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별 수출액 비중 1위
한류 이끄는 효자산업
청소년 보호 명목의 셧다운제
웹보드 게임 구매한도 규제 등
중독성ㆍ과몰입만 지나친 부각
업체 수 5년 새 30%나 급감
성장률도 마이너스로 뒷걸음
유능한 인력들 줄줄이 해외로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신촌 서강대 게임교육원의 한 강의실. 미래의 게임 개발자를 꿈꾸는 20여명의 학생들은 서로의 창작물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까지 감추진 못했다. 최근 국내 대형 게임업체들은 신입 공채를 크게 줄이고 있다. 2년째 게임 그래픽과 애니메이션을 공부하고 있는 김모(21ㆍ여)씨는 “해외에선 한국 게임이 크게 인정받고 있는데도 오히려 국내에선 게임에 대한 각종 규제와 부정적 시선이 강하다”며 “외국 회사들이 좋은 조건으로 제안해온다면 졸업 후 해외로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미래 게임 산업을 선점하기 위한 각국의 경쟁이 치열하지만 우리나라에선 과도한 규제와 이로 인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게임 산업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
게임은 콘텐츠 한류를 이끄는 효자 산업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게임은 2014년 전체 콘텐츠별 수출액 비중에서 29억7,300만달러(약 3조4,000억원)로 무려 56.4%를 차지했다. 2위인 캐릭터 사업(9.3%)의 6배도 넘는다. 우리나라의 게임 산업은 매출 기준 세계 4위이다. 그러나 정부가 게임 산업을 육성하긴커녕 제한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하소연이다. 2011년 11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셧다운제도 청소년 보호를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게임업계에선 아쉬운 게 많다. 0시부터 오전 6시까지 16세 미만 청소년의 인터넷 게임 접속을 차단하는 것은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유일하다. 특히 당시 논란 과정에서 게임의 중독성과 과몰입만 지나치게 부각되며 게임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이 급속도로 악화했다. 2012년 프랑스에서 열린 스타크래프트2 대회에 참가한 이승현(당시 15세) 선수가 한국시각으로 자정이 되자 게임을 포기하는 웃지 못할 상황까지 빚어졌다.
2014년2월부턴 고스톱 포커 등 온라인에서 사이버 머니로 진행되는 웹보드 게임과 관련, 게임 이용자 당 월 구매한도를 30만원으로, 게임머니 사용액도 회당 3만원으로 제한한 규제안도 시행됐다. 2013년 게임을 술, 도박, 마약과 함께 4대 중독 물질로 규정한 게임중독법 논란도, 비록 법안이 통과되진 못했지만, 게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줬다. 미국과 유럽 등 해외 13개국의 게임 협회에서 이를 반대하는 성명서를 보낼 정도였다.
이처럼 게임이 사회악의 오명을 뒤집어쓰면서 산업은 뒷걸음질쳤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셧다운제가 시작된 2012년 국내 게임 시장의 성장률은 10.8%로 전년(18.5%)의 절반으로 꺾였고, 2013년엔 역성장(-0.3%)으로 돌아섰다. 문을 닫은 게임업체들도 수두룩하다. 2010년 2만658개에 이르던 게임 업체 수는 2014년 1만4,440개로 30%나 줄었다.
답답한 국내 현실에 유능한 게임 인력들은 해외로 떠나고 있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업무 강도가 높아지는 틈을 타 중국과 유럽 회사들은 국내 개발자들에게 2~3배의 연봉을 제안하며 이직을 권하고 있다. 김종득 게임개발자연대 대표는 “독일, 캐나다, 중국 등 게임 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는 국가에서는 파격적 대우뿐 아니라 개발자를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로 국내 인력들을 빨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몇 년 전만 해도 게임 배급에만 주력하던 중국의 텐센트는 최근 공격적인 인재 영입으로 이미 전 세계 게임 매출 1위 회사로 성장했다.
지난달 인공지능(AI) 알파고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구글 딥마인드의 최고경영자(CEO) 데미스 하사비스는 14세 이하 체스 세계 랭킹 2위에 오를 정도의 천재였다. 그는 17세 때 게임 개발로 눈을 돌려 테마파크와 블랙앤화이트 등의 인기 게임을 개발했다. 이러한 게임 내 AI에 대한 관심이 인지 뇌과학 연구로 이어지며 마침내 알파고를 만들어냈다. 김성곤 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 사무국장은 “하사비스가 체스를 그만두고 게임을 개발한 것처럼 만약 이세돌 9단이 바둑을 관두고 게임을 개발하겠다고 하면 한국에서는 다들 미쳤다고 말리고 나설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2월 미래창조과학부와 문화체육관광부는 기자간담회를 열고 웹보드 게임 월 결제 한도를 30만원에서 50만원으로 늘리는 등의 개선안과 게임 관련 가상현실(VR) 산업 육성책을 내놨다. 그러나 게임업계에서는 게임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질 대로 나빠진 뒤에 내놓은 방안으로 “목을 조른 뒤 심폐소생술 하고 있는 격”이라고 평가절하하고 있다. 위정현 중앙대 교수는 “정작 게임 업계에서 필요한 것은 개별 회사들이 얻기 힘든 해외시장 전반에 대한 정보인데 VR처럼 당장의 인기에 영합하는 정책만 내놓은 것”이라며 “게임에 대한 이미지를 올바르게 바로 잡고 산업 전반에 활력을 불어 넣으려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준호 기자 junhoj@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