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에 대응해 나온 유엔의 첫 대북제재 결의안 1718호를 주도한 이는 당시 유엔주재 미국대사 존 볼턴이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출범 초기 미 국무부 군축 담당 차관이었던 그는 당시 딕 체니 부통령, 로버트 조지프 등과 함께 대북 강경책을 주도한 네오콘의 대표적 인물이다.
제재와 압박을 통해 북한을 굴복시켜 핵을 포기시키려 했던 이들의 신념을 요약한 문구는 아마도 “악마와는 협상하지 않는다”(딕 체니)일 것이다. 이들은 북핵 해법의 또 다른 줄기, 즉 대화와 경제적 지원, 체제 보장을 통해 북한의 핵무기를 포기시키려 했던 클린턴-김대중 정부 시절 대북 관여정책의 대척점에 선 매파들이다. 실제 클린턴 행정부 때 체결된 제네바 합의(1994년)를 ‘쓰레기’로 취급했던 이들은 정권을 잡은 뒤 북한의 고농축우라늄프로그램 의혹을 터뜨리며 결국 제네바 합의를 무효화시키고 북핵 해법의 물줄기를 뒤집어놓았다.
그렇다고 모든 게 이들의 뜻대로 굴러갔던 것은 아니었다. 예컨대 존 볼턴은 2006년의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에서 북한을 드나드는 모든 화물에 대한 검색을 승인하는 조항을 넣으려 했으나,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발목이 잡혔다. 이들은 유엔 제재와 별도로 대량살상무기(WMD) 수송 혐의의 선박과 항공기의 화물을 검색ㆍ압류토록 하는 대량파괴무기확산방지구상(PSI)도 밀어붙였지만 중국뿐 아니라 당시 노무현 정부조차 PSI에 가입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이런 변명이 가능했다. 대북 관여파들이 북핵 문제 해결 직전까지 갔다가 좌절하고 만 것은 대화와 협상을 거부한 강경파 때문이라고 주장하듯이, 강경파 역시 압박 정책이 성공하지 못한 것은 관여파 탓이라고 강변할 여지가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협상해봐야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 는 매파와 “아무리 압박해봐야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비둘기파는, 한미를 포함한 주변국간 엇박자까지 겹치며 각자 제한된 정책만 시행하다가 서로를 탓하며 20여년의 시간을 보내왔던 셈이다. 그 사이 북핵이란 암덩어리는 더욱 커져 버렸다.
북한의 4차 핵실험은 결과적으로 이 지지부진함을 끝내고 어느 쪽이든 결판을 내야 하는 상황으로 몰았다. 지난 2일 채택된 유엔 안보리 결의안 2270호는 존 볼턴이 못 다 이뤘던 구상이 그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구현됐다. 구속력이 약했던 PSI의 조치를 훨씬 뛰어넘어 WMD 의심 증거 없이도 북한행ㆍ발 모든 화물을 검색하게 됐을 뿐만 아니라 석탄 등의 무역 거래 제한 조치, 금융 제재까지 망라됐다. 더구나 한국은 개성공단까지 독자적으로 중단시켰다. 어찌 보면 지금은 모두가 존 볼턴의 사람들이 된 셈이다.
그렇다면 이것으로 북한이 과연 핵을 포기할까. 대북 압박파들이 내심 기대하는 대로 북한이 붕괴하게 될까. 북한 같은 정권과의 타협이 혐오스럽지만, 그렇다고 압박으로는 북이 핵을 포기하거나 붕괴할 것 같지 않다고 여기는 나로선 진정 이번 압박책이 성공해 내 판단이 틀리기를 바란다. 하지만 유엔 차원에서 ‘끝장 결의’라고 할만한 조치까지 나온 마당에서 북한이 체제붕괴는커녕 내부 결속력을 더욱 높이고 5, 6차 핵실험까지 하게 된다면, 압박파들에게 더 이상 남은 카드가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공도동망(共倒同亡)하지 않을 거라면 군사적 타격을 못했기 때문이란 변명은 하지 말자.
우리 정부도 개성공단 가동 중단이란 마지막 지렛대까지 썼다는 점에서 북핵 문제도 이제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진작에 끝냈을 북핵 문제가 누구 탓에 질질 끌어왔는지도 판가름날 것이다. 만약 이번 압박마저 실패로 드러난다면 우리는 결국 ‘평화협정’이란 더 큰 판돈을 내고 북한을 대화의 장에 불러들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북한과 타협하기 싫다’는 가치판단이 ‘압박만으로는 북한을 변화시킬 수 없고, 북핵 위험은 더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뛰어넘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송용창 정치부 기자 hermeet@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