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부터 ‘합법적으로’ 거리에 울려 퍼지게 된 노래들이 있습니다. 4ㆍ13 총선을 위해 각 당이 내놓은 로고송입니다. 트로트 일색이었던 지난 선거들과는 달리, 올해는 아이돌 노래부터 응원가까지 다양한 분위기의 노래가 길거리를 채울 예정입니다. 각 당이 내세우는 로고송에는 저마다의 선거 전략이 깃들어 있기도 합니다. 최신곡을 통해 새로운 연령층을 공략하기도 하고, 가사에 집중해 당이 추구하는 핵심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하죠. 때로는 단순한 노랫말이나 멜로디를 반복해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남기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도 합니다 이번 총선에서는 과연 어떤 전략이 유권자를 사로잡게 될까요.
새누리당의 공식 로고송 7곡은 청년층부터 장년층까지 전 세대를 아우를 수 있도록 구성됐습니다. 전면에 내세운 ‘Pick me’(프로듀스101)는 최근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오며 10~20대에게 큰 인기를 끈 곡입니다. ‘나를 뽑아주세요’라는 제목 뜻과 중독성 있는 멜로디 덕분에 일찌감치 ‘1순위 선거송’으로 꼽히던 노래인데요. 이 곡에 맞춰 ‘뒤뚱뒤뚱’ 춤을 추는 최고위원들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SNS상에서 화제를 모으면서, 총선에 무관심했던 청년들의 관심을 끄는 데 일조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달리 ‘올래’(장윤정), ‘잘 살거야’(태진아) 등의 익숙한 트로트 멜로디는 전통적 지지층인 중ㆍ장년층을 공략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장르의 선거송을 통해 집토끼(중ㆍ장년층)와 산토끼(청년층)를 모두 잡겠다는 새누리당의 선거 전략이 돋보이는 부분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의 로고송은 신나는 응원가 일색입니다. 선거 맞춤형 노래 ‘더더더’를 으뜸으로 내세웠는데, 당원이기도 한 스타 작곡가 김형석씨가 이번 총선을 위해 직접 만든 곡입니다. 후렴구에 ‘더’라는 말이 140여 차례나 등장하는 강력한 후크송(짧은 후렴구에 반복된 가사로 흥겨움을 주는 음악)으로 유권자의 귀를 사로잡겠다는 전략입니다. 클럽음악 ‘붐바(BOMBA)’는 젊은 인터넷 세대를 고려해 로고송으로 선곡됐습니다. 한 영화에서 배우 강동원씨가 이 곡에 맞춰 선거운동을 하는 장면이 크게 화제가 되었는데요. 강씨의 동영상이 SNS에 널리 퍼진 것처럼 더민주의 선거 운동도 흥행을 노린다는 전략으로 보입니다. 남녀노소 모두 흥겹게 즐길 수 있는 ‘붉은 노을’도 더민주의 선거운동에 활용됩니다. 한 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 단순하고 경쾌한 멜로디라는 점에서 선거판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국민의당은 ‘로보트태권V’, ‘슈퍼스타’라는 비교적 친숙한 노래를 선택했습니다. 동요 같은 멜로디와 쉬운 가사, 밝은 분위기로 유권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함인데요. 특히 ‘로보트태권V’에서는 ‘달려라 달려 기호 3번, 날아라 날아 국민의당’ 등 누구나 알고 있는 가사를 차용해 유권자들에게 쉽게 기억될 것으로 보입니다. ‘태권V’ 하면 ‘국회의사당’의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하니, 총선 로고송으로 안성맞춤이기도 하죠.
정의당은 ‘흙수저 밴드’인 중식이밴드와의 협력을 통해 총선 메시지를 전달할 계획입니다. 중식이밴드는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7’에서 탑5(최종 5인)에 올라 널리 알려진 가수입니다. 스스로를 흙수저 비정규직 밴드로 소개합니다. 대부분 정당이 각자의 상황에 맞게 가사를 고쳐 부르는 것과는 다르게, 정의당은 개사나 변주 없이 기존 노래를 그대로 사용한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청년, 서민, 흙수저를 대변하는 노래를 불러왔던 ‘중식이밴드’가 당의 기치에 딱 맞아 들었다는 이야기겠죠. 두 약자의 ‘케미(궁합)’가 어떤 효과를 불러일으킬지 이목이 집중됩니다.
대한민국 선거에서 로고송이 처음 사용된 것은 1960년 대통령선거였고 본격적으로 위력을 발휘하게 된 시기는 1990년대 후반부터라고 합니다. 로고송을 활용하는 이유는 예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노래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도록 하는 겁니다. 간단한 가사가 반복되어 중독성 있는 노래들이 시대를 관통하며 로고송으로 사랑받아온 이유입니다. 그러나 정작 국민들이 오래 기억해야 하는 것은 각 당의 비전과 정책이 아닐까요. 투표소에 들어가 가장 먼저 기억나는 것이 당과 후보가 내건 공약이 아니라 ‘픽미픽미픽미업’이나 ‘더더더’라면, 그보다 씁쓸한 일은 없을 겁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박진만인턴기자
곽주현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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