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시대, 인간의 일
구본권 지음ㆍ어크로스 펴냄
344쪽ㆍ1만5,000원
충격이었다. 구글 자회사인 딥마인드의 알파고와 이세돌의 다섯 번의 대결 첫 번째, 두 번째 대국에서 이세돌이 졌다. 나는 때 마침 이 책의 서평을 쓰기 시작했던 터였지만 쓰기를 잠시 미루고 세기의 대결을 관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은…”이라는 기대 섞인 나의 희망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앞으로 몇 판이 더 남았지만 이제 인공지능이 세계 최고의 바둑 기사와 거의 대등하거나 우월한 실력이라고 하기에 충분한 한 판이었다. 이세돌의 패배에 충격을 받고 우울해야 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인간 대표의 패배에 인간으로서 공감했을까? 우리가 창조해낸 인간 지성의 집약체가 언젠가 우리를 지배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이었을까?
현직 기자이자 ‘사람과 디지털연구소’ 소장이기도 한 저자는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 곁에 아주 가까이 다가온 기술 변화와 그것의 영향을 아무런 과장 없이 가능한 객관적으로 제시한 뒤 우리가 깊이 있게 생각해야 할 거리들을 차근차근 짚어 나간다. “알고리즘의 윤리학, 언어의 문화사, 지식의 사회학, 일자리의 경제학, 여가의 인문학, 관계의 심리학, 인공지능 과학, 호기심의 인류학, 망각의 철학, 디지털 문법”으로 이름 붙은 10개의 장 제목만 보아도 인공지능을 앞세운 제2의 기계시대에 로봇화와 자동화가 제기하는 사회적 문제와 기술 철학적 문제가 무엇인지 명료해진다.
서문에서 저자는 “로봇시대에는 로봇이 대체할 수 없는 사람만의 기능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것이 직업적 생존과 의미 있는 삶을 영위하기 위한 기본 요건이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책의 핵심 내용이다. 하지만 저자의 말대로 지금을 ‘로봇 시대’라고 할 수 있을까? 조금 성급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미래학에 한 발을 들여놓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미래학은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다양한 가능성을 전망하고 그에 대한 연구와 분석으로 미래에 대비하는 학문”이며, “직업의 미래를 진단하는 일은 족집게 점장이처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직업이 놓일 틀과 방향을 파악하는” 일이다.
저자는 미래의 직업이 놓일 기본적 틀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을까? 저자는 “로봇화와 자동화 속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하리라 여겨지던 지식 기반 업무 역시 컴퓨터 알고리즘과 소프트웨어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경고한다. 나아가 “부가가치와 전문성이 높은 영역마저 기계와의 경쟁에 직면했다. 변호사, 의사, 약사, 회계사, 세무사, 교수, 기자 등의 직종마저 위험하다”고 한다.
그럼 우리는 어떤 방향을 추구해야 하는가? 당연히 기계가 갖기 힘든 고유한 능력에 집중해야 하는데 그건 바로 “창의적이고, 성찰적이며, 공감하는 사고 능력”일 수 밖에 없다. 저자는 인간의 고유한 특성으로 호기심을 특별히 강조한다. 호기심은 “사회와 개인적 삶의 질을 가르는 요인이 되고 있으며, 사회와 개인이 호기심을 육성하고 갖췄는지에 따라 격차가 확대되는 ‘호기심 디바이드’의 시대가 오고 있다”고까지 주장한다. 호기심과 문제 파악 능력보다 암기와 해답 위주로 익히는 주입식 교육 시스템이 오랫동안 지배해온 한국적 상황을 타개하고 인공지능 시대에 사람이 어떻게 사람다울 수 있을까?
저자는 미국 시인 메리 올리버의 말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이 우주에서 우리에겐 두 가지 선물이 주어진다. 사랑하는 능력과 질문하는 능력.” 불안하게 다가오는 미래에 대해 잘 이해하고 차분하게 준비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이형열 과학책 읽는 보통 사람들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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