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하러 가서 간단히, 아니 대충 끼니를 때우던 푸드코트의 시대가 이제 석기시대처럼 멀게 느껴진다. 백화점이나 새로운 몰이 생길 때마다 매력적인 푸트코트는 불가결한 요소가 됐다. 작년 8월 오픈한 현대백화점 판교점은 1만4,200㎡ 규모의 식품관을 차려 하반기 유통업계 핫이슈로 상쾌하게 출발했다. 세계적 명성의 브런치 카페 ‘사라베스’, 뉴욕 명물 컵케이크 ‘매그놀리아’에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시작한 그로서란트(식품점 ‘Grocery’와 레스토랑 ’Restaurant’을 결합시킨 형태) ‘잇탈리(Eataly)’까지 들여와 수많은 식객들을 판교로 불러 모으고 있다. 그뿐 아니라 ‘미타니야’, ‘부민옥’ 등 서울의 명성 자자한 맛집들까지 진용을 갖췄다.
백화점 푸드코트의 진화는 미래지향형
8월 그랜드 오픈을 위해 부분 리뉴얼 공사를 진행 중인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은 지난달 26일 본관 뒷건물 4층부터 11층까지를 올린 8개층 증축부 신관을 먼저 선보였다. 새로 연 신관에는 SSG푸드마켓과 본점 등에서 먼저 선보인 음식 유전자를 더 깊게 새겼다. 우선 층마다 음식 냄새가 피어오른다는 것부터가 색다르다.
11층 식당가를 제외한 4층부터 10층까지 전층에 각각 카페를 넣었다. ‘페이야드’, ‘베키아 에 누보’, ‘자주 테이블’, ‘콩부인 워터웍스’ 등 어느 층에서도 목이 타거나 허기에 시달릴 필요가 없게 됐다. 11층 식당가에는 힘을 더욱 줬다. 3대째 영업 중으로 그간 백화점에 분점을 내지 않았던 평양면옥 분점을 최초로 ‘모셨고’, 파인다이닝 셰프인 이형준 셰프를 포섭했다. 한남동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수마린’과 식료품점 겸 카페 콘셉트의 ‘에피세리 꼴라주’에 이은 세 번째 식당 ‘꼴라주’를 11층 식당가에 냈다. 도쿄 아자부, 아오야마, 신주쿠 등 곳곳에 지점을 가진 구라야미자카 미야시타(暗闇坂 宮下) 주식회사와 기술 제휴한 소바, 우동, 카쓰 전문점 ’히바린’도 국내 1호점으로 입점했다. 조선호텔이 본점에 처음 낸 중식당 ‘호경전’과 한남동의 퓨전 태국 식당 ‘타마린드’, 신사동의 인기 식당 ‘더 키친 살바토레 쿠오모’, 담양의 떡갈비 스타 ‘덕인관’까지 어느 한 곳 빠지지 않는 디테일을 살렸다. 8월 오픈 때는 ‘라 뒤레 카페’도 한국 최초로 입점한다. 물론 지하 식품매장 역시 확장하고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 중이다.
신세계백화점 홍보 담당 홍성민 파트너는 "백화점에서 식품 부문은 집객에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이젠 백화점의 성패가 식품에서 갈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남점 리뉴얼에서도 패션 부문 못지 않게 식품에 많은 비중을 뒀다”고 말했다. 이제 음식은 유통업계에서 손쉬운 ‘미끼’가 아닌 중점 분야, 혹은 자존심의 근거가 됐다는 의미다. 신세계백화점의 경우 전점 매출은 2014년 0.1%, 2015년 0%로 더딘 신장률을 보였지만, 식품 매출만은 같은 해에 각각 5.4%, 6.5% 꾸준히 상승했다. 갤러리아백화점이 장안의 스타 식당들을 유치한 ‘고메이494’로 백화점 푸드코트의 패러다임을 바꾼 2012년 이후 불과 5년 만에, 공룡처럼 자라난 백화점 푸드코트는 지하 푸드코트 밖으로 나와 백화점 전층의 공기를 바꿔 놓았다.
백화점에서 골목으로 나온 푸드코트
이제 더 이상 장진우(30)씨를 '경리단길 골목대장'이라 부르기 어려워졌다. 제주 대구 광주 등 지방에도 진출한 ‘장진우 회사’ 대표가 된 그의 출발지는 경리단길 뒤편 주택가, 회나무길 골목이었다. ‘장진우 식당’은 한 칸짜리 매장 한쪽 면을 최소한의 주방이 차지하고, 한 가운데에 커다란 테이블을 간신히 놓은 것이 다였지만 그 골목 이름이 '장진우 골목'으로 불린 건 도로명주소가 실행되기도 전이었다. 소셜 다이닝, 힙스터 등 몇 가지 시대의 유행 키워드를 관통하며 그의 '골목 놀이'는 확장을 거듭해 직접 운영하는 매장만 해도 총 21곳에 이른다. 컨설팅이나 인테리어로 관여한 곳은 부지기수다. 장진우 골목에는 감각이 비슷한 이웃들도 입점해 있어 주말이면 모여든 손님들로 유명 관광지를 방불케 한다. 장진우 골목은 그 자체로 푸드코트의 일종이었다.
장진우 골목에서 그랜드 하얏트 서울로 올라가는 오르막길에 그의 또 하나의 새로운 도전이 자리한다. ‘스핀들 푸드 마켓’(이하 ‘스핀들 마켓’)이다. 큰 홀 하나에 여러 개 주방이 둘러싼 전형적인 푸드코트 형태다. “독일 베를린 여행 중 한 쇠퇴한 지역에 생긴 푸드코트로 인해 풍경이 바뀐 모습을 봤다. 다양한 음식을 저렴한 가격으로 모아 먹는 재미가 동네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영국 런던 보로마켓에서도 마찬가지 경험을 했다. ‘장진우 회사’의 식당들은 사실 생각보다 고가의 음식을 팔았다. ‘1만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뉴스에선 하루가 멀다 하고 불황을 경고하고 있다. 닫혀 있는 지갑을 열고 싶었다. 다양한 사람이 모여 다양한 음식을 먹는 풍경을 떠올렸다. 예약도, 대기 줄도 없이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푸드코트를 만들고 싶었다.”
아이디어의 실마리에 불과했던 스핀들 마켓이 시작된 것은 마침 리모델링 중이던 스핀들마켓 건물의 건물주와 의기투합하면서부터다. 술자리에서 오간 최초의 기획회의는 곧 누구에게도 불공평하지 않은 계약서로 완결을 맞았다. 건물주는 인테리어와 유지 보수를 도맡는다. 장진우 회사는 기획부터 입점 매장 섭외, 홍보, 자잘하게는 음악 선곡까지 공간 운영을 담당한다. 입점 매장은 임대료 대신에 매출 20%를 수수료로 내고 나머지 80% 중 각자 쓴 재료비, 인건비, 가스요금을 제한 매출을 이익으로 정산할 수 있다. 건물주에게는 공실 없이 건물을 임대할 수 있는 포맷이 생긴 셈이고, 입점 매장은 인테리어, 임대 보증금 등 초기 투자 부담 없이 약소한 자금으로 자신의 가게를 갖게 된다. 1년 단위로 갱신되는 임대 계약이므로 팝업스토어의 집합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렇게 지난해 12월 23일 오픈한 스핀들 마켓은 벌써 주말 경리단의 대표적 관광지로 자리 잡아가는 중이다. “아빠는 8,000원짜리 쌀국수, 아이들은 4,000원짜리 피자 한 조각과 1만원짜리 파스타를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곳. 남녀노소뿐 아니라 강아지도 함께 올 수 있는 곳”이 만들어진 셈이다.
스핀들 마켓에 입점한 ‘쏘이연남’ 임동혁 대표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그는 연남동 상권 발달을 촉발시킨 ‘툭툭 누들타이’로 시작해 현재는 쏘이연남, ‘오파스’ 등 여러 개 식당을 갖고 있다. 여러 차례 백화점 등지에서 입점 제안을 받았지만 신중하게 고사를 거듭하고 있는 그가 스핀들 마켓에 끌렸던 점은 백화점과 달라서다. “독립 푸드코트의 고객들은 오로지 식사를 하기 위해 찾아오는 이들이다. 충성도 높은 고객층이라는 의미다. 입점 결정에서 가장 끌렸던 점은 문화를 만든다는 포부와 목표를 장진우 대표뿐 아니라 건물주도 한 뜻으로 갖고 있었던 점이다. 게다가 초기 비용 없이 시작할 수 있다는 점 또한 빼놓을 수 없는 포인트였다. 연남동에서 떨어진 경리단 상권으로 고객을 분산한다는 의미도 컸다.”
공유 경제를 꿈꾸는 1.5세대 푸드코트
백화점과 쇼핑몰의 푸드코트가 매출 증대를 목적으로 발달해왔다면, 사실 스핀들 마켓은 매출 증대가 아닌 제3의 목적으로 생겨난 1.5세대 푸드코트다.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사회적 이슈 영향으로 매일 언론에선 건물주를 악의 축으로 몰아가고 있지만, 실제 대부분 건물주들은 되레 임차인이 잘 돼서 오래 있길 바란다. 건물주 역시 건물을 통해 이윤을 추구해야 하니 상식선에서 임대료를 인상하고, 상권이 발달하면 그만큼 부동산 가치에 걸맞은 이윤을 거두고자 할 뿐이다. 중간에서 서로를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임차인은 건물주에게 과도한 임대료 인상이 영업에 어떤 폐해를 주는지를, 건물주는 상권 발달로 상승한 임대물의 가치를 서로 설득하면 될 문제라는 게 장진우 대표의 관점이다. 그는 이를 두고 “또 하나의 공유 경제”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푸드코트가 골목으로 나와야 했던, 혹은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장진우 대표는 경기 침체에서 이유를 찾는다. “처음 장진우 식당을 냈던 5년 전만 해도 사실 이런 모델이 필요하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정말 적은 비용으로 식당을 시작할 수 있었다. 반지하 방에서 친한 동생과 집세를 나눠 내며 끼어 살았던 나도 작게나마 시작할 수 있었을 정도였으니까. 그때 얘기했다면 그 누구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이젠 모두가 어려워졌기 때문에 스핀들 마켓이 건물주와 입점 매장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고 본다. 얼마 전 기사를 보니 평균 창업 비용이 1억원을 훌쩍 넘더라. 그건 아주 큰 돈이다. 스핀들 마켓에서는 1억원이 없는 사람도 적은 돈으로 가게를 열고, 열심히 하면 1억원으로 창업한 사람만큼 돈을 벌 수 있는 구조가 갖춰져 있다. 나는 이런 것이 사회적 기업이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돈을 축적하는 대신 나눠야 한다. 이제까지 회사가 커지는 동안에도 번 돈은 모두 새로운 가게에 투자해왔다.”
장진우 회사는 얼마 전 사회 환원 성격의 사업만 신규로 하기로 선언했다. 실제로 이미 공익성을 띤 프로젝트들이 여럿 돌아가고 있다. 이를테면 스핀들 마켓에 낸 장진우의 새 브랜드 ‘도나스 레코드’ 제품 생산은 영등포 ‘나로센터’에 맡기고 있다. 나로센터는 한국뇌성마비복지회에서 설립한 뇌성마비장애인들의 직업재활센터다.
요새 스핀들 마켓에는 장진우 대표와 안면 있는 요식업계 기획자들이 자주 눈에 띈다고 한다. 벤치마킹을 위해서다. 사실 문화적 목표를 거둬내고 보면 이런 독립 형태의 푸드코트는 해외에서 이미 몇 년 전부터 중요한 트렌드로 꼽히는 요식업 키워드로, 유명 셰프, 사업가들이 뛰어든 큰 비즈니스 판이다. 의도했건 그러지 않았건 지난 몇 년 간 서울의 요식업 트렌드 키워드를 앞장서 나갔던 장진우 대표의 감은 이번에도 적중했을까? 올해엔 서울에 맛있는 소식이 좀더 잦아질 전망이다.
푸드라이터 이해림 herimthefoodwriter@gmail.com
사진 포토그래퍼 강태훈
뉴욕을 여행하는 맛있는 방법, 푸드홀 투어
전 세계적인 트렌드의 발원지, 뉴욕에서는 서울보다 훨씬 본격적인 푸드코트 붐이 불었다. 미국 전역으로 뉴욕의 푸드코트 트렌드가 퍼져나간 뒤지만, 맨해튼에는 지금도 근사한 새 푸드코트가 끊이지 않고 등장하고 있다. 세계적 명성을 가진 셰프 앤서니 보댕도 샌프란시스코에 연 푸드코트 ‘피어 23’에 이어 2018년 맨해튼 ‘피어 57’ 지역에 지명을 딴 더 거대한 푸드코트를 낼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의 푸드코트 중 가장 먼저 떠오를 법 한 곳은 ‘첼시마켓’이다. 맨해튼 서쪽 허드슨 강가, 한 때 활기를 잃었던 미트패킹 지역에 생긴 마켓과 푸드코트는 지난해 전 구간을 개장한 하이라인과 연결되어 더욱 더 뉴욕을 대표하는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했다. 신선한 해산물을 찾는 지역 주민들의 발길도 잦다.
영화 ‘나 홀로 집에2’에서 케빈이 머물던 뉴욕 더 플라자 호텔의 상징은 2010년부터 바뀌었다. 고풍스러운 로비나 찬란한 스위트룸, 로비의 벨맨 대신 지하의 푸드홀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프리미엄 푸드 홀'을 콘셉트로 '루크 로브스터', ‘에피세리 블뤼’, ‘라 메종 드 쇼콜라' 등 쟁쟁한 매장들이 입점했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관광객은 물론 미드타운 주변 직장인의 '퀵 바이트'(간단히 먹는 식사) 성지로도 활약 중이다.
역시 2010년 오픈한 ‘잇태리’는 최근 현대백화점 판교점이 유치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고급 식재료와 와인, 반조리 식품과 레시피 박스를 판매하는 동시에 레스토랑, 카페가 모인 푸드코트와 쿠킹 클래스까지 음식에 대한 모든 것을 망라한다.
2013년 오픈한 헬스키친의 ‘고담 웨스트 마켓’은 뉴욕의 일본 라멘 트렌드를 이끈 이반 오르킨의 ‘이반 라멘 슬러프 숍’, 이베리아 지방 음식을 내세운 타파스 바 ‘엘 콜마도’ 등이 입점해 하이엔드 푸드코트 중 한 곳으로 손꼽힌다. 펜 스테이션 지역에 자리한 ‘펜시’는 가장 최근에 생겼다. 올해 1월 오픈한 펜시는 푸드코트판 ‘어벤저스’라 할 만하다. 드라이에이징한 소고기와 버거 패티를 주업으로 ‘셰이크 셱(일명 쉑쉑버거)’, ‘스포티드 피그’ 등 유명한 레스토랑에 고기를 대며 대중에게도 명성을 날리게 된 정육업자 팻 라프리다, 뉴욕을 대표하는 스타 셰프 마리오 바탈리와 메리 귈리아니, 마크 포르지오네에 비건 푸드트럭으로 유명해진 ‘시나몬 스네일’도 참여했다.
푸드라이터 이해림 herimthefoodwriter@gmail.com
사진 각 업체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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