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고급스런 가구로 꾸며진 수녀원에 살아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그런 곳에 산다면, 가난한 사람들이 들어오기를 꺼릴 것이고, 자신들의 가난을 수치로 여길 것입니다.”
오는 9월 성인(聖人)으로 추대되는 테레사 수녀(1910~1997년)는 평생 두 벌 옷과 샌들 한 켤레만 지닌 채 빈민가를 지켰다. 검은 수녀복을 벗고, 인도 빈민들의 흰 사리를 두른 그를 많은 사람들은 빈민 구호에 투신한 봉사자로 기억한다. 하지만 교황청의 결단과 무관하게 적잖은 이들이 이미 그를 ‘마음 속에 성인’ 반열에 올린 것은 그가 가난과 신앙을 깊이 고뇌한 한 사상가이자, 이를 반영한 명문을 남긴 영성가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연필, 그것이 바로 나다. 하느님은 작은 몽당연필로 좋아하는 것을 그리신다. 우리가 아무리 불완전한 도구일지라도, 이 도구로 너무나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신다.”
테레사 수녀는 책을 내기 위해 글을 쓴 적은 없다. 하지만 자신이 세운 사랑의 선교회에서 동료 수녀들을 독려하기 위해 쓴 토막글과 기도문, 강연문, 편지 등은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았다. 영어권에서 출간된 수 권의 테레사 수녀 저서는 대부분 이들 기도문에서 건져 올린 산문을 엮은 것으로, 세계인의 가난한 영혼을 보듬었다. 국내에선 ‘가난’(오늘의 책ㆍ1997년), ‘마더 테레사의 아름다운 선물’(샘터ㆍ2003년) 등의 제목으로 번역 출간됐다.
그의 기도문이 평생을 통해 어루만진 주제는 ‘가난’이었다. 우리가 낮은 곳을 자처해야 한다고 호소하는 그의 글은 때로 ‘가난예찬론’에 가까울 정도였다. “빈자들은 대단히 사랑스러운 이들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제공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우리에게 줍니다. 우린 그들이 누군지 알아야 합니다. 알면 사랑하고 사랑하면 섬기게 됩니다.”
특히 그는 선교회가 생색을 내거나, 빈민 구호를 빌미로 모금에 급급한 단체가 되거나 하는 것을 경계했다. 동료 수녀들에게는 우리가 직접 가난을 실천하고, 이 소명에 순종하기만 하면 나머지 문제는 자연스럽게 풀릴 것이라고 격려했다. “여러분의 일이 말하게 하십시오. 신발 끈을 고쳐 매고, 가난을 어머니로 사랑하고, 단순한 가난의 길에 머무르십시오. 우린 스스로를 행운아라고 여겨야 합니다. 이 경이로운 가난을 몸소 살 기회가 열린 까닭입니다. 가난을 실천하는 조직은 존립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테레사 수녀는 늘 물질이 부족한 이들을 위해 호소했지만, 시종일관 그 기도가 영혼이 가난한 이들, 사랑이 부족한 이들의 마음을 울리길 바랐다. 45년여 빈민가에서 깨달은 진리는 ‘사랑의 부재야말로 가장 치유하기 어려운 빈곤’이었기 때문이다.
“내버리고 돌보지 않는 것이야말로 가장 끔찍한 빈곤입니다.” “가장 심각한 가난은 사랑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엄청난 사랑을 보여준답시고 엄청난 일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움직일 때마다 사랑을 기울이기만 한다면 우리 일은 아름다운 일이 됩니다.” “세상을 정복하기 위해서 폭탄이나 총을 사용하지 맙시다. 사랑과 자비심을 이용합시다. 평화는 미소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도무지 미소 짓기 힘겨운 사람에게라도 하루 다섯 번 미소 짓도록 애쓰십시오. 평화를 위해 이 일을 하십시오.”
사후 10년 뒤인 2007년에는 그의 신앙적 고뇌를 담은 편지가 ‘마더 테레사 나의 빛이 되어라’(오래된미래)라는 책으로 공개되기도 했다. 확신으로 가득해 보였던 그가 생전 가까웠던 마이클 반 데어 피트 신부에게 쓴 편지 내용으로 세계는 들썩였다. “예수님은 당신을 특별히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저에겐 침묵, 공허가 너무 커 보려 해도 보이지 않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습니다. 혀를 움직이려고 해도 말할 수 없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언론은 “테레사 수녀가 신의 부재를 고민한 증거”라고 흥분했지만 정작 가톨릭계는 무덤덤했다. 더구나 테레사 수녀가 빈곤 문제를 고뇌하며 겪은 신앙적 갈등을 세상에 알린 이는 그를 성인으로 추대하기 위해 애써 온 사랑의 선교회 브라이언 콜로디에추크 신부였다. 오히려 사제들은 이런 고뇌를 “대단한 업적을 이끈 성스러운 선물”로 여겼다. 성인 추대를 승인한 이번 교황청 결정 역시 이런 가톨릭계의 정서를 반영한다.
빈자, 약자에 대한 관심을 촉구한 테레사 수녀의 고뇌들은 신분차별이 만연한 인도 빈민가가 아닌 21세기 한국 사회에도 유효하다. 번번이 무고한 아이들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우리가 다름 아닌 빈곤국으로 곤두박질 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여실히 일깨운다.
“아이의 생명을 해치는 나라는 지독히도 가난한 나라입니다. 아이의 생명이 파괴되는 것은 어른들의 이기심 때문입니다. 그들은 아이를 제대로 먹여 살리지 못하면 어쩌나, 아이를 제대로 교육하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하다가, 아이를 죽이기로 마음먹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빈곤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가난’)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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