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되던 야권통합론의 불씨가 되살아났다.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가 강한 의지로 야권통합 불가를 천명한 지 하루 만인 7일, 같은 당 김한길 상임 선거대책위원장이 반대 의견을 공식화했다. 두 사람이 부딪힌 지점은 집권 여당의 개헌저지 방법론.‘현실론’에 기반한 김 위원장은 야권통합을 통해, 대의를 중시하는 ‘이상론’의 안 공동대표는 제3당의 길을 통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예견된 둘의 충돌은 당내 복잡한 세력 관계와 맞물리면서 야권을 다시 시계 제로(0)의 혼돈으로 이끌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서울 마포 당사에서 열린 선거대책위 회의에서 통합 불가론에 대해 “우리 당만 생각하는 정치”라며 “야권이 개헌 저지선 이상을 지키는 일은 나라와 국민 역사를 지키는 일”이라고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는 “집권세력의 개헌선 확보를 막기 위해서라면 우리 당은 그야말로 광야에서 모두가 죽어도 좋다”면서, 전날 안 공동대표가 통합을 거부하며 “죽더라도 광야에서 죽겠다”고 한 발언을 역으로 인용했다. 이에 같은 자리에 있던 안 공동대표는 통합론을 “익숙한 실패의 길”이라며 “새누리당에 개헌 저지선이 무너지는 결과를 국민이 주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갈등을 봉합해야 할 천정배 공동대표는 “새누리당 압승 저지를 위해 당 내부의 활발하고 질서 있는 토론이 필요하다”며 오히려 김 위원장과 같은 노선을 선택, 당내 갈등에 기름을 끼얹었다.
극단으로 치닫는 국민의당 지도부 3인의 갈등은 쉽게 풀리기 어려울 전망이다. 서로 정치적 노선을 분명히 한데다, 이번 갈등이 표면화되기 전부터 신뢰관계에 균열이 간 때문이다. 김 위원장 측은 “이날 발언은 지난 연석회의(4일)와 안 공동대표의 발표(6일)를 지켜본 뒤 최종적으로 나온 것”이라며 “철저한 현실 분석 아래 정치를 하는 김 위원장이 공개 발언을 한 것은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으로 보면 된다”고 전했다. 국민의당 인사는 “야권 통합불가에 대한 안 공동대표의 입장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당내 갈등의 장기화를 예상했다.
이와 달리, 김 위원장이 당론에 배치되는 야권통합을 다시 꺼낸 것은 더불어민주당에게 수도권 연대의 뜻을 밝힌 것이며, 안 공동대표는 기존 입장만 재확인하는 식으로 이를 묵인한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실제로 더민주와 재야세력까지 나서 야권통합을 재차 압박하면서 안 공동대표는 다시 선택의 길로 내몰리고 있다. 김종인 더민주 비상대책위 대표는 이날 “(김 위원장 발언은) 매우 반가운 소식”이라며 “우리가 (통합 논의를) 열어 놓고 있어 (국민의당 의원들의 복당은) 별 문제 없다”고 말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도 “‘새누리당 승리는 내 알 바 아니다’는 식의 무책임한 태도로는 야당으로 존립할 수 없다”고 안 공동대표를 비판했다. 한완상 전 부총리, 황석영 작가 등 재야 원로들도 나서 “오직 야권연대를 통해 후보 단일화를 이뤄내는 길만이 집권당의 의회 독점을 막아낼 수 있다”며 야권통합을 촉구했다.
정재호기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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