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 ‘朴心’ 업고 힘으로 몰아붙여, 18ㆍ19대 공천학살 그대로 재연
무기력 대응하던 김무성은 뒷북
더민주 비례대표 밀실심사 의혹에 현역 배제 ‘보이지 않는 손’ 개입설
문재인의 고언 혁신안도 무용지물
여야가 한 목소리로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주겠다’며 공천 개혁을 약속했지만, 20대 총선 공천 결과는 ‘역대 최악의 실패한 공천’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차기 대선을 준비하는 핵심 정치세력 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세력 공천’을 했기 때문”(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이다. 이 과정에서 공천의 원칙과 절차는 철저히 무시됐다.
새누리, 2년 전 상향식 공천 당론 정하고도 제도 개선은 손 놔
새누리당은 김무성 대표가 지난 2014년 7월 치러진 당 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때부터 정치개혁을 명분으로 ‘상향식 공천’ 도입을 공언해왔다. 하지만 실제 공천 결과는 친박계가 주도한 비박계 공천학살이었고, 그 과정에서 계파 갈등의 민낯만 여실히 드러났다. 친이계가 친박계를 학살한 18대 공천, 반대로 친박계가 친이계를 학살한 19대 공천 양상과 별반 다르지 않지만, 질적으로는 더 후퇴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번 공천 과정에서 ‘박심(朴心)’을 등에 업은 친박계는 힘으로 밀어붙였다. 하지만 “정치생명을 걸겠다”던 김 대표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무기력한 모습이었다. 오히려 비박계 공천학살 바람에도 김 대표 측근들이 100% 가까이 공천장을 따내면서 김무성계와 친박계 간 ‘거래설’이 나올 정도였다. 김 대표가 지난 17일 ‘이한구 공천안’ 의결을 보류하며 버티기에 나섰지만, 친유승민계와 친이계를 겨냥한 ‘3ㆍ15 공천학살’이 일어난 뒤였다.
비례대표 후보 중에는 감동을 이끌어낼 만한 인물이 전무했고, 비례대표 심사도 후보등록을 이틀 앞두고 졸속으로 이뤄져 국민공천배심원단이 추인을 거부하는 등 총체적 부실을 드러냈다. 지역구 후보자 중 여성 비율은 6.4%에 그쳐 ‘여성을 30%로 한다’는 당헌을 어겼다.
김 대표 측은 이한구 공관위원장이 당헌ㆍ당규를 어기고 전횡한 탓이라고 강변하지만 당내 반응은 싸늘하다. 당 대표의 권한으로 이 위원장의 독선에 제동을 걸 수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현역 의원의 기득권을 깨겠다며 도입키로 한 선거 6개월 전 당협위원장 사퇴 조항은 대표부터 지키지 않았다”며 “당 대표로 2년 가까이 있는 동안 약속한 제도개혁은 나 몰라라 하고 이제 와서 남 탓을 하는 건 소나기를 피해보자는 것밖에 안 된다”고 비판했다. 김 대표는 24일 유승민 의원 지역구 등 보복ㆍ부당 공천 논란이 거센 5곳을 무공천 하는 초강수를 둬 그간 훼손된 이미지를 복구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대응이 너무 늦었다는 지적이 많다.
막판에 꼬인 더민주 공천작업… 비례대표가 걸림돌
‘시스템 공천’ 도입으로 순항하는 듯 보였던 더불어민주당의 공천 역시 막판에 급제동이 걸렸다. 암초는 ‘비례대표’였다. 먼저 청년 비례대표 제도가 밀실심사 의혹에 이어 후보자들의 자질 논란이 제기돼 폐지 위기에까지 몰렸다. 청년들의 정치참여를 위해 도입된 제도가 애초 취지와는 달리 구태정치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으며 무용론까지 등장했다. 또 비례대표 후보 명단을 의결하기 위해 20일 중앙위원회에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전략공천 권한 남용 문제와, 당선가능성을 기준으로 후보들을 AㆍBㆍC 그룹으로 나눈 것에 대해 당규 위반이란 비판이 제기돼 회의가 연기 됐다. 이 와중에 김 대표의 ‘셀프 공천’이 비판의 타깃이 되며 김 대표의 대표직 사퇴설까지 불거지는 등 막판까지 진통을 겪었다. 결국 비대위원들이 공천을 둘러싼 혼란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의를 표명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문재인 전 대표 시절 당 혁신위원회가 만들어 놓은 공천혁신안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평이다. 당시 혁신위원회는 10회에 걸쳐 ▦평가결과 하위 20% 공천배제 ▦전략공천 비율 20% 이하로 하향조정 ▦여성공천 30% 의무화 ▦청년공천 10~30% 의무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하는 혁신안을 내놨다. 그러나 현재 더민주의 여성공천 비율은 12%로 당초 방침이었던 ‘여성공천 30% 의무화’에 못 미친다. 공천자 10명 중 최소 1명을 45세 이하로 하는 청년공천도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또 이해찬 정청래 더민주 의원을 비롯한 일부 현역 의원의 공천 배제를 두고 ‘보이지 않는 손’의 개입설이 나오면서 소수인사들이 공천을 좌지우지 하지 못하도록 도입한 시스템공천이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동현기자 nani@hankookilbo.com
전혼잎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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