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A(33)씨는 1월 4일 중국을 출발한 화물선을 타고 인천 북항 대한통운 부두에 도착했다. 다음날 새벽 인천항에서 사라진 A씨는 두 달이 지난 이달 2일 서울 금천구 가산동에서 우연히 경찰에 붙잡혔다. 당시 경찰은 2월 26일 인천 내항 보안 울타리를 넘어 밀입국한 중국인 선원 B(32)씨를 뒤쫓던 중이었다. 경찰은 물론 항만보안당국도 A씨가 밀입국해 서울에서 직장과 집까지 구해 생활해온 사실조차 몰랐다.
인천항에서 외국인 선원 밀입국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고 우리 보안당국은 밀입국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한 데에는 선박 출항관리가 민간에 떠넘겨진 것이 주 요인으로 드러났다. 14일 인천항보안공사와 인천지방해양수산청, 선박대리점 등에 따르면 인천항에서 화물선 등이 출항할 때 외국인 선원이 모두 승선했는지 여부를 파악하는 업무가 선박대리점에 맡겨져 있다. 법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인천항보안공사와 인천항만공사는 선박대리점으로부터 통보만 받는 구조로, 승선 여부가 파악이 안 되거나 잘못 전달되더라도 마땅히 확인할 방법이 없다. 이런 이유로 법무부 인천출입국관리사무소와 인천항보안공사, 인천항만공사는 A씨가 밀입국한 사실을 전혀 몰랐다.
인천항의 한 보안관계자는 14일 “선박 출항 시 대리점 직원이 마지막으로 선원들 숫자를 파악해서 문제가 있는지 여부를 알려줘야 한다”며 “하지만 (A씨 건은) 대리점 직원이 출항 전 선장에게만 선원 숫자를 묻고 실제 확인하지는 않아 출입국사무소나 보안공사가 전혀 파악 못한 경우”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사례가 또 나오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올 들어 인천항에서 발생한 외국인 선원 밀입국 사건은 알려진 것만 4차례에 이른다. 이중 3건이 인천 북항 기업전용 민간 부두에서 일어났다. A씨 외에 1월 6일 현대제철 부두의 베트남인 선원 B(33)씨, 1월 17일 동국제강 부두 중국인 선원 C(36)씨의 밀입국 사건이다.
선박대리점은 선박 운항에 필요한 업무를 선박회사로부터 위탁 받아 처리하는 민간업체다. 인천항에 40곳이 운영 중이다. 이들 업체가 취급하는 업무는 선박 입출항 사무, 선박 수리, 급수, 줄잡이 등 30~40개에 달하며 업무마다 제각각 하청업체를 쓰고 있다. 영세한 선박대리점은 선사나 부두운영사의 ‘을’(乙)로서 이들의 요구 대로 인원파악 등 출항 업무를 떠맡아 선박 출항 관리의 일선에 있는 셈이다.
보안당국은 국제항해선박 및 항만시설의 보안에 관한 법률 등을 근거로 민간 부두의 보안 책임을 민간인 부두 운영사에 위임하고, 이는 다시 선사, 선박대리점으로 떠넘겨진다. 출입국사무소 등은 최근 법무부 블랙리스트에 올라있는 선박이 입항할 경우 2명씩 보초를 세우도록 선박대리점에 요구하고 비용은 선사에게 부담시키도록 해 대리점 등으로부터 반발을 사고 있다. 인천해양수산청 관계자는 “밀입국 사건이 발생하면 집주인에 해당하는 부두 운영사에게 우선 책임이 있다”며 “그 다음에 출입국 업무를 맡고 있는 출입국사무소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항만업계 관계자는 “인천항의 주무 감독청은 인천해양수산청이며 인천항 경비를 맡고 있는 보안공사의 모회사는 인천항만공사”라며 “두 곳이 보안사고 발생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곳으로, 부두 운영사나 선박대리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이환직기자 slamhj@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