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을 지칭할 때 그 속성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이름을 부여하는 것은, 부르는 사람에게도 듣는 사람에게도 피곤한 일이다. 하지만 이름에서 상상되는 내용과 실제 내용물이 너무 다르다면, 마치 포장지에는 야채죽라고 붙어 있는데 안에는 토사물이 담긴 격이라면, 반드시 필요한 피곤함이다. 그렇기에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테러방지법안을 필자는 한 번에 140자밖에 못 쓰는 트위터에서조차 굳이 띄어쓰기 없이 ‘테러방지빙자국정원권력남용법’이라고 표기하는 고집을 부린다. 입안자들이 법안에 붙인 이름이라는 단순 정보를 전하는 기계적 조치 너머, 실제 내용물의 사실관계를 반영하는 포괄적 맥락 전달이 바로 공정성의 가치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정치 진영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아니라 선진 민주사회에 대한 냉정한 함의로 견줄 때, 이번 법안의 장단점 시비는 명확하게 가려진다. 필리버스터 국면 속에서, 더민주와 정의당 의원들은 여러 밤을 새워가며 민권 침해 독소조항들을 조목조목 사례와 논리로 비판했다. 국민 전체가 생방송으로 전 과정을 볼 수 있었고, 기존 제도를 최대한 활용하는 대안, 부분 타협안과 폐지안까지 여러 대안이 이미 테이블에 올라와 있다. 반면 입안 측은 그저 국가 비상사태라며 막연한 불안을 자극하고 ‘국회가 국정에 방해됨’을 한탄하는 정치혐오 전략을 반복하고 있다. 이렇듯 모든 이치다운 이치에서 밀리고 있어도, 강행 측이 여론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지닌 부분이 바로 이름이다. ‘테러방지법을 만들자는데 반대하다니 테러를 당하자는 것인가.’
비슷한 사례를 우리 사회는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는데, 바로 국가보안법이다. 이름덕분에 마치 국가를 보안하는 법 같고, 없애면 국가 보안이 흔들릴 것 같은 인상을 준다. 하지만 겉포장이 아무리 멋져 보여도, 디테일에 독소 조항이 가득하면 그냥 독이다. 그렇기에 실제 결과는 독재 정권에 저항하는 이들을 용공분자로 처벌하여 민주주의의 근간을 화려하게 망쳐놓는 것에 주로 쓰였다. 나아가 민주화 이후에도 사문화되지 않고 온라인 풍자 농담을 날리는 이들이나 겁박하고 다니는 후진적 적폐다. 하지만 이름이 그럴듯하면 이름만 보는 이들의 맹목적 지지 정도는 얼마든지 얻어내기에, 폐기는커녕 개정조차 논하기 어렵다.
정명을 추구한다면, 아예 지금 국면 자체도 민권 대 안보라는 가치의 충돌로 묘사할 것이 아니라 그저 민권 보호 대 민권 침해의 구도로 지칭하는 것이 옳다. 안보 위협 여부에 대한 정밀한 탐구가 결여된 상태 속에서 관성적으로 재등장한 보편적 시민 감찰 시도이기 때문이다. 물론 글자 수에 민감한 언론 매체가 매번 테러방지빙자국정원권력남용법이라고 표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차선책으로 최소한 제목과 내용이 다르다는 사실만이라도 전달되도록 “소위‘테러’방지법”이라고 수식어와 따옴표라도 달아주는 성의라도 보이면 바람직할 듯하다.
미디어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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