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나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이달 초 자신이 전격 경질된 이유가 청와대의 압력 때문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가보고 싶다”며 관심을 나타낸 전시회의 개최를 반대했다가 미움을 받았기 때문이라는데, 사실이라면 문화창달 시대에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난 셈이다.
보도에 따르면 김 전 관장은 한국과 프랑스의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5~8월 프랑스장식미술전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하는 문제를 청와대와 논의하면서 이 전시가 공공 박물관의 상업화를 부추길 수 있다며 반대했다고 한다. 김 전 관장은 카르티에, 루이비통, 에르메스 등 프랑스 명품 브랜드의 고가 제품을 함께 전시하는 데 대해 난색을 표했다. 평소 공공 문화 시설의 상업화에 부정적인 자세를 가졌던 그로서는 충분히 그럴 만했다. 문제는 청와대가 박 대통령의 관심을 들어 김 전 관장에게 반드시 전시회를 열라고 압력을 넣었을 가능성이다.
사실 박물관에서 어떤 전시회를 할지 여부를 놓고 의견이 갈리면 토론으로 방향을 잡으면 된다. 대중적 관심이 큰 브랜드 제품을 전시하자거나, 반대로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 기관인 만큼 상업화는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 모두 일리가 있다. 전문가 사이에는 상업화를 피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지만 그렇다고 다른 생각을 봉쇄할 이유도 없다. 게다가 중국국가박물관도 2011년 루이비통 전시회를 개최했다가 진통을 겪은 적이 있다.
문화재와 미술사 전문가인 김 전 관장은 이런 사정을 두루 알고 있었을 것이어서 의견이 엇갈릴 때는 일단 그의 생각이 중요하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앞뒤를 재지 않고 무조건 전시회를 열라고 억지로 몰아붙였다고 한다. 보도된 대로 김 관장이 끝내 청와대의 강요에 저항하자, ‘항명’을 이유로 국내 대표 박물관의 수장을 쫓아낸 것이라면 과도한 권력개입의 전형적 사례라고 아니 할 수 없다.
김상률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은 “중앙박물관장 교체는 장식미술전의 개최와 관계가 없으며 대통령께서 관심을 표시한 때는 이미 전시회가 무산된 이후”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박물관 안팎에서 김 전 관장의 돌연한 경질을 둘러싼 흉흉한 소문이 일찌감치 나돌았다. 또 햇수로 6년이나 중앙박물관에서 일한 김 전 관장이 이임식도 치르지 못한 채 황급히 물러났다는 점에서 현재 문화계에 일고 있는 의혹과 추측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안 그래도 부산시가 부산국제영화제에 강하게 개입, 정치권력에 의한 문화 자율성 침해 우려가 커진 마당이다. 그 와중에 청와대와의 이견을 이유로 박물관장을 교체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만큼 청와대와 정부는 관련 사실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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