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4ㆍ13 총선 선거운동이 시작된 4월의 첫 주말.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가 벚꽃이 흩날리는 호남으로 동시에 출격했습니다. 야권의 심장인 호남을 먼저 챙기는 모습으로 ‘호남발(發)’ 선거 바람을 북상시키려는 의도였습니다.
두 당 대표가 호남을 행선지로 잡자마자 실무진들의 치열한 신경전도 시작됐습니다. 더민주가 먼저 김 대표의 동선을 공개하자 국민의당은 하루의 시차를 두고 안 공동대표의 일정을 공개했습니다. 일정을 잡기에 따라 두 대표가 같은 지역에서 마주칠 수도 있었지만, 국민의당은 같은 지역을 가더라도 시차를 두는 방식으로 ‘만남’을 피했습니다.
먼저 남도로 향한 사람은 김 대표였습니다. 그는 1일 전북 전주 유세를 시작으로, 익산ㆍ완주ㆍ정읍ㆍ순창을 차례로 돌며 더민주와 더민주 후보들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조부인 가인 김병로 생가를 방문해 전북 민심에 노크하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뿌리가 전북인 것을 알리는 방식으로 더민주에 대한 지지를 노린 것입니다. 동시에 김 대표는 다음날 전북에 도착할 안 공동대표를 향해 선제 공격도 시도했습니다. ‘가인 선생이 살아있었다면 현재의 야권 분열에 대해 어떤 해법을 줄 것 같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요즘 정치인들은 합리적이지 않아. 과거 높은 지지율의 환상에 빠져만 있지”라며 안 공동대표를 비난한 것입니다.
두 대표가 가장 가까이 있었던 곳은 전북 김제였습니다. 안 공동대표가 2일 첫 호남 유세 일정을 오전 9시 김제 전통시장 앞으로 잡았는데, 한 시간 뒤에는 김 대표가 같은 장소에서 지원 유세가 예정돼 있었습니다. 다행히(?) 안 공동대표가 9시35분 다음 유세를 위해 자리를 뜨면서 15분의 시차로 김 대표와 만남은 불발됐습니다. 대신 현장에선 국민의당 후보의 유세 차량이 늦게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당직자들 사이의 신경전이 벌어졌습니다. 더민주 입장에선 곧 김 대표가 현장에 도착하는데도 국민의당이 자리를 비켜주지 않는 것은 다분히 선거 유세 방해라고 보고 강력히 항의했습니다.
오후에는 두 대표 모두 광주로 이동했습니다. 이번에도 포문은 김 대표가 먼저 열었습니다. 그는 이날 오후 광주 빛고을시민문화관 입구에서 열린 집중유세에서 “이곳에 출마하고 계신 국민의당 후보들의 면면을 하나하나 보면 과연 그 사람들이 새 정치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고 집권을 위한 의욕이 있는 사람들인가”라며 국민의당 후보들을 싸잡아 비난한 것입니다. 그는 이어 “호남과 광주에서 수권능력이 없는 정당이 의회에 진출하면 정권교체를 방해하는 세력에 불과하다”며 국민의당에도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김 대표는 국민의당에 대한 공세와 함께 문재인 전 대표도 비판하며 문 전 대표에 대한 호남의 반감을 누그러뜨리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더민주는 절대로 1월 15일(김 대표 본인이 입당한 날) 이전 상황으로 돌아갈 수 없다”며 ‘총선 뒤에는 다시 문재인당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국민의당의 공격에 대해 자신이 방패 역할을 하겠다며 맞선 것입니다. 현장에 와보니 서울에서 볼 때보다 문 전 대표에 대한 호남의 반감이 예상보다 강력하고, 자신이 총선을 진두지휘하고 있음에도 좀처럼 호남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한 고심이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김 대표보다 젊은 안 공동대표는 2일에만 12개의 일정을 소화하며 ‘체력전’으로 대응했습니다. 안 공동대표는 김 대표가 유세를 벌이는 현장을 가지 않고 옆 지역구를 들르는 방식으로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김 대표의 발언에 대해서도 “왜 그렇게 자아비판을 하시는지 모르겠다”는 말로 정면 대응은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안 공동대표는 국민의당의 외연을 넓히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는 “국민의당이 새누리당 지지자들 중 합리적이고 개혁적인 이탈자들을 담는 그릇이 될 것”이라며 “더민주로서는 정권교체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목포 유세에서는 야권분열 책임론에 대한 입장도 밝혔습니다. 그는 “40%가 공고하게 새누리당의 콘크리트 지지층인줄 알았는데 35% 거쳐서 30% 초반으로 내려왔다”며 “우리 국민의당은 새누리당 지지율을 30% 아래로 떨어뜨릴 것”이라고 장담했습니다. 또 “새누리당 지지자 중에 박근혜 대통령에게 실망한 사람들이 정말 많지만 아무리 실망해도 2번은 절대로 안찍는다”며 “이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은 우리 국민의당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국민의당이 야권 표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여당 지지층도 흡수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야권 후보 단일화를 일부러 무산시킨 것 아니냐’는 일부에서 제기하는 책임론의 칼날을 피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이들의 복잡한 동선은 김 대표가 2일 밤 제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면서 정리됐습니다. 김 대표는 제주 4ㆍ3 사건 희생자 추념식 참석에 우선 순위를 뒀고, 안 공동대표는 김 대표가 비운 틈을 이용해 3일에도 광주와 전남 지역 유세에 더 집중한 것입니다. 이 같은 강행군은 두 대표의 체력을 당연히 갉아 먹었습니다. 김 대표는 제주 도착 직후 피곤을 이유로 바로 휴식에 들어갔고, 안 공동대표는 목이 완전히 쉬어버린 것 입니다.
아직 총선 선거운동 기간은 열흘이 남았습니다. 이들이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동시에 유세를 펼치는 모습이 또 일어날 지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두 대표 모두 체력이 모두 소진되는 한이 있더라도 강행군을 이어갈 것이라는 점입니다.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니까요.
전주ㆍ광주ㆍ제주=정재호기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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