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가 병원가면 진료카드부터 적고 체온 재고, 필요하면 피 뽑고 엑스레이도 찍잖아요. 종양 발견되면 수술도 하고, 입원해 몸 조리도 하고. 유물 복원도 마찬가지에요.”
국립문화재연구소 이규식 문화재보존과학센터장은 지난 9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문화재 복원을 두고 “아플 때 병원 가서 치료받는 것과 같다”며 “고고학 등 유서 깊은 학문에 비해 과학의 한 분야로 파생돼 역사가 짧은 보존과학은 CT, 엑스레이 기계, 내시경, 3D프린터처럼 의료, 산업분야에서 쓰는 기계를 문화재 보존연구에 맞춰 개량해 만든 기자재를 대부분 쓴다”고 말했다. 이 센터장은 “보존과학센터 건물 1층을 차로 유물 싣고 오면 바로 내려서 수장고, 연구실로 옮길 수 있게 간이 주차장처럼 만들어 대형 유리문을 달아놨다”며 “응급실을 본 따 설계한 이 시설을 외국에서 견학 온 사람들이 보고는 다들 놀란다”고 설명했다.
문화재 복원을 위한 보존처리는 “사람이 수술 받고 치료”하는 과정과 비슷하지만 유물의 재료에 따라 크게 무기물과 유기물 문화재로 처리 방식이 나뉜다.
무기질 문화재-金ㆍ鐵ㆍ石ㆍ土
돌, 흙 같은 광물에서 얻는 무기질 문화재는 다시 금속문화재, 토ㆍ자기 문화재, 석조 문화재로 나뉘어 보존처리 된다. 재료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해석 방법(문화재 개별 보존처리 방법)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 방식은 같다. ①보존처리할 문화재 특징을 기록하고(처리 전 상태조사) ②문화재에 붙은 이물질을 제거한 다음 ③더 이상의 부식을 막기 위해 탈염처리 같은 안정화 처리를 하고 ④문화재 내부의 수분을 제거한다. 이어 ⑤부식으로 약해진 재질을 강화하고 오염물과 닿지 않게 보호막도 쳐준(코팅) 뒤 ⑥부서지거나 떨어진 문화재를 붙이고(접합) ⑦결실된 부분 형태를 복원하고 표면 질감과 색감을 맞춰서(복원) ⑧전체 처리 과정과 특이사항을 상세히 기록으로 남긴다(포장 및 보관).
천주현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부 학예연구사는 “무기물 문화재 보존처리 방법과 재료는 세계 공통”이라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깨진 금, 암석을 붙일 때 쓰는 접착제를 런던대영박물관에서도 쓴다”고 말했다.
금속
금속문화재는 출토되는 과정에서 산소, 수분 등의 부식인자와 반응에 급속한 부식이 진행된다. 부식을 억제시키지 않을 경우 유물 유형을 완전히 잃을 수 있다. 보존과학 인력, 예산 한계로 출토 후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수십 년 수장고에 보관되다가 보존처리 되는 국내 실정에서는 부식 억제가 최대 관건이다. 김순관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 학예연구관은 “바닥에 묻힌 금속문화재를 발굴하면 부식이 우려돼 대부분 발굴 지역 흙을 통째로 퍼와 제거작업을 한다”며 “문화재 발굴 과정에서 보존과학 전문인력이 협업할 경우 보존율이 훨씬 올라간다”고 말했다.
석재
석조문화재는 대부분 야외에 설치하기 때문에 조금씩 풍화되다 일정시간이 지나서는 급격하게 손상돼 표면풍화, 균열, 박리, 박락 등 손상으로 나타난다. 최근에는 환경오염, 산성비 등으로 피해가 가속화되고 있다. 다른 문화재에 비해 규모가 커서 전면 해체해 보존처리할 경우 손상부가 생길 수 있다. 때문에 상태 조사 직후 균열을 임시로 메우는 등 응급 보전처리를 실시해 손상부 발생 위험을 사전에 줄인다.
토기ㆍ자기
도자기ㆍ토기ㆍ와류ㆍ유리류 공예품은 다른 문화재에 비해 잘못된 보존처리, 관리상 부주의로 인한 물리적 손상이 큰 문화재다. 석조문화재처럼 ‘전면 해체’ 단계를 거친다. 이물질을 제거하고 남아있는 조각을 퍼즐처럼 맞추는 데 짧게는 수 개월 길게는 수년이 걸린다. 본래의 형태 유지에 중점을 두고 보존처리하지만, 토기 유물은 고고학적 자료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원형과 복원된 부분을 구별될 수 있도록 처리한다.
유기질 문화재-紙ㆍ木ㆍ織物
유기문화재는 생명체로 만들어지는 종이, 직물, 나무 등을 재료로 하는 문화재로 빛의 노출 정도, 온ㆍ습도 변화, 해충 및 미생물에 의한 생물학적 피해 등이 심하다. 천주현 학예연구사는 “전통 안료나 종이, 접착제, 옷감이 나라마다 달라 유기물 보전처리 재료, 방법도 다 다르다”며 “전통방식 그대로 안료나 직물, 접착제를 재현해 사용하는 것이 정석이라 다루기 까다롭다”고 말했다. 무기물처럼 유기물 역시 재질마다 차이가 있지만, 처리 전 상태조사→보호 또는 해체→세척과 건조→복원 또는 결합→포장 및 보관 과정은 같다.
지류
지류 문화재는 주요 재질이 종이이기 때문에, 환경에 특히 민감하다. 보존처리는 해당 유물의 형태, 손상 정도, 제작 기법, 재질을 밝히는 기초조사를 바탕으로 안료 등 유물이 제작된 시기의 전통 재료를 복원, 개발하는 일도 병행해야 한다. 붓 등으로 표면을 털어내는 건식세척, 화학약품을 쓰거나 침적(물에 가라앉힘)로 이물질을 제거하는 습식세척을 실시한다. 습식세척은 글씨나 인장 여부 번짐을 테스트 한 다음 실시한다. 김사덕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 사무관은 “지금 수준보다 더 뛰어난 보존처리 기법이 나왔을 때를 대비해 현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보존처리’를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엑스레이 촬영 등으로 지워진 그림의 원래 형태를 알 수 있어도 덧대 그리지 않는 이유다.
목재
목재문화재는 목공예나 건축물의 재료로 쓰여진 건조 고목재와 습한 환경에서 출토된 수침 고목재로 구분되며 보존처리방법도 다르다. 건조목재문화재는 대부분 목공예품이나 현판류, 목판류 등으로 벌레와 미생물에 의한 생물학적 피해, 자외선 등에 의한 화학적 변화 및 인위적 손상에 따른 보존처리를 한다. 수침목재문화재로는 신안선, 안좌도선 등 해양에서 출토되는 고선박과 저습지에서 출토되는 유물들이 있다. 공기 중에 노출됨과 동시에 형태 변형 같은 급격한 손상이 발생하기 때문에 치수안정화를 위한 보존처리가 필요하다. 식염수 등에 담가 목재 속 소금기를 빼는 과정만 길게 10년이 걸린다.
직물
출토복식, 전해져 내려오는 복식, 고대 직물편 등으로 분류되는 직물문화재는 특성상 물리적, 화학적 원인에 의해 쉽게 손상될 수 있다. 현미경 등으로 섬유와 안료 찾는 성분 분석, 엑스레이와 CT 촬영 등으로 직물 조직과 유물의 구성법 및 손상 상태를 찾는 구조 조사를 병행한다. 관련 문헌, 그림 등을 참조해 원형태를 되살리고, 마모된 부분은 직물을 풀어 한 올 한 올 다시 엮기도 한다. 유실된 부위를 메우는 보강직물은 유물의 색상과 어울리도록 염색해 준비한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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