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꾼은 절창을 얻기 위해 눈을 버린다지만, 화가 고 이중섭의 은지화(銀紙畵)야말로 지독한 가난 속에서 나온 눈물의 절창이다. 그가 담뱃갑의 은박 속 포장지를 못 등으로 긁어 그리는 은지화에 몰두한 건 부산에 홀로 살 때였다. 6ㆍ25 전쟁이 나자 부산에서 제주로, 다시 부산으로 떠돌았다. 궁핍의 시대에 예술가에게 남겨진 밥벌이는 고작해야 막노동뿐이었다. 배고픔이라도 면하게 하려고 일본인 아내와 아이들마저 일본으로 보내야 했다. 단칸방에서 지내며 종이 살 돈이 없어 담배 은지를 주워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절절히 담은 명작을 잇따라 낳았다.
▦ 예술가는 가난할 수밖에 없다. 아귀다툼을 해야 거머쥘 수 있는 돈이, 저 높이 구름 사이를 떠도는 고귀한 영혼의 주머니에 깃들 수 있겠는가. 시인 함민복은 그 가난의 풍경을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어줄 수 있을까’(<긍정적인 밥>)라고 그렸다. 시인 고 천상병은 ‘가난은 내 직업인데’(<나의 가난은>)라고도 했다. 그 가난을 알기에, 고인이 된 작가 박완서는 “내가 죽으면 찾아올 문인들 중에는 가난한 사람이 많으니 부의금을 받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 3일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작년에 국내 예술인이 예술활동을 통해 번 1인 당 평균 수입은 1,255만원이었다. 부업을 하거나 다른 가족이 번 돈을 합친 예술인 가구 당 수입으로 쳐도 가구 평균소득 4,767만원보다 적은 4,683만원에 그쳤다. 그나마 최근 웹툰의 인기 때문에 만화가는 1인 당 소득이 2,000만원을 넘었지만, 문학은 214만원에 불과해 가장 가난한 예술장르인 것으로 나타났다.
▦ 예술적 영감의 사회적 가치를 생각하면 ‘세익스피어는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는 영국인들의 얘기도 지나친 과장만은 아니다. 하지만 정부의 요란한 지원프로그램에도 불구하고 예술인 복지는 여전히 미미하다. 한국문인협회에서 발간하는 문학지 <월간문학>의 고료만 해도 등단 중견작가의 단편소설 한 편에 40만원에 불과하다. 창작지원금 제도가 있으나, 수혜자는 전체 등단 문인의 10%에도 미치지 않는다. 성실히 작품활동을 하는 사람들만이라도 좀더 많은 지원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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