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만 알리고 환자에 숨긴 뒤
20여명에게 제왕절개ㆍ불임시술
“감염 우려있다면 시술 차단해야”
“바이러스 양 등 지침 마련부터”
환자 보호를 위한 윤리 문제가 우선인가, 의사 생존권 보장이 먼저인가.
서울의 한 대학병원 산부인과 의사가 C형 간염에 걸린 사실을 감추고 수개월간 자궁적출 등의 수술을 해 논란이 일고 있다. 미국 등과 달리 국내에는 간염 환자인 의사의 시술을 제한하는 기준이 없어 의료계 내부에서도 그의 행위가 적절한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4일 A대학병원 등에 따르면 이 병원 불임센터 B 교수는 지난 2014년 초 C형 간염에 걸리고도 약물치료를 받으며 6개월이 넘도록 의료행위를 계속했다. B형 간염 바이러스 보균자이기도 한 그는 이 기간 산모 등 20여명을 대상으로 자궁적출과 제왕절개 등의 수술이나 불임시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혈액에 의해 전염되는 C형 간염은 주사바늘이나 수술기구에 의해 환자에게 전염될 수 있지만, 그는 자신의 병력을 병원 측에만 알리고 환자들에게는 숨겼다. 병원 측도 당시 환자들을 추적 관리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B 교수는 “C형 간염 바이러스의 농도(타이터ㆍtiter)가 활동성이 낮은 수치인데다 체력적으로 힘든 게 없어서 진료를 계속했다”며 “혼자 결정한 것이 아니라 병원 측과도 협의해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자신이 수술(시술)했던 환자에 대해 C형 간염 바이러스 검사를 별도로 진행, 근거를 남겨뒀다고 한다. 퇴원했던 환자가 뒤늦게 간염에 걸려 책임 소재를 따질 것에 대비해서다. B 교수는 “수술 전 C형 간염 바이러스가 나온 환자도, 수술 이후 C형 간염으로 문제를 제기한 환자도 아직 없었다”고 했다.
B 교수와 병원 측의 이런 행위에 대해 의료계 안팎에선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국내엔 C형 간염 환자인 의사의 의료행위를 제한하는 보건당국의 기준이나 잣대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바이러스 농도가 일정수치를 넘어 활동성, 증식성을 보이면 의료행위를 제한하도록 하는 권고안을 두고 있다. 독일도 2001년쯤 B형 간염 바이러스 보균자인 외과의사가 수술 중 환자에게 간염을 전염시킨 사건이 발생한 뒤로 사안에 따라 ‘전염의 위험성이 큰 시술’을 중지시키고 있다.
대한간학회 등 국내 의료계에서도 최근 양천구 다나의원 등의 C형 간염 집단발병 사태를 계기로 이런 문제 등을 논의했으나 결론을 내지는 못했다. 악화한 여론에 떠밀려 의료행위부터 제한하면, 의료인들의 ‘생존권’에 위협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김인희 전북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바이러스 양 등 최소한의 지침을 마련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주사바늘 등에 찔려 전염된 역학적 사례가 부족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의료인의 양심에만 맡겨둘 문제는 아니라는 인식도 강하다. 환자에게 전파시킬 우려가 0.1%라도 있다면, 수술 등 혈액에 노출되는 시술은 제도적으로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적 근거보다 윤리적 문제가 우선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료계 인사는 “간염에 걸린 의료진의 수술이나 시술을 중단하는 것은 환자 보호를 위해 당연한 일”이라며 “환자들에게도 공지, 의심 증상을 확인하고 국가 차원에서도 이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유명식기자 gij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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