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가 주한미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와 관련해 중국과 소통하겠다고 밝혀, 사드 배치 논의가 사실상 뒤로 빠지면서 장기화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대북 제재 이행을 이끌기 위해 사드 배치의 강경한 원칙론을 견지해온 우리 정부가 한발 물러나 출구를 모색하는 모습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외교전문가들은 다만 사드 문제가 한미중 3국의 전략적 이해관계와 맞물려 있어 장기적 협상카드로 언제든지 되살아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사드 배치 문제는 중국이 군사적 대응까지 경고할 정도로 반발해왔던 만큼 이번 한미중 3국 연쇄 정상회담에서 화약고로 여겨졌다. 실제 시진핑 중국 주석은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얼굴을 맞댄 회담에서 사드 배치에 대해 단호하게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으로부터 동맹국과 미국의 안보를 보호하기 조치라는 원칙적 입장을 견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묘하게 달라진 것은 우리 정부의 입장이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31일(현지시간) 한중정상회담 결과 브리핑에서 사드 문제와 관련해 양국 정상 발언은 소개하지 않은 채 “앞으로 양국 간에 이 문제에 관해 소통을 계속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난 1월 박근혜 대통령이 처음으로 사드 배치 검토를 공식화하며 명분으로 내세운 안보와 국익이라는 기준에 중국과의 소통이 추가된 것이다. 이는 그간 사드가 중국과 상관 없는, 한미의 안보 현안이라는 입장에서 물러나 중국 입장도 고려하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김흥규 아주대 교수는 “앞으로 중국 측의 입장을 감안해서 가겠다는 의미로, 빠른 시간 내 밀어붙일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고 말했다.
이처럼 속도조절에 나선 배경을 두고 북핵 제재 국면에 집중하겠다는 한미중 3국의 공통된 이해관계가 맞물린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사드 문제는 미국과 중국 모두 쉽게 물러설 수 없는 사안이다”며 “지금 당장 답이 안 나오는 사드 문제로 미중 갈등이 부각되면 북한으로 하여금 추가 도발에 대한 전략적 오판을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를 한미중 3국이 공유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기가 문제일 뿐 사드 카드는 언제든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다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국으로선 중국과의 핵심 갈등 사안인 남중국해 협상 카드로 남겨둬 다목적 포석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며 “미중 간 세력 격차가 커져 중국의 저항이 최소화되는 시기를 노릴 것이다”고 말했다. 북핵 문제가 진전될 기미가 없고, 북한이 5차 핵실험 등 추가 도발에 나설 경우에도 중국의 대북 압박을 유도하는 지렛대로 사드 카드가 재부상할 수 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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