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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북스토리] 학대 당한 개들의 마지막 기억은 사랑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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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북스토리] 학대 당한 개들의 마지막 기억은 사랑이기를

입력
2016.03.15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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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껴보았던 드라마 ‘시그널’에서 주인공 차수현은 과거에서 무전이 온다면 소중한 존재를 지켜달라고 할 거라고 했다.

나도 그렇다. 떠나가 버린, 돌이킬 수 없는 이별을 맞았던 여러 아이들을 지켜달라고. 사고로, 약물 부작용으로, 병을 알아차리지 못해 손 한 번 못쓰고 떠나버린 존재들을 지켜달라고. 반려동물, 길고양이와 인연을 맺는 것은 가슴 벅찬 일이지만 그들과의 이별은 폭우에 둑이 무너져 내리듯 감당할 수가 없으니까.

미국 뉴멕시코 주에서 ‘란초 데 치와와’라는 유기견 보호소를 운영하는 스티븐 코틀러는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개들만 구조해서 돌본다. 입양을 못 가는 개들 중에서 나이가 아주 많거나 큰 병에 걸렸거나 심한 지적 장애가 있는 개들만 전문적으로 보호한다. 보호소라기보다 호스피스 병원 같다. 도대체 그 많은 이별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나는 상상만으로도 벌써 가슴이 아려오는데.

실제로 어느 해 겨울에 7마리의 개가 노환, 간질 등으로 차례로 떠났다. 두 달 사이에 7마리와의 이별. 스티븐은 떠난 개들을 하나하나 땅에 묻고는 밤마다 아이들이 추울까 봐 걱정이 되어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그의 부인은 한 손에는 삽을, 다른 한 손에는 담요를 들고 개들의 무덤 앞에 서 있는 남편을 보게 된다. 아마도 무덤을 파서 아이들에게 담요를 둘러줄 요량이었을 것이다. 부인은 남편을 흔들며 이야기한다.

“아이들은 죽었어. 알지?”

죽음으로 인한 이별은 사람을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저널리스트이기도 한 스티븐은 유기동물 보호소가 무서웠다. 그곳에 갔다가 동물에게 감정이입이 될까봐, 헌신하게 될까봐 무서웠는데 그렇게 되어 버렸다. 그는 개를 구하기 위해서 보호소를 시작했는데 이제 누가 그를 구해줄 것인가.

이별은 누구에게나 힘들다. 스티븐은 왜 늙고 아픈 개만 구조하는 걸까. 플리커 계정 Genie Alisa
이별은 누구에게나 힘들다. 스티븐은 왜 늙고 아픈 개만 구조하는 걸까. 플리커 계정 Genie Alisa

그를 구한 것은 결국 개이다. 그는 버려진 개에게는 다시는 학대 받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주는 것이 필요하고, 신체접촉을 최대한 많이 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매일 한 마리당 20분씩 쓰다듬어 주었다. 하루 총 8시간. 쓰다듬기가 끝나면 손이 얼얼해졌다. 그러기를 1년.

번식장에서 태어나 벌겋게 드러난 속살, 사회성 결여로 인한 더러운 성격, 아무나 무는 문제행동으로 안락사 8시간 전에 구조했던 파라가 사람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번식장 불량품이라고 불렸던 문제견이 사람에게 마음을 여는 모습에 그는 구원받는다.

그것뿐인가. 사람만 보면 달아나고 이빨을 드러내던 문제견들이 마침내 “에라 모르겠다. 저 인간이 한번 쓰다듬게 해주자”라고 마음먹은 듯 다가오는 모습에 보상받는다.

누군가를 도울 때 느끼는 이런 황홀한 기분을 이타주의 심리학에서는 ‘헬퍼스하이(helper's high)’라고 한다. 죽은 듯 살던 개가 사는 것처럼 사는 모습에 이별의 아픔을 잊는다.

또한 그곳의 개들은 때로 그의 스승이 된다. 산책을 나갈 때면 늙거나 아픈 개들은 당연히 뒤처진다. 그러면 앞서가던 젊은 개들이 늙은이들이 잘 따라오나 확인하기 위해 뒤돌아보면서 속도를 맞춘다. 이타주의적 행동을 하는 것이다.

눈먼 친구 개를 보살펴주는 개. 로스패리(Rossparry.co.uk)
눈먼 친구 개를 보살펴주는 개. 로스패리(Rossparry.co.uk)

또한 불테리어 종인 오스티는 27㎏이나 덜 나가는 어린 치와와가 달려들 때면 등을 대고 누워서 한발로만 싸운다. 공정하기 위함이다. 힘이 곧 정의가 아님을 개들이 보여준다. 인간 사회에서 내쳐진 문제견, 노견, 장애견들이 만들어 가는 세상을 보면서 배우고 앞으로 나갈 힘을 얻는다. 그는 개와 그 자신을 함께 구한 것이다.

이별은 아프지만 스티븐이 늙고 아픈 개들을 구조해서 돌보는 이유는 그들의 마지막 기억이 사랑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나 또한 여러 번 겪은 이별이 아팠지만 굳이 무전의 도움을 받지 않더라도 그들이 사랑만을 간직하고 떠났음을 안다. 죽음 이전도 이후도 사랑이건만 결국 문제는 그리움인 건가.

김보경 책공장 더불어 대표

참고한 책: 치와와 오두막에서, 스티븐 코틀러, 필로소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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