 평온하다. 빨강 파랑 슬레이트 지붕 위에는 바람 피해를 막기 위해 머리만한 돌이나 굵은 밧줄을 얹었다. 금오도는 남쪽에서 불어오는 태풍과 풍랑의 1차 저지선이다. 그 탓에 농촌마을에서 흔한 비닐하우스 하나 없다. 이 섬에서 한풀 꺾인 파도는 금오열도 작은 섬들에 부딪혀 다시 한번 잦아들고 여수 앞바다 가막만은 잔잔한 내해가 된다.

해안 언덕 위로 밭과 집이 올망졸망한 함구미 마을
해안 언덕 위로 밭과 집이 올망졸망한 함구미 마을
그림 7 덩굴식물과 조화를 이룬 함구미 마을 돌담.
그림 7 덩굴식물과 조화를 이룬 함구미 마을 돌담.
마을 어귀에는 매화가 하얗게 피었다.
마을 어귀에는 매화가 하얗게 피었다.

밭을 일구며 파낸 돌무더기로는 담장을 둘렀다. 집뿐만 아니라 밭두렁도 돌담이다. 구멍 숭숭 뚫린 제주의 돌보다는 단단하고 무거워 담을 쌓는데 곱절은 힘이 들었을 듯하다. 덩굴식물인 콩짜개덩굴과 송악(담장나무)이 자연스럽게 돌 틈을 파고 들어 단단히 옭아맨 풍경이 오래된 민속마을 못지 않다. 볕 좋은 담장 아래선 금오도 특산물인 방풍(갯기름나물)을 다듬는 농민의 손길이 바쁘다. 겨우내 땅바닥에 붙어있던 이파리가 본격적으로 자라기 시작하는 터라 지금이 가장 맛있을 때이기도 하다. 마을 어귀에는 매화가 팝콘 터지듯 망울을 터트려 섬마을 풍경이 더욱 화사하다.

3코스는 직포 마을에서 시작한다. 이 구간은 오르막내리막이 많아 가장 힘든 만큼 풍광도 빼어난 곳이다. 출발부터 빼곡한 동백나무 숲이 터널을 이룬다. 간간이 하늘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갈바람통 전망대’까지 약 1km를 걷는 내내 발갛게 떨어진 동백꽃잎과 동행한다. 한꺼번에 피었다 지는 꽃이 아니라 화려하진 않지만, 붉고 두툼한 질감이 풍기는 무게는 굵은 눈물 한 방울처럼 결코 가볍지 않다.

비렁길 3코스 초입은 동백 숲. 바닥에 떨어진 붉은 꽃잎이 산책길과 함께 한다.
비렁길 3코스 초입은 동백 숲. 바닥에 떨어진 붉은 꽃잎이 산책길과 함께 한다.
해안 절벽을 파고 든 ‘바람 통’을 가로 지른 비렁다리.
해안 절벽을 파고 든 ‘바람 통’을 가로 지른 비렁다리.

이곳부터‘매봉 전망대’까지는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비렁길에서 가장 높은 전망대인만큼 드넓게 펼쳐진 바다 풍경에 가슴이 뻥 뚫린다. 전망대에서 내려오면 바닷물이 파고든 좁은 해안 절벽을 연결하는 ‘비렁다리’를 건넌다. 다리 중간을 투명 유리로 마감해 수십 미터 아래 벼랑의 아찔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햇살이 부서지는 봄 바다의 유혹을 뿌리치고 배 시간에 쫓겨 여천항으로 돌아서는 발걸음이 아쉽기만 하다.

여수=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금오도 비렁길에 가려면

비렁길 여행객들이 돌산 신기항을 출발해 금오도 여천항에 도착한 여객선에 오르고 있다.
비렁길 여행객들이 돌산 신기항을 출발해 금오도 여천항에 도착한 여객선에 오르고 있다.

금오도행 여객선은 돌산 신기항~여천항 구간에 하루 7차례, 여수항~함구미항 구간에 3차례 왕복한다. 섬 내에서 이동 계획을 잘 짜야 한다. 여천항에서 1코스 함구미까지는 약 4km, 3코스 직포까지는 10km다. 섬에는 2대의 택시가 운행하는데 기본요금은 1만원이고, 가장 먼 안도까지는 2만원을 받는다. 3대의 버스는 배 시간에 맞춰 운행하기 때문에 여천항에서 목적지로 이동할 때는 문제없지만, 트레킹을 마치고 돌아올 때는 시간을 미리 확인해야 한다.

차량을 가지고 가면 섬 안에서 이동은 자유롭지만, 코스마다 출발지점으로 되돌아와야 하는 점이 번거롭다. 배에 차량을 싣고 가려면 예약은 안되고 선착순으로 기다려야 해 연휴나 성수기에는 시간을 넉넉히 잡아야 한다. 출발 10분 전에 매표를 마감하고, 승선할 때는 꼭 신분증이 필요하다. 신기항~여천항 기준 편도 뱃삯은 승객 5,000원, 차량 1만5,000원이다.

여수=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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