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결혼한 후 처음 요리를 하게 된 조모(30)씨는 자연주의 ‘건강 밥상’을 꿈꿨다.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된장찌개를 합성조미료 없이 옛날식 된장에 유기농 야채로 끓여냈다. 하지만 남편은 “쓰고 떫은 맛이 난다”며 잘 먹지 않았다. 친정 엄마는 속상해하는 딸이 안쓰러워 “TV에서 보니 설탕을 넣으면 맛이 난다더라”며 본인도 평생 넣은 적 없는 설탕을 권했다. 지난해부터 돌풍을 일으킨 외식사업가 백종원(50)씨의 레시피였다. 반신반의하며 전날 먹다 남은 된장찌개에 설탕 한 스푼을 넣었더니 감칠맛이 살아났다. “식당에서 먹던 맛”이었다. 물론 남편도 좋아했다. 맞벌이 부부인 조씨는 이후 주말마다 백씨의 레시피대로 설탕을 듬뿍 넣은 순대볶음, 김치찌개, 닭갈비를 만들었고, 모두 맛있었다. 조씨는 “맛있게 만들어 기분 좋게 먹기로 했다”고 말했다.
결혼 6년 차 워킹맘인 함모(37)씨는 보다 적극적인 ‘백종원 레시피’ 애용자다. 떡볶이 콩나물불고기 두부조림 등을 따라해 봤더니, 단 음식을 좋아하는 함씨 입맛에 딱 맞았다. 함씨도 된장찌개에 설탕을 넣었다. 함씨는 “인터넷에서 백씨 레시피대로 요리한 사진과 정말 맛있다는 댓글을 보며 ‘남들도 다 이렇게 설탕을 넣고 먹는구나, 이 정도는 먹어도 되겠다’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백씨가 쿡방을 점령한 이후 요리 레시피는 2종류로 나뉜다. ‘OOO 맛있게 만드는 법’으로 대표되는 일반 레시피와 ‘백종원 OOO’이다. 그는 무국 된장찌개 등 상상도 못한 요리에 설탕을 넣고, “설탕 안 넣어서 맛 없는 것보다 많이 넣어서 맛있는 게 낫다”며 사람 좋게 웃었다. 무첨가 자연주의 유기농 등으로 거침 없이 진화해온 건강식 바람에 피로감을 느꼈던 대중은 아낌없이 설탕을 쏟아 붓는 백씨의 모습에 쾌감을 얻었고, 설탕에 대한 경계심도 허물어져갔다. 단맛에 대한 욕망을 솔직히 인정해버린 고해성사 끝에 설탕은 면죄부를 받았다.
우리 국민들의 당 섭취는 빠르게 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2013년 기준 국민 1인당 1일 평균 총 당류 섭취량은 72.1g으로 8년 전(59.6g)보다 12.5g이나 늘었다. 당 섭취량 급증의 주범은 설탕 등 첨가당이다. 총 당류는 설탕 등 가공식품으로 먹는 첨가당과 과일 우유 등에 원래 존재하는 천연당을 합한 것인데, 천연당 섭취량은 8년간 25~27g을 유지한 반면 첨가당은 11.6g이나 늘었다. 특히 아동 청소년의 당 섭취량은 섭취기준(총 에너지섭취량의 10~20%) 경계선까지 와 있다.
하지만 설탕에 대한 무장해제는 위험하다. 당은 우리 몸에 반드시 필요한 영양소이지만, 과잉 섭취할 경우 충치 비만 당뇨 심장질환 뇌졸중 발생 위험을 높인다. 가장 흔한 만성 질환의 주범인 것이다. 국민건강보험에 따르면 비만에 따른 의료비, 조기사망으로 인한 손실액 등을 모두 합한 사회경제적 비용은 6조7,700억원(2013년 기준)에 달한다.
세계적 흐름은 이와 반대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02년부터 1일 첨가당 섭취량을 총 에너지섭취량의 10% 미만(성인 기준 50g)으로 권고해오다 지난해 이를 5%(25g) 미만으로 낮추자는 추가 권고를 내놨다. 프랑스 멕시코 헝가리 등은 설탕이 많이 든 음료에 설탕세를 부과하고 있고, 영국도 2년 내 도입할 계획이라고 최근 발표했다.
우리 정부도 올해부터 본격적인 움직임에 나선다. 식약처는 다음주 ‘제1차 당류 저감 종합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정부가 당 섭취에 대한 중장기 대책을 내놓는 것은 처음으로, 당류 저감 목표 및 대상 식품 등을 선정할 예정이다.
김지명 신한대 식품조리과학부 교수는 “백종원씨 열풍으로 ‘맛있게 먹으려면 설탕을 넣어야 한다’는 인식이 퍼지며 설탕에 관대해지는 분위기가 만들어져 매우 우려스럽다”며 “지금 우리나라는 당 섭취를 경계하며 관리해야 하는 시기”라고 강조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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