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측 일정 담당자는 전국 곳곳의 더민주 후보 캠프로부터 지원 유세 요청 전화를 받고 스케줄을 잡느라 정신이 없다고 합니다. 특히 공식 선거 유세 운동이 시작(지난달 31일)되기 전에는 주로 강원, 대구ㆍ경북(TK) 등 당의 취약 지역 후보들을 응원하고 지지하러 다녔지만 선거 유세전이 본격화 하면서 전국의 접전 지역을 돕는 데 힘 쏟고 있습니다. 그런데 단 한 지역. 호남 만은 예외입니다. 제1 야당의 전 대표 그것도 내년 대선 후보 지지율을 묻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전체 선두권, 야권에서는 단연 앞서고 있는 대중적 인지도를 지닌 문 대표지만 정작 야권의 심장이자 텃밭이라는 호남 땅을 밟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 전 대표 측 관계자는 “호남의 후보들에게서 지원을 와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후보들의 요청이 오면 가는 것은 본인 선택이지만 요청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한 것을 감안하면 적어도 문 전 대표의 호남행의 필요 조건은 채운 상태입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가기에는 문 전 대표 본인이나 김종인 대표나 중앙당이나 그리고 호남의 후보들 모두에게 깊은 고민을 안겨주고 있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죠.
3번 국민의당과 힘겨운 유세전, 호남에 존재하고 있는 ‘반(反) 노무현’ ‘반 문재인’ 정서, 김종인 대표와 현 선거대책위원회의 다소 부정적인 반응 등이 뒤섞이면서 답을 찾기가 녹록지 않기 때문입니다.
먼저 문 전 대표 본인은 지난주 기자와 대구에서 경북 포항으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후보들이 도움을 요청한다면 호남이라고 마다할 이유는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기자가 ‘호남의 반 문재인 정서가 강해 호남 유권자들뿐만 아니라 호남 민심과 상호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수도권의 호남 출신 유권자들까지도 그 영향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걱정한다’고 하자 “그렇다면 왜 호남 유권자들이 뽑은 대선 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선두권을 유지하는 것이죠”라고 되물으며 “호남 민심이 저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호남에는 저를 반대하는 정치인들이 많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호남의 반문 정서는 자신을 반대하는 정치인 예를 들어 지난해 자신을 끊임없이 흔들다 탈당 후 국민의당을 택한 현역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생명력 유지를 위해 유권자들을 자극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말이다.
후보들의 요청도 있고 호남 민심도 알려진 것만큼 나쁘지 않으니 언제든 가면 될 일이지만 당장 문 전 대표가 하루 이틀 사이에 호남행을 택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문 전 대표 측 측근은 “후보들을 도와 지지율을 올리고 당선 가능성을 높이자는 매우 간단한 행동 수칙을 실행해 왔지만 어찌된 것인지 (문 전 대표의) 이동 경로 자체가 특별한 관심사가 되고 예민한 반응들이 나오고 있으니 난감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2014년 김한길ㆍ안철수 공동 대표가 이끄는 새정치민주연합이 지방선거를 치를 당시에도 지금처럼 지원 유세 및 운동을 요청하는 전국의 후보들을 찾아 도왔지만 지금 같은 민감한 반응은 보지 못했다며 “선거에 이기는 것이 먼저 아니냐”며 답답해 했습니다. “며칠 상황을 더 지켜본 뒤 호남행 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 같다”는 게 이 측근의 말입니다.
중앙당이나 광주 현지 분위기는 ‘전전긍긍’ 입니다. 당의 한 관계자는 “호남의 초반 판세가 국민의당과 비교해 불리한 게 사실”이라며 “이 상황에서 반문재인 정서를 감안하면 엎친 데 덮친 격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광주만 해도 국민의당은 후보 8명 중 현역 의원이 다섯 명이나 되는 데 비해 더민주는 현역의원이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비록 더민주 후보들이 인지도와 조직력 면에서 그들과 비교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지만 참신함과 ‘현역 국민의당 의원들의 기득권 폐지’ 등을 무기로 강하게 붙어야 하는데 문 전 대표가 내려올 경우 국민의당이 ‘친문 패권 청산’을 앞세워 역공을 취할 수 있다는 걱정들도 나오고 있습니다.
반면 또 다른 당 관계자는 “후보들도 고군분투하고 있고 지지율 격차가 줄어들고 있지만 상황을 확 뒤집을 수 있는 한 방이 필요하고 그것이 바로 문재인 대표”라고 말했습니다. 예들 들어 광주 판세는 전통적으로 전체 선거구가 하나의 선거구처럼 묶여서 움직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체 판을 한 번 흔들 수 있는 유일한 카드가 문재인이라는 점입니다.
당내에서도 문 전 대표의 활용을 놓고 결이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김 대표는 그러나 전날 “선거는 전체가 같이 치르는 게 아니다”며 “선거를 끌고 가는 사람, 주체가 알아서 관리해야지 옆에서 딴 사람이 하다 보면 선거 방향이 올바르게 갈 수 없다”고 불편함 마음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일부에서는 김 대표 측이 문 전 대표의 광폭 행보에 대해 “총선 이후 당 헤게모니 재편 과정 그리고 내년 대선 후보 경선 등을 감안해 미리 자신들의 조직 확장을 꾀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정세균(서울 종로) 후보는 반면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문 전 대표가 나서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손 놓고 있다고 한다든지 또 무책임하다느니 결별했니 어쩌니 언론이 그럴 거 아니겠나”라며 “선거는 지지자들을 모아내고 뭉치게 하는 그런 예술이라고 보기 때문에 다들 자기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자칫 김 대표와 문 전 대표가 각을 세우고 신경전을 벌이는 듯한 양상이 벌어지자 이철희 더민주 선대위 상황실장이 나섰습니다. 그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지금까지 백의종군을 선언한 문 전 대표의 선택을 존중했고 동선은 문 전 대표의 판단에 맡겼지만 이젠 서로 생각하는 것을 터놓고 얘기하며 조율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선거 막바지는 변수 관리가 중요한데 마치 이 문제 때문에 김종인-문재인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기는 것처럼 비치는 것을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실장은 “김종인-문재인 두 사람 사이의 기본적 신뢰는 굳건하고 운명 공동체”라고 규정하며 “김 대표가 실패하면 그 피해가 문 전 대표에게 가고 문 전 대표가 어려워지면 김 대표도 어려워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이어 “지금까지는 대선주자에 당 대표까지 지냈으니 굳이 말 안해도 이심전심 통했는데 당 바깥에서 걱정하는 시선이 생겼으니 이제 미리 의논해서 간다면 그런 시선은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문 전 대표의 호남행 여부는 이렇듯 호남은 물론 전체 선거까지 영향을 주는 ‘나비효과’까지 불어올 수 있는 상황입니다. 어쩌면 그 만큼 이번 총선이 예전처럼 선거 전체를 뒤흔들 대형 이슈가 돌발적으로 터지지 않았다는 점도 영향을 줬습니다.
기자들이 매일 일과 후 당에서 공식 제공하는 다음날 김 대표의 유세 일정과 함께 문 전 대표의 유세 일정까지 챙겨야 하는 날도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문 전 대표 측 관계자는 “당에서 공식적으로 조율을 하자고 했으니 호남행에 대해서는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느냐”면서도 “그런데 아직까지는 간다는 결정이 난 것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하필 이날 문 전 대표는 더민주 후보들을 유세를 돕고자 광주에 갔습니다. 광주(光州)광역시가 아닌 경기 광주(廣州) 시였습니다. 그런데 당의 한 관계자의 한 마디가 농담으로 넘기기에는 의미심장합니다. 그는 “그냥 오늘 광주(廣州) 다녀온 걸로 광주(光州) 간 것으로 하면 안 될까. 어떻게 이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할지 너무 어려워.”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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