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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에 갇혀버린 청춘들… 까다로운 졸업인증제

입력
2016.03.1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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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다로운 졸업인증제 탓

심사 통과 만만찮고…

인증 완화해도 학생 때 취업하려

일부러 졸업 미루고…

A와 B가 함께 무인도에 들어왔다. 무조건 3번을 쉰 다음 주사위를 굴려 더블(두 개의 숫자가 같음)이 나와야만 빠져 나갈 수 있다. 발이 묶인 처지는 같지만 속마음은 서로 다르다. 사업을 잘 꾸려 게임머니를 많이 쌓은 A는 어서 탈출해 호텔과 빌딩을 사들일 궁리를 하고, 그와 반대로 거의 빈털터리인 B는 무인도에서 되도록 오래 머무르고 싶다. 주사위를 굴릴수록 통행료로 받는 돈 보다 내는 돈이 더 많으니 차라리 몇 판 쉬는 게 낫다. 제발 더블만 나오지 말아라…

요즘 대학생들에게 졸업이란 보드게임 ‘부루마불’ 속에서 무인도를 탈출하는 것과 같다. 또한, 까다로운 졸업인증제는 무인도를 나가고 싶어하는 A에게 꼭 필요하지만 쉽게 나오지 않는 더블이다. 반면 무인도에서 버티려는 B의 처지는 졸업 자격이 되는데도 일부러 인증을 피하는 학생들의 상황과 비슷하다. 취업난 속에서 ‘졸업한 백수’보다 졸업유예를 택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우울한 졸업 시즌이 거듭될수록 졸업을 바라보는 청춘들의 생각은 엇갈린다.

#내겐 너무 까다로운 졸업인증제

“도대체 학교가 졸업을 시키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서울 C대학 수학과 4학년 이모(23ㆍ여)씨는 졸업 얘기를 꺼내자 불만부터 토해냈다. “왜 이공계 학생들까지 고전도서를 10권이나 읽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인증시험도 어렵고 대체특강은 경쟁률이 높아 수강신청 자체가 ‘하늘의 별 따기’다. 학점 관리에 취업준비도 해야 하는데 한가하게 고전특강이나 들어야 하다니….”

‘졸업인증제’ 때문이다. 이 학교에 2012년 이후 입학한 학생들은 역사와 사상, 문학, 과학 분야의 추천도서 99권 중 10권을 읽고 시험을 통과해야 졸업장을 받을 수 있다. 지난 학기까지 고전독서인증을 6권밖에 받지 못한 이씨의 경우 나머지 4권은 고전특강으로 대체하면 되지만 경쟁률이 높아 수강신청에 실패하고 말았다. 남은 기회는 여름학기와 2학기뿐, 이씨에게 수강신청 실패는 곧 졸업 실패다.

졸업인증제는 학점과 졸업논문 등 기본적인 졸업 요건 외에 추가로 인증을 받아야 졸업장을 주는 제도다. 사회와 기업에서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고 대학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대부분의 대학이 운영하고 있다. 기독교 대학의 채플을 비롯해 토익과 한자능력검정, 고전독서인증, 인턴십 의무 이수, 삼품제, 프로그래밍 과목 이수 등 대학별로 요구하는 조건은 다양하다. 그러나 졸업인증제를 진로나 적성에 관계 없이 모든 학생에게 일률적으로 적용하거나 인증요건이 까다로워 취업 준비와 학업을 병행해야 하는 학생들 사이에선 부담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다.

고전독서인증ㆍ인턴십ㆍ삼품제 등

대학별 요구하는 인증제 다양

진로ㆍ적성 상관없이 전 학생 적용

취준생들 “너무 부담된다” 불만

2013년 이후 입학생부터 인턴십 의무 이수제를 적용하고 있는 D대학 4학년 금모(23ㆍ여)씨는 “고시준비생처럼 인턴십이 필요하지 않은 학생들에겐 시간낭비일 뿐이다. 학교가 모든 학생들의 진로를 기업 입사로 한정해 놓은 것 같다. 학교 위상이나 이미지 제고를 위해 학생들에게 이것저것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 학교는 ‘졸업생들의 현장실무능력과 진로 로드맵의 완성도를 높인다’는 취지로 의대와 사범대, 간호학부를 제외한 전체 학생에게 인턴십을 이수하도록 하고 있다.

까다로운 졸업인증 기준에 비해 그 효용성을 체감하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있다. 일명 ‘삼품제’라는 인증제도를 운영하는 E대학 학생들은 사회봉사활동과 국제언어 인증, IT역량 개발 등 세가지 분야를 모두 인증받아야 졸업이 가능하다. 이중 한 가지를 충족하지 못해 졸업심사에서 탈락한 최모(24ㆍ여)씨는 “삼품제라는 게 사실 이력서 기본 스펙을 채울만한 정도일 뿐, 그 이상으로 취업이나 진로에 도움 되는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인증용 자격증 따느라 방학 때까지 시간을 쪼개야 했고 학원에 낸 수강료도 부담스러워 힘들었던 기억만 남았다”라고 말했다.

졸업 인증을 위해 비용 지출이 불가피한 경우는 또 있다. 외국어 특화 대학인 F대학의 경우 일부 학과를 제외하고는 자체 언어인증 시험에서 상당한 수준의 점수를 받아야 졸업할 수 있다. 한번에 통과하지 못한 학생들은 영역 당 3만~6만원가량의 응시료를 내고 시험을 봐야 한다. 대체특강을 들으려면 교내 교육기관에 고액의 수강료를 별도로 내야 한다. 이 밖에도 토익과 같은 영어 공인인증 시험 성적에 더해 중국어 성적까지 졸업요건에 포함시키는 학교가 늘어나는 등 대학 졸업을 향한 길목은 더욱 험난해지고 있다.

#완화된 졸업인증제, 회피하는 청춘들

까다로운 졸업인증제가 취업 스트레스로 시달리는 학생들의 발목을 잡는다는 인식 때문에 인증요건이 대폭 완화됐지만 일부러 졸업인증을 회피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토익 점수를 비롯해 여타 인증요건을 다 충족해 놓고도 결과를 제출하지 않는 식으로 졸업을 미루는 것이다. 이들이 ‘학생 백수’ ‘대학 5학년’과 같은 비아냥을 들어가며 학생도 졸업생도 아닌 애매한 신분을 자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별다른 자격증도 없이 백수가 되는 게 두렵다.” 최모(25ㆍ남)씨는 지난해 가을학기로 졸업 학점을 모두 이수했지만 토익 점수를 내지 않아 수료자 신분이다. 최씨는 “취업을 한 후 당당하게 졸업하고 싶어 졸업유예를 택했다. 대학원 진학이나 취업이 확정된 친구들 말고는 대부분이 수료만 한 상태다”라고 말했다.

G대학 4학년 최모(23ㆍ여)씨는 학점에 충실하기 위해 졸업유예를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요새 취업 하려면 학점이 중요한데 4학년 때 학과 공부와 취업 준비를 병행하다 보면 아무래도 학점에서 손해를 볼 수 있다. 마지막 학기까지 최선을 다해 학점을 딴 다음 수료 상태로 본격적인 취업 준비를 할 계획이다”라고 최씨는 말했다.

지난 2월 예정된 졸업 대신 졸업유예를 선택한 이모(25 ㆍ남)씨는 “우리 과의 경우 졸업인증 요건 중 하나인 한자능력검증을 최근 2급에서 3급으로 낮췄고 토익 기준 점수도 그리 높지 않지만 일부러 점수를 내지 않았다”면서 “하다 못해 인턴십을 지원할 때도 ‘졸업자’와 ‘졸업예정자’는 엄연히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졸업을 하고 나면 취업이 불리할 것이라는 학생들의 생각과는 다른 조사 결과가 올해 초 나오기도 했다. 한 온라인 취업포털이 기업 인사담당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졸업자를 더 선호한다’라고 답한 사람이 ‘졸업예정자를 더 선호한다’보다 3배가량이나 많았다. 그러나 가장 많은 대답은 ‘졸업자든 졸업예정자든 상관없다’로 전체의 58.6%에 달했다.

‘미취업 졸업자=백수’인식

토익 등 인증 요건 충족하고도

결과 제출하지 않고 졸업 미뤄

학점 관리 위해 유예하기도

졸업유예자가 늘어나는 현상은 대학 입장에서 반갑지 않다. 교수 1인당 학생수가 많아져 대학평가에 불리한데다 도서관 등 학교 시설이 붐비면서 재학생들의 불편과 불만이 커지기 때문이다. 일부 대학의 경우 졸업 유예를 막기 위해 유예 후에도 학기 마다 정해진 등록금을 내고 최소 학점을 이수하도록 하고 있지만 대부분 대학에서 졸업유예 신분을 유지하는 데 추가 비용은 들지 않는다. 다만 졸업자나 수료자가 도서관을 이용할 때 이용료를 내는 경우가 많은데 얼마 전 H대학이 연간 1만5,000원 하던 도서관 이용료를 10만원으로 올렸다가 재학생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학교 측은 졸업자와 수료자 때문에 재학생들이 불편해 한다는 이유를 내세웠지만 오히려 재학생들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이 학교 4학년 최모(23ㆍ여)씨는 “아직 구직 중이라 경제적으로 빈곤한 이들에게 학교가 과한 요금을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졸업자나 졸업유예자에 대한 푸대접에 재학생들이 반발한 데는 ‘나도 곧 졸업자나 졸업유예자 신분이 될 수 있다’라는 생각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6만원으로 조정되긴 했으나 기존의 도서관 이용료에 비하면 인상률은 300%에 달한다. 여러 이유로 졸업 적령기를 넘긴 청춘들의 설움이 깊어가고 있다.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류효진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신재훈 인턴기자(세종대 광전자공학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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