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에 게을렀던 게 오히려 다행이네요.”
최근 만난 한 수입차 업체 관계자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이 업체는 개별소비세 인하가 종료된 올해 1월 별다른 프로모션을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올 6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개소세 인하가 연장되고 난 뒤에는 1월에 판 차에 대해 개소세 인하분(1.5%)을 돌려줬고요. 결과적으로 수입차 개소세 환급 논란에서 한 발 비켜서게 됐습니다.
수입차 톱3 왜 코너에 몰렸나
반면 개소세 인하분 환급 불가(업체들은 “환급 대상이 아니다”고 주장)를 고수해 여론의 질타를 받은 BMW, 메르세데스-벤츠, 폭스바겐은 모두 1월에 경쟁적으로 프로모션을 진행했습니다. 판매량으로 수입차 시장 최상위권이라는 게 이 업체들의 공통점입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가 집계한 지난해 연간 수입차 판매량은 BMW가 4만7,877대로 1위, 벤츠(4만6,994대)가 근소한 차이로 2위입니다. 작년 9월 터진 디젤차 배출가스 임의조작 사태에도 불구하고 폭스바겐(3만5,778대)이 3위를 했죠.
모든 분야가 그렇듯 실적을 끌어 올리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유지하는 겁니다. 게다가 연식 변경을 앞둔 연말 재고 물량 밀어내기로 1월은 연중 판매량이 가장 적은 달입니다. 이런 1월에 이 업체들은 ‘고객에게 계속 혜택을 제공하기 위해’ 개소세 인하분을 반영한 할인 가격으로 팔았다고 했는데, 과연 그게 고객만을 위한 할인이었을까요? 소비자는 업체들이 과연 개소세 인하분만큼 정확히 깎아줬는지 당최 알 수 없다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에 나선다고 했고, 소비자단체가 고발을 했으니 이제 누구 말이 맞는지 차차 밝혀지겠죠.
진정 소비자를 위해서였나
지난 4일 메르세데스-벤츠는 1월에 이미 할인해 팔았다는 차에 대해서도 개소세 추가 환급을 하기로 했습니다. 개소세 인하 연장이 발표되고 한 달을 버티다 뒤늦게 나온 결정입니다. 벤츠는 1월에 4,298대를 팔아 월 판매 1위를 차지했습니다. 차 한대 당 개소세 인하분 환급액은 70만~400만원입니다. 총액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30억원 이상입니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는 “고객 만족 극대화를 위해서”라고 밝혔지만 시장에서는 악화한 여론에 밀려 마지못해 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승승장구를 거듭한 수입차들은 지난해 하반기 디젤차 배출가스 조작 사태와 주행 중 시동 꺼짐 등 잇단 악재와 직면했습니다. 벤츠의 경우 잦은 시동 꺼짐에 화가 난 고객이 골프채로 차를 박살낸 일명 ‘골프채 사건’에, 결국 그 사건을 촉발한 ‘S63 AMG 4매틱’을 지난해 12월 엔진 전자제어시스템(ECU) 오류로 리콜하는 민망할 일도 있었죠. 여기에 지난달 말에는 9단 자동변속기가 장착된 S350을 신고 없이 판매했다 과징금을 맞는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개소세 환급을 거부한다”는 비난까지 짊어지고 가기는 많이 부담스러웠을 겁니다.
만인에게 정보는 공평했나
개소세 환급 논란이 커지자 인하분을 시원하게 돌려준 국산차들은 상대적으로 으쓱해졌습니다. 특히 현대ㆍ기아자동차는 재빨리 200억원을 환급하며 통 큰 면모를 과시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지난달 3일 오전 10시 개소세 인하 연장 발표가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현대ㆍ기아차는 차종별 세부 할인 내역까지 표로 잘 정리해 ‘내수 소비 활성화를 위한 고객 지원 특별 프로그램’이란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정부 정책에 발맞춰 추가로 최대 60만원까지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는 내용이었죠. 이와 달리 다른 업체들은 그날 오후 늦게, 혹은 다음날인 4일에서야 개소세 인하 반영 가격을 발표했습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매월 1일이나 2일에 그 달 판매조건을 공지하는데, 그걸 하루 이틀 만에 뒤집어야 했으니 내부적으로 북새통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시점에 다른 업체들보다 현대차의 대응이 빠른 건 당연했습니다.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요.
개소세 인하 연장 발표 하루 전인 지난달 2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는 언론 대상 사전 브리핑이 열렸습니다. 이때 “업체들과 협의가 된 건가?”란 질문에 대한 답은 이랬습니다. “얘기했더니 현대ㆍ기아는 그렇게 한다고 했다.”
현대ㆍ기아차의 내수 점유율은 70%에 육박합니다.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책 시행 전 밀접하게 연관된 현장 목소리를 수렴하는 건 바람직하지만 다른 업체들과도 사전에 논의가 있었는지는 의문입니다. 한 국내 업체 관계자는 “전날 사전 브리핑을 한다는 말을 전해 듣고 개소세 인하가 연장되는 걸 알았다”고 했으니까요.
당초 지난해 말로 끝내기로 한 개소세 한시적 인하는 불과 한 달하고 3일만에 뒤집어 졌습니다. 아마도 ‘소비절벽’이 1월 경제지표로 입증된 2월 1일쯤 결정됐을 겁니다. 현대ㆍ기아차가 먼저 알았다고 해도 끽해야 1, 2일 차이겠지만 같은 시장에서 경쟁하는 다른 업체들에게는 불공평한 게 아닐까요. 이래저래 씁쓸한 개소세 인하입니다.
김창훈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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