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 것 없던 도널드 트럼프의 질주에 제동이 걸렸다. 당초 낙승이 예상됐던 5일 공화당 4개주 경선에서 의외의 선전을 펼친 테드 크루즈(텍사스) 상원의원에게 사실상의 패배를 당했기 때문이다. 15일 치러질 플로리다와 오하이오 주 경선에서 각각 마르코 루비오(플로리다) 상원의원과 존 케이식 오하이오 주지사에게 모두 패한다면 트럼프의 본선 진출 가능성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될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언론은 트럼프가 4개 주 가운데 2개 주(켄터키ㆍ 루이지애나)에서 승리를 거뒀으나, 이날 경선에서 숨겨진 약점들을 확연히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의 지난 3일 ‘트럼프 배척’ 발언이 있기 전까지는 승리가 예상됐던 캔자스ㆍ메인 주를 내준 게 공화당 주류의 ‘반(反) 트럼프 정서’가 결집되면서 약점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국 언론이 주목하는 것은 트럼프가 지난달 1일 아이오와 주 코커스 이래 공화당 지지자들에게만 투표를 허용한 지역의 경선에서 대부분 무릎을 꿇었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당원들의 공개집회 방식으로 치러진 일곱 차례 코커스에서는 네바다와 켄터키 주에서만 승리했을 뿐 아이오와, 알래스카, 미네소타, 캔자스, 메인 주에서는 모두 패배했다. 또 공화당원만 투표하는 ‘폐쇄형 프라이머리’ 방식으로 치러진 오클라호마에서도 크루즈 의원을 이기지 못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는 무당파 성향 혹은 민주당 지지자들까지 옮겨와 투표할 수 있는 ‘오픈 프라이머리’에서 유독 강세를 보였다”며 “밋 롬니 전 지사의 발언 이후 공화당 지지자들의 투표율이 크게 높아진 지역에서 패배한 것에 주목한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향후 경선에서도 코커스나 폐쇄형 프라이머리에서 트럼프 진영이 약세를 보인다면 과반수 득표가 어려울 수 있다”고 전망했다.
크루즈 의원은 주류 진영을 대표해 트럼프에 맞설 유일한 ‘대항마’라는 이미지를 얻게 됐다. 그는 이날 캔자스에서 48%의 득표율로 트럼프(23%)를 25%포인트나 앞섰고, 메인 주에서도 46%를 얻어 트럼프(33%)를 13%포인트 차이로 따돌렸다. 확보한 대의원 수도 64명으로 49명에 그친 트럼프를 압도했다.
크루즈 의원은 캔자스ㆍ메인 주 승리 직후 “반 트럼프 진영의 핵심이 누구인지 증명됐다”고 주장했다. 또 “트럼프를 저지하려면 1대1 경쟁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며 루비오 의원과 케이식 지사의 중도 사퇴를 요구했다.
반면 루비오 의원은 1일‘슈퍼 화요일’에 이어 이번에도 성적이 좋지 않아 6일 치러질 푸에르토리코 경선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동력이 급속히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대의원 확보에서도 크루즈 의원에게 크게 뒤지고 있기 때문에 15일 플로리다 경선에서 트럼프에게 1위 자리를 내준다면 도중하차 압력을 이겨내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편 상승세에 제동이 걸렸을 뿐이지, 객관적 확률로 따지면 여전히 트럼프의 본선 진출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다. 실제로 이날 밤 경선 직후 예측시장에서 거래된 트럼프와 크루즈, 루비오 의원의 몸값은 여전히 트럼프가 훨씬 비싸다.
트럼프의 최종 후보 지명 가능성은 슈퍼화요일 직후에는 80%까지 상승했으나, 5일 경선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인 뒤에는 65%까지 하락했다. 그러나 이는 크루즈(20~17%), 루비오(9%) 의원보다는 여전히 훨씬 높은 수치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