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이영훈 국립경주박물관장이 새로 국립중앙박물관장에 급작스럽게 임명된 뒤 그 배경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차관급 정무직인 중앙박물관장은 정해진 임기가 없기 때문에 언제라도 바뀔 수 있지만, 바로 그 때문에 여유를 두고 후보자를 찾고 내정자를 정해 사전 예고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이번 박물관장 교체는 그렇지 못했다.
게다가 이명박정부 시절인 2011년 부임해 햇수로 6년을 근무한 김영나 전 관장은 정들었던 박물관을 이임식조차 하지 않고 떠났다. 당일 오후 직원들과 사진 한 장 찍은 게 전부였다. 인상으로만 말하자면 쫓기듯 나갔거나 반대로 털어내듯 떠난 느낌마저 든다.
나라를 대표하는 박물관 수장의 교체가 이렇게 불편한 모양새로 진행된 이유는 도대체 뭘까. 박물관 안팎에서는 한불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5월 개최하려다 무산된 프랑스 장식미술전 때문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박물관 관계자에 따르면 이 전시회에는 프랑스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의 제품이 함께 전시될 예정이었다. 루이비통은 제품 전시와 연계한 판매를 제안했다고 한다. 평소 박물관 상업화에 부정적이었던 김 전 관장은 이 전시를 강하게 반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달 김 전 관장은 올해 박물관 사업계획을 소개하는 언론 간담회를 앞두고 이 전시에 대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언론에 알리는 것은 보류하자”는 지시도 했다고도 한다. 한불 수교 13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주한 프랑스대사관과 논의하던 이 전시는 결국 무산됐다.
루이비통 전시의 상업화 논란이 문제가 된 건 이번 국내 사례뿐만이 아니다. 중국국가박물관도 2011년에 루이비통의 중국 진출 20주년을 기념해 전시회를 개최했다가 적잖은 진통을 겪었다. 당시 전시회장에는 유명 인사가 사용했던 루이비통 제품을 비롯해 설계도, 문헌 등이 전시됐다. 중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눈이 즐거웠다”는 긍정적 의견도 있었으나 소비를 조장한다거나 박물관의 위신이 추락했다는 비판 여론이 우세했다.
루이비통 제품의 국립중앙박물관 전시를 두고 국내 반응은 엇갈린다. 중앙박물관 국내 전시를 총괄하는 이양수 학예연구관은 “브랜드 전시라고 해서 무조건 배제할 필요는 없다”며 “전시가 어떤 컨셉트, 스토리를 가지느냐에 따라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중앙박물관이 시설이나 규모에 비해 관람객이 적다는 점을 지적하며 “박물관 대중성 확보를 위해 새 방향(브랜드 제품 전시)을 모색해야 할 때”라는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인 만큼 이런 상업성 있는 전시는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박물관 내부 사정에 밝은 전문가는 “박물관은 전시뿐만 아니라 연구를 담당하는 기관”이라며 “특정 브랜드 홍보로 전락할 위험이 있는 사업은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물관에서 장사하는 것으로 여기고 전시에 갸우뚱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8년 전 프랑스 명품 브랜드 까르띠에와 공동으로 ‘까르띠에 소장품전’을 열어 270여 점의 컬렉션을 전시한 적이 있다. 서울디자인재단이 운영하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는 국내서 보기 어려웠던 샤넬의 패션쇼와 크리스챤 디올의 역사를 조명하는 전시 등 상업성 짙은 행사를 연이어 개최했다. 상업화된 전시가 반드시 대중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중의 이목을 끌기 쉬운 전시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새 국립중앙박물관장은 ‘격조’와 ‘대중성’ 사이에서 어떤 판단을 할지 궁금하다.
신은별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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