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제2의 윤상림’김홍수 사건
대전 법조 비리땐 판ㆍ검사 8명 옷벗어
1997년 의정부지원 판사출신 변호사
사무장 고용해 1년여만에 17억 수임
법조 브로커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것은 1997~1998년 ‘의정부 법조 비리’ 사건이다. 1997년 10월 의정부지청은 의정부지원 판사 출신 이모 변호사가 개업 후 브로커 역할을 하는 사무장을 고용해 1년여 만에 17억원대의 사건을 수임했다고 밝혔다. 그는 관할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된 피의자들의 사건을 70% 이상 쓸어갈 만큼 대단한 알선 능력을 발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속된 사무장의 수첩에는 전현직 판ㆍ검사 20여명의 적혀 있었다.
조사결과 의정부지원 소속 판사 15명이 명절 떡값, 휴가비 등의 명목으로 각각 수백만원과 향응을 제공 받은 것으로 확인됐지만, 검찰은 “관행이기도 하고 사법부의 권위를 존중하기 위해”라며 ‘징계 조건부 기소유예’ 결론을 내렸다. 연루된 판사들이 대거 정직 경고 등 징계를 받았고 판사 8명과 당시 지원장이 법원을 떠났다. 금품수수와 관련해 현직 판사가 중징계를 받거나 사표를 쓴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다.
1998년 12월에는 브로커의 폭로로 ‘대전 법조 비리’ 사건이 터졌다. 대전지검 부장검사 출신 이모 변호사의 사무장이 수임료 일부를 횡령해 해고되자 이에 앙심을 품고 변호사의 수임내역서 등 비밀장부를 폭로한 것. 현직 판ㆍ검사를 포함해 검찰과 법원 직원, 경찰관 등 300여명이 변호사에게 사건을 알선하고 소개비를 받았으며 검사 25명도 금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검사장급 2명을 포함, 검사 6명이 사표를 내고 7명이 징계나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고, 판사 2명도 옷을 벗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2004년에는 희대의 법조 브로커 윤상림(64ㆍ사진)씨 사건이 있었다. ‘단군 이래 최대 브로커’로 불린 윤씨는 정ㆍ재계와 군경, 법조계 및 언론 등 거의 모든 분야에 손을 뻗쳤다. 고졸 출신인 윤씨는 호텔업을 하며 전형적인 ‘호가호위’ 방식으로 각계 각층의 인맥을 만들었다. 재계 임원의 상가에서 국회의원과의 친분을 내세워 사귄 뒤 다른 자리에서는 그 임원과의 관계를 과시해 다른 중소업체로부터 돈을 받아 챙기는 식이었다. 80년대에는 비주류인 비(非)하나회 장성들에게 부대 행사에 쓰라며 수백마리의 돼지를 기증하거나 조의금으로 수천만원을 내 환심을 샀다. 이렇게 쌓은 인맥을 바탕으로 ‘거물 법조 브로커’로 성장한 윤씨의 수첩에는 법조계 인사 400여명을 포함, 1,000여명의 연락처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검찰은 2005년 11월 윤씨를 체포해 8개월 동안 10차례에 걸쳐 사기ㆍ공갈ㆍ알선수재ㆍ변호사법 위반ㆍ뇌물공여 등 58건의 혐의로 구속기소했고, 2008년 대법원에서 징역 8년, 추징금 12억3,930만원을 선고한 원심이 확정됐다.
뒤를 이은 것이 ‘제2의 윤상림’ 김홍수(68)씨다. 검찰은 2006년 7월 현직 고법 부장판사, 전직 검사와 경찰서장 등에게 금품과 향응을 제공한 김씨에 대해 변호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했고 2007년 대법원에서 징역 3년, 추징금 2억2,600만원이 확정됐다. 서울 강남에서 고가의 이란 카펫업체를 운영하던 김씨는 초교 동창으로부터 청와대 고위직을 지낸 모 변호사를, 다시 그를 통해 부장판사 등 법조인들을 소개받았다. 이후 판ㆍ검사들의 술값을 내주거나 전별금 등을 건네며 친분을 유지하면서 로비 능력을 발휘했다. 이 때 차관급인 고법 부장판사가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고 이용훈 대법원장이 공개적으로 사과했으며 검찰도 법조 비리 근절 대책을 발표했다.
안아람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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