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금융상품 추천 ‘핀다’ 못 피고... 영업 제한 ‘콜버스’ 문 닫아야 할 판

입력
2016.03.29 04:40
0 0

규제 기관, 기존 업체들에 휘둘려

“시장 진입시킨 뒤 사후 규제해야”

25일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에서 한 직장인이 콜버스를 이용하여 퇴근하고 있다. 신재훈 인턴기자 (세종대 광전자공학과 4)
25일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에서 한 직장인이 콜버스를 이용하여 퇴근하고 있다. 신재훈 인턴기자 (세종대 광전자공학과 4)

지난 1월 ‘핀다’라는 스마트폰용 소프트웨어(앱)가 나왔다. 성별 나이 연봉 희망금액 등의 기본 정보만 입력하면 사용자에 맞는 금융 상품을 비교 추천해 주는 프로그램이다. 사실 미국에선 이미 2007년부터 ‘크레딧 카르마’란 기업이 금융 상품 비교와 추천을 해 주고 은행으로 연결, 가입까지 도와주는 유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업체는 현재 가입자가 3,500만여명에 이르고 기업 가치는 35억달러(약 4조원)나 된다. 핀다 역시 크레딧 카르마처럼 상품 검색에서 가입까지 ‘원스톱 서비스’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선 이 같은 서비스가 불가능하다. 금융감독원의 행정규칙 ‘대출모집인 제도 모범규준’에 따르면 돈을 빌릴 사람과 금융회사를 연결해 주는 일은 ‘1사 1인’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길동은행에 소속된 홍길동 직원은 길동은행 상품만 중개할 수 있다. 이혜민 핀다 대표는 “모바일 시대에 접어든 지 오래인데도 은행에 직접 찾아가거나 영업사원을 만나 금융 상품에 가입하던 오프라인 시대 정책이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스마트폰 세대를 겨냥해 야심차게 출범한 신생 창업기업(스타트업)들이 정부 규제에 발목이 잡혀 사업 확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콜버스’가 대표적 사례다. 콜버스는 이용자가 스마트폰 앱으로 출도착 지점을 입력하면 전세 버스가 실시간으로 경로를 바꿔가며 이들을 태우고 내려주는 서비스다. 그러나 국토교통부가 지난달 택시회사와 노선버스 사업자에게만 콜버스 운행 면허 자격을 부여한 데 이어 이번엔 서울시가 운행 시간을 0~5시로 제한했다. 새벽 2시 이후 이용자가 거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2시간 영업만 허용한 셈이다. 박병종 콜버스랩 대표는 “심야시간 승차 거부 문제 등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걸음마도 떼지 못한 채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고 토로했다.

온라인 중고차 매매 업체 ‘헤이딜러’도 우여곡절을 겪었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자신의 중고차를 원하는 장소에서 거래할 수 있는 서비스를 선보인 이 업체는 미래창조과학부에서 ‘창조경제 우수사례’로도 선정됐다. 그러나 지난해 말 국회에서 오프라인 경매장 없이 온라인으로만 운영되는 자동차 경매 서비스를 처벌하는 법안이 통과되면서 하루 아침에 ‘불법’으로 낙인이 찍혔다. 이후 “스타트업의 싹을 잘랐다”는 비판이 잇따르자 결국 정부는 온라인 경매 업체에 한해 시설 규제를 풀어주기로 했다.

국내 1위 P2P(개인과 개인의 연결) 대출 업체인 ‘8퍼센트’도 불이익을 감수하고 있다. 이 업체는 2014년12월 다수의 개인에게 소액씩 투자 받아 돈이 필요한 개인에게 대출해 주는 온라인 서비스인 P2P 대출업을 처음으로 선보였으나, 두 달 만에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사이트를 폐쇄당했다. 이후 중소기업청이 대출 플랫폼을 운영하는 모회사와 대부업을 운영하는 자회사로 나눠 운영하는 일종의 중재안을 제시하며 8퍼센트는 겨우 사이트를 재개할 수 있었다. 이효진 8퍼센트 대표는 “현행 규제 아래에선 미래 금융산업인 P2P 대출은 대부업 등록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호소했다. 이런 환경에선 기업 가치가 85억달러(약 10조원)에 달하는 미국의 P2P 기업 ‘랜딩클럽’같은 성공 신화는 한국에선 기대할 수 없다.

이처럼 국내 스타트업들이 규제를 푸는 데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는 사이 해외에서는 비슷한 서비스들이 쑥쑥 성장하고 있다. 더구나 국내 대기업은 비슷한 서비스로 스타트업의 몫을 앗아가고 있다. 이병태 KAIST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규제 기관은 새로운 서비스가 나올 때 소비자 관점에서 서비스 경쟁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생산자 관점에서 신규 업체와 기존 업체 간 이해 조정자 역할만 한다”며 “기존에 없던 서비스인 만큼 일단 시장에 진입시킨 뒤 관리하는 사후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서희기자 shle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