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재미있지 않나요? 먹고 살만해지니 그림도 변했어요.”
2014년 어느 을씨년스러운 날, 오치균은 문득 30년 전 자신이 살았던 뉴욕을 떠올렸다. 그때 그의 기억에 뉴욕의 가을은 없었다. 머릿속에서 뉴욕은 온통 지하철, 홈리스, 높은 빌딩 같은 것들로 기억될 뿐이었다. 그러나 다시 방문한 뉴욕에는 나무도 있고 단풍도 있었다. 유학 시절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오치균이 30여년 만에 발견한 밝은 뉴욕을 서울 금호미술관에서 4월 10일까지 만날 수 있다. 뉴욕이라는 도시를 통해 오치균이라는 한 개인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알 수 있는 기회다.
오치균은 “예전에 안보였던 자연이 이제야 보이기 시작했다”며 그 이유로 ‘밥’을 꼽았다. 육십에 접어 든 그는 이제 “먹고 살만”하다. 경제적 안정과 함께 온 마음의 여유는 작가 자신도 모르게 그림에 반영됐다. “역시 사람한테는 밥이 제일 중요하다”며 호탕하게 웃는 그의 모습에서 과거에 겪었던 대인 기피증이나 공황장애는 찾아볼 수 없다.
3층에 전시된 뉴욕 1기 작품과 비교하면 그의 작품세계 변화는 실로 놀랍다. 30년 전 브루클린 유학을 위해 찾은 거대 도시 뉴욕은 그의 눈에 온통 검은 빛이었다. 가난한 흑인들 동네에 터를 마련했고 영어도 잘 안됐다. 운이 좋아 학기 내내 장학금은 받았지만 생활비는 죽도록 노동해 벌어야 했다. 낯선 땅에서의 삶은 쉽지 않았다. 고통과 절망스러운 이방인의 삶은 ‘Figure’ 시리즈에 일그러진 형체로 나타나 있다. “저게 나에요”라며 “저 땐 왜 저렇게 봤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세월을 견뎌낸 나이든 작가가 아니라 순수한 아이의 모습이 비친다.
오치균은 전시에 앞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왜 나만 그림이 밝아진 걸까 방황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작가가 젊고 혈기 왕성할 때 밝고 화려한 작품을 하다가 늙고 병들며 어두운 작품을 그리는데 자신만 그 반대로 가고 있어 “이상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얼마 전 미국 미니멀리즘의 대가 프랭크 스텔라의 작품을 보고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며 이렇게 말했다.“그 사람도 초창기에는 까맣게 그리다가 지금은 입체로도 그리고 하더라고요, 나 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 하고 안심했죠.”
오치균은 그림으로 뭘 어떻게 보여주고 싶은 의도는 없다. 그에 따르면 “그림은 자동으로 나오는 것”이다. 슬프고 우울할 때는 뉴욕 1기에서 그가 자주 그렸던 홈리스, 지하철 같은 것들에 자연스레 관심이 갔고 물감도 어두운 것 위주로 손이 갔다. 귀국 후 어느 정도 돈을 번 2기 시기는 많이 밝아졌지만 여전히 어둡긴 하다. 해가 져 있거나 눈이 와 질퍽한 모습이 그렇다. 그리고 지금 3기의 그림은 생동 그 자체다. 캔버스에 손으로 아크릴 물감을 쌓아 올리는 기법은 여전하다. 그는 “아마 물감을 손으로 찍어 바르게 된 건 운명인 것 같아요”라며 웃었다.
신은별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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