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 일제 강점기부터 현재까지 약 100년 간 모든 건축물이 크고 작은 양식의 변화를 겪는 동안 오직 한 곳, 학교만이 놀라울 정도로 동일한 건축 디자인을 유지하고 있다. “19세기 교실에서 20세기 교사가 21세기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말이 나오기까지 건축은 오래 침묵했다. 경기도 남양주시 도농동에 위치한 동화중고등학교는 학교가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건축가의 답변이다.
1950년에 개교한 동화중ㆍ고등학교에는 지역의 반세기 역사가 묻어 있다. 마스터 플랜 없이 자연 발생한 골목과 집들처럼 학교도 10~20년의 시차를 두고 하나하나 건물을 지어 올리며 현재에 이르렀다. 물론 직사각형의 운동장을 둘러싼 네모진 건물, 일자형 복도를 따라 일렬로 배치된 교실은 틀에 박은 듯이 똑같아 시차를 무색케 한다.
이중 고3학생들의 학습동 하나가 노후화로 철거하게 되면서 새 건물이 필요해졌다. 설계를 맡은 나은중, 유소래는 2010년 뉴욕에서 네임리스 건축을 개소한 뒤 미국건축연맹 젊은건축가상, 보스턴건축가협회상 등을 수상하고 미국 건축지 ‘Architectural Record’로부터 세계 건축을 선도할 10대 건축가(Design Vanguard)로 선정된 촉망 받는 건축 듀오다.
“학교 건축은 처음이었어요. 저희도 한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왔지만 조사 과정에서 일제 시대 학교 설계가 지금까지 별 변화 없이 이어진 것을 보고 새삼 놀랐습니다.”
건물이 들어설 땅은 앞으로 운동장, 뒤로는 작은 산과 중학교 건물을 면한 공터였다. 일자형 건물을 세울 경우 중학교와 운동장 사이를 가로막게 되는 문제 때문에 고민하던 건축가들은 삼각형의 건물을 고안해냈다.
“부지 때문에 삼각형을 택한 것도 있지만, 일자복도와 일렬로 늘어선 교실을 어떻게든 바꿔보고 싶었어요. 이것만 바뀌어도 전혀 다른 건축적 효과가 나올 것 같았거든요.”
뒤편의 중학교 건물에 방해되지 않게 해달라는 학교 측 요청에 따라, 중학교와 면한 변은 창문 하나만 내고 콘크리트로 막은 뒤 다른 두 변에 교실들을 배치했다. 건물을 처음 볼 때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운동장과 면한 정면이다. 전면을 유리로 만들어 공부하는 학생들의 머리뿐 아니라 다리까지 다 보이는 구조로, 야간자율학습 때 교실에 형광등을 켜면 운동장으로 빛이 쏟아져 내리는 희귀한 광경이 연출된다. 당연히 교사들의 우려가 컸다.
“그렇잖아도 주의가 산만한 학생들인데 그렇게 뻥뻥 뚫어놔서 공부가 되겠냐는 거예요. 그래서 처음엔 전 교실이 블라인드를 치고 수업을 했다고 해요. 그런데 인간의 공간 적응력이 생각보다 뛰어나거든요. 그 개방성에 익숙해지면 오히려 닫힌 게 답답하게 느껴져요. 한 달도 안돼 가보니 전부 블라인드를 걷었더라고요.”
파격적인 전면 디자인이 말해주듯 삼각학교의 주요한 특징은 ‘투명성’이다. 교무실이 있는 1층을 지나 교실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가면 유리로 감싼 삼각형의 중정이 시선을 사로 잡는다. 마침 쉬는 시간, 교실에서 쏟아져 나온 아이들이 중정으로 나가 짝을 이뤄 배드민턴을 치고 있었다.
“삼각변을 따라 교실을 배치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가운데 삼각형 공간이 남아요. 여길 천장을 뚫어서 야외 중정으로 만들었어요. 보통 건물 안에는 아이들이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이 없잖아요. 교실 뒤나 복도는 좁으니 운동장으로 나가야 하는데, 여기서 마음껏 어울려 놀 수 있었으면 했어요.”
한가운데 투명한 탑처럼 자리한 중정은 건물을 사방팔방으로 연결한다. 한쪽 복도에서 반대쪽 복도가 훤히 보이고, 3층 복도에서 2층 복도가 내다 보이기도 한다. 건축가는 건물의 삼각형과 중정의 삼각형을 살짝 틀어 3층과 2층 사이에 작은 틈을 만들었다. 이곳을 통해 시선과 소리가 수직으로도 교차한다.
사통팔달의 구조엔 학교가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건축가들의 답변이 들어있다. 이들은 “시장 바닥 같은 학교”를 얘기했다. “학교는 사회적 공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야간자율학습까지 포함하면 학교는 학생들이 경험하는 세상의 거의 전부예요. 지식을 습득하는 게 전부여선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같은 반 안에서의 교류뿐 아니라 학년 전체가 교류하는 공간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나은중)
“설계하는 과정에서 ‘쉬는 시간에 시장바닥 같았으면 좋겠다’는 얘기가 나왔어요. 교실 안에서만이 아니라 바깥에서의 배움도 클 거라 생각해요. 건물이 완공되고 처음 학교를 방문했을 때 학생들의 우렁찬 목소리가 건물 전체에 울리는 걸 듣고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어요.”(유소래)
건축 과정은 평탄하지 않았다. 삼각형 건물은 듣도 보도 못했다는 이유로 교육청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고, 허가가 떨어지는 데 3년이나 걸렸다. 그러나 완공 되기도 전에 계획안만으로 미국건축가협회(AIA)의 뉴욕건축가협회상 대상과 김수근건축상 프리뷰상을 받았다.
“삼각형이나 투명한 유리가 학교 건축의 해답은 아니에요. 기존 학교의 폐쇄적인 구조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획일성입니다. 지역성도 전무하죠. 다양한 공간에서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어요. 학교 건물에 정답이 있다는 믿음에서부터 고민이 시작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
지난해 여름 한 선생님으로부터 영상이 도착했다. 스승의 날 학년 전체가 중정에 모여 선생님들과 함께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영상이었다. 건축가들이 기대한 것보다 더 다채로운 이야기가 지금 만들어지는 중이다.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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