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대표로 나선 세계 최정상 바둑 기사가 인간이 만든 기계와의 두뇌 싸움에서 무릎을 꿇었다. 인류사의 이정표적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이세돌 9단이 9일 구글의 바둑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에 충격패를 당했다. 이 9단은 이날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알파고와의 제1국에서 186수 만에 흑을 잡고 불계패했다.
알파고는 지난 10월 판후이 2단과 대국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향상된 실력으로 바둑 고수인 이 9단을 무너뜨렸다. 이세돌 9단이 가장 중요한 첫 번째 경기에서 패배하며 앞으로 남은 네 경기의 승리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승부는 알파고가 102수로 우변 흑집에 침투하면서 사실상 판가름 났다. 경기 초반 익숙지 않은 상대에 다소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던 이 9단은 대국이 진행될수록 제 기량을 찾은 듯 중반까지 팽팽한 승부를 이어갔다. 이후 이 9단은 좌중앙에 큰 흑집을 지어 다소나마 유리한 형세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실수를 거듭하던 알파고는 102수 만에 강력한 ‘한 방’으로 전세를 뒤집었다. 장고에도 뚜렷한 대응책을 찾지 못한 이세돌 9단은 결국 186 수만에 돌을 던지며 패배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경기 시작 약 3시간 30분 만이었다.
이날 대국장에 모인 국ㆍ내외 기자 300여 명과 참관인들은 알파고의 승리에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경기 초반 다소 소란스러웠던 대국장은 승부가 알파고 쪽으로 서서히 기울면서 찬물을 끼얹은 듯 얼어 붙었다.
대국 현장에서 공개 해설을 맡은 김성룡 9단은 알파고가 감정이 있는 인간이 아니어서 이날 경기에 이길 수 있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프로 기사는 좋은 점이 있고 나쁜 점이 있을 때 (이전에 둔 수의) 흐름을 따라서 다음 수를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며 “그러나 알파고는 경기 중간 ‘알파고가 졌다’고 누구나 생각할 정도로 크게 실수한 부분이 있었는데도 냉정함을 유지했다”고 분석했다.
첫 경기에서 패배의 쓴맛을 본 이세돌 9단은 과감히 승부하는 알파고의 성향에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대국 초반만 해도 알파고가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계속 풀어가는 능력이 놀라웠다”며 “이후 수읽기에 자신이 없다면 도무지 둘 수 없는 수가 나와 두 번째로 놀랐다”고 말했다.
전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일각에선 인간을 능가한 AI에 대한 공포감도 피력했다. 그러나 컴퓨터가 인간을 이겼다고 단언하긴 이르단 지적도 나온다. 아직 승부가 끝난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는 10일 오후 1시 두 번째 대국에 나선다. 제1국에서 충격패를 당한 이 9단이 알파고에 설욕하며 인간의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을지 눈길이 쏠린다. 이 9단은 “첫 패배가 충격적이기는 하지만 굉장히 즐거웠고 향후 대국도 기대된다”며 “포석에 실패하지 않는다면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서희기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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