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 새로운 걸음 되기를 기대”
대구 ‘당선 보증’ 1번 떼고 사실상 朴대통령과의 선거
유승민 의원이 23일 “정의를 위해 출마하겠다”며 새누리당을 탈당, 무소속 출마를 결행했다. 4ㆍ13 총선 후보 등록 마감 전날까지 당이 공천 여부를 결정하지 않은 결과로, 그에겐 강요된 선택이었다. 새누리당은 의도적인 부작위로 그를 사실상 낙천한 셈이다. 유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안방’인 대구에서 자신의 미래를 건 생애 가장 힘든 선거를 치르게 됐다.
유 의원이 탈당 기자회견에서 내세운 가치는 헌법과 정의, 그리고 민주주의였다. 사실상 자신과 측근 의원들을 낙천으로 내몬 ‘현재권력’ 박 대통령에 대한 날 선 비판으로 해석된다. 유 의원은 “지금 이순간까지 당이 보여준 모습은 정의도, 민주주의도, 상식과 원칙도 아닌 부끄럽고 시대착오적인 정치보복”이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정의로운 심판을 호소했다. “권력이 저를 버려도 저는 국민만 보고 나아가겠다”며 “제가 두려운 건 오로지 국민뿐이고 제가 믿는 것은 국민의 정의로운 마음뿐”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배신의 정치 심판론’으로 자신을 찍어낸 박 대통령과 이후 친박계가 보인 ‘보복공천’을 이젠 정의로운 국민이 심판해달라는 의미다.
유 의원은 ‘3ㆍ15 공천학살’로 자신과 가까운 의원들이 대거 컷오프(공천배제)된 이후 두문불출하며 생각을 정리해왔다. 측근들의 말을 들어보면, 지난해 11월 박 대통령이 ‘진실한 사람 선택론’까지 꺼내 들자, 최악의 경우 공천을 받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마음의 준비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표적 컷오프’로 여겨질 정도로 공관위가 자신을 도왔던 의원들부터 대거 낙천하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유 의원이 측근에게 했다는 “내(나) 하나 죽이겠다고 이렇게까지 해도 되느냐”는 말에서는 자괴감과 허탈, 분노, 미안함이 느껴진다. 그래도 유 의원은 마지막까지도 스스로 탈당하는 사태만은 막으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한구 공관위’는 이날 밤까지 공천 여부를 끝내 결정하지 않아 유 의원 스스로 당을 나가도록 상황을 몰아갔다.
탈당한 유 의원은 대구ㆍ경북에선 ‘당선 보증수표’나 다름없는 ‘기호 1번’ 간판을 떼고 싸워야 한다. 김무성 대표가 공관위를 향해 밝힌 “오늘까지도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면 대구 동을은 무공천하는 게 맞다”는 뜻을 관철시킬 경우엔, 텃밭 지역구에 당 소속 후보가 없는 초유의 사태도 예상된다. 이럴 경우 ‘진박’을 자처하며 유 의원에게 도전장을 낸 이재만 전 동구청장도 탈당을 해야 무소속 출마가 가능하지만 이 전 청장은 이날 탈당계를 내지 않았다. “무공천은 안 된다”며 이 전 구청장의 단수추천을 밀어붙이려는 이 위원장과 김 대표 간의 일전이 예고되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예상대로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싸움’ 구도가 형성됐다고 말한다. ‘박근혜 대 유승민의 선거’라는 얘기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TK는 이미 대통령을 배출해 현재권력에 부채의식이 없는 데다 새로운 대한민국이라는 미래의 가치를 강조한다면 유 의원에게 승산이 있다”고 전망했다.
나아가 이번 총선은 그에게 단순히 4선 고지에 오르느냐 여부가 아닌 정치적 미래가 걸린 승부가 됐다. 그는 이날 탈당 기자회견에서 “오늘 저의 시작이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로 나아가는 새로운 걸음이 되기를 기대한다”며 “제가 동지들과 함께 당으로 돌아와서 보수개혁의 꿈을 꼭 이룰 수 있도록 뜨거운 지지를 부탁한다”고 밝혔다. 자신이 추구하는 보수의 가치를 국민이 직접 표로 판단해달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유 의원은 지난해 4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도 “가진 자, 기득권 세력, 재벌 대기업의 편이 아닌 고통 받는 서민과 중산층의 편에 서겠다. 성장과 복지가 함께 가는, 나누면서 커가는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정당이 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유 의원이 생환한다면 그를 중심으로 중도개혁 노선을 지향하는 정치인들이 모여 새로운 정치세력을 형성할 여지도 있다. 이런 점에서 이번 선거는 ‘유승민의 선거’이기도 하다.
김지은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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